이름표

오늘은 문득 김춘수님의 꽃과 이름 모를 분의 이름표라는 글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점점 잊혀져 가는 이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표
2010.08.02


이 아이의 이름은 ‘마틸다’인가 봅니다. 영화 속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이었던가요?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표까지 꽂아준 이 화분의 주인은 물을 줄 때마다 나지막하게 이 이름을 불러주곤 하겠죠?

초등학교 1학년, 왼쪽 가슴에는 내 이름 석 자가 쓰여진 노란색 이름표와 오른쪽 가슴에는 하얀 가제 수건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발음이 어려워 ‘거즈’를 ‘가제’로 부르게 된 실로 엮인 가볍고 부드러운 손수건 말이에요.

그나저나 그 손수건으로든 소매 끝으로든 코를 훔친 기억은 없는 걸 보면 그래도 ‘코흘리개’ 소리는 듣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가족 말고, 동네 소꿉놀이 친구 말고 내 이름이 처음 불려진 건 아마 초등학교 입학식 때였을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난 집중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옆 짝꿍과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다고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 것도 듣지 못해 교실 밖 창문으로 날 쳐다보시던 엄마에게 들켜 집에 가는 길에 조금 혼도 났었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여덟 살배기 1학년짜리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나 역시 외워야 할 이름들이 너무 많아져 새 학기가 돌아올 때마다 혹시라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수첩 빼곡히 친한 순서대로 적어 놓는 것이 나름 연례행사였습니다.

가슴에 매달린 너의 이름 한번 보고, 다시 네 얼굴 한번 보고 나도, 당신들도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그림은 그렇게 그리기 시작했을 테지요.

지금 내 가슴에도 언젠간 당신이 불러줄 이름표가 매달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개 돌리진 말아요. 당신이 나를 알아봐 주는 순간, 이 이름표는 선명하게 내 이름을 당신에게 말해줄 테니까요.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기억하게 되는 이름이 되면 그때 이 이름표를 뗄게요.

글과 사진 정윤선


'http://www.enclean.com/'에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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