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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과 파트너십

김수종의‘2분산책’-30

리더십과 파트너십

김수종

링컨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최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책을 뒤적이다가 문득 알래스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링컨과 알래스카? 뭔가 생뚱맞다고 생각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 두 번 알래스카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삼라만상이 밤과 눈 속에 파묻힌 12월에, 또 한번은 해가 질 줄 몰라 호박넝쿨이 하루에 한자씩 자란다는 7월초였습니다. 북극해 연안까지 구경했던 여름철 방문은 남한의 17배나 넓은 알래스카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알래스카 여행을 하면서 필자의 눈과 귀에 가장 많이 다가온 단어가 '수워드(Seward)'였습니다. '수워드'라는 항구도시가 있었고, '수워드 하이웨이'라는 고속도로도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세종'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쓰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 정부가 제정 러시아에게 72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땅입니다. 요새 우리 돈으로 단순히 환산하면 70억원 정도이니 강남의 큰 평수 아파트 3채 정도면 너끈히 지불할 수 있는 부동산입니다. 그러나 140년 전의 달러가치로 보면 미국정부가 부담하기에 벅찬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인물이 윌리엄 수워드(William Seward) 국무장관입니다. 그런데 아직 광대한 서부개발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이어서 그런 거금을 주고 알래스카를 사겠다는 수워드의 결심에 의회와 언론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의회와 언론은 알래스카를 '수워드의 얼음박스'라고 조롱했고, 그 거래를 '수워드의 우행(愚行)'이라고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알래스카의 영토적 가치를 평가했던 수워드 장관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뚫고 이 땅을 매입하는 데 진력했습니다. 당시 수워드 장관은 핵무기나 핵잠수함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매입 덕분에 한 세기가 지난 후 미국은 그 땅 면적을 뛰어 넘어 사실상 거대한 태평양을 내해처럼 사용하며 '팍스아메리카'의 세계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내가 만난 알래스카 사람들은 수워드장관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땅으로 남아 수천기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수워드는 미국본토 사람들에게 조지 워싱턴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나쁜 비유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수워드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서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지만, 그를 처음 국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수워드와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였습니다. 수워드는 사실 링컨 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었습니다. 약관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이나 당선되었으며,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일 만큼 흑인인권보호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느 모로 보나 지명도에서 앞서 있던 수워드에게 중서부 변방 출신의 링컨이 도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수워드는 링컨에게 역전패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화려한 이력의 서울 시장이 지방출신 국회의원에게 당한 꼴입니다.

당시의 정치풍토가 그랬는지는 모르나, 패배한 수워드는 미국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링컨 지원유세에 열성적으로 나섰습니다. 대통령에 당선 된 링컨은 그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수워드는 링컨 정부의 남북전쟁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감으로 손색이 없는 두 정치인이 콤비를 이루어 혼란기의 내각을 이끌어 나갔던 것입니다.

링컨이 재선한 후인 1865년 4월 14일 밤 수워드 장관의 집에 무장괴한이 침입했습니다. 수워드의 아들이 괴한을 차단하면서 격투가 벌어졌고, 괴한이 아들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집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아들은 총상을 입었고 수워드도 괴한의 칼에 찔려 부상했습니다.

이 소동이 벌어지던 바로 그 순간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암살범 부스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당의 음모였습니다. 이날 밤 수워드 장관이 암살됐더라면 알래스카는 미국 땅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워드와 링컨의 관계가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만만치 않는 경력의 경쟁자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었던 링컨의 배포와 도량, 그 밑에서 훌륭한 국무장관으로 미국에 봉사했던 수워드의 자세입니다.

링컨이 미국인에게 위대한 것은 두 동간 난 나라를 통일했기 때문입니다. 수워드가 대단한 것은 이 혼란의 시기에 미국의 장래를 내다보며 국가의 외연을 넓혔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쓸데없는 일이지만, 링컨과 수워드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국난을 반전시키고 국가의 앞날을 보며 여론을 뛰어 넘어 행동했던 민주주의 시대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야수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또 근래 첨예하게 분열적 대립상을 보이는 미국의 대통령제 정치를 보면서, 링컨 시대의 정치 리더십과 정치 파트너십을 다시 한번 떠 올려보게 됩니다. 멀리 길게 국가의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라스베가스의 도박판 같이 돌아가는 우리의 대선 모습이 결코 건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원제작처인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과의 협의하에 연우포럼에서도 동시에 전재.배포하고 있습니다.(김연우 포럼장)


[필자 소개] 김수종

한국일보 주필을 역임했으며 현재 칼럼집필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래 일선기자 해외특파원 데스크로 일했다. 1998년부터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썼으며 2005년 퇴사했다. 신문사 재직중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를 지냈다. 환경책‘0.6도’와 ‘지구온난화의 부메랑’(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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