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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힘! 격물치지(格物致知)

세상을 바꾸는 힘! 격물치지(格物致知)
박재희

한창 인기리에 방영했던 선덕여왕 연속극에 자주 나오는 말 중에 格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격물은 동양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였던 과학이란 뜻의 용어였습니다. 격물은 사물에 다가가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깨달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으로 원래는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의 줄임말입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무엇이든 한 가지에 깊이 몰두하고 연구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하는 방법론을 의미합니다.

격물치지는 원래 성리학의 공부 방법입니다. 이 방법론을 이해하려면 격물과 치지를 나누어 검토해야 합니다.
격물(格物)의 격(格)은 다가간다(至:approach)는 뜻입니다. 물(物)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죠. 그러니까 격물(格物)은 ‘내가 알려고 하는 대상으로 다가가라!’라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알고 싶으면 우선 알고 싶은 대상으로 다가가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원리를 알고 싶으면 반도체로 다가가야 하고, 고객의 마음을 알고 싶으면 고객의 마음으로 다가가라는 뜻이지요.
치지(致知)의 치(致)는 극(極)의 뜻입니다. 극한 깊이로 파고들란 뜻이지요. 지(知)는 내 지식입니다. 즉 치지(致知)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고 극한 깊이로 파고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나의 전 지식을 총동원하여 몰입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간단히 말하면 ‘어떤 사물의 원리를 알고 싶다면 그 사물로 다가가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몰입하라! 그러면 나는 그 원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 방법론의 전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이치 즉 리(理)가 있고, 인간에게는 그 이치(理)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인 성(性)이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일명 우리가 주자학을 성리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性)과 우주가 가지고 있는 리(理)는 본질에서 같고, 따라서 모든 인간은 원하는 우주의 사물에 다가가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면 우주의 이치와 접속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과 하늘의 접속. 일명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춘추전국 시대 공자가 인간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에 관심을 둔 유교가 1세대 유교라면, 주자에 의해서 완성된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둔 2세대 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자학을 신유학(新儒學 : Neo-Confucianism)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자학, 우리가 알고 있듯이 초기에는 그렇게 보수적인 학문은 아니었습니다.
주자 사후 동아시아에서 800여 년 동안 주류로서 대접받기 전만 해도 주자학은 이단이었습니다. 불교의 내세관에 대항하여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였고 지적 확장을 위해 부단히 인간은 노력해야 한다는 성리학의 핵심 수양이론이 격물치지였던 것입니다. 주자는 이 격물치지를 통해서 인간세계의 평화를 꿈꾸었습니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으면 당신의 의도가 성실해질 것이다(誠意). 의도가 성실해 지면 마음이 바르게 될 것이다(正心). 마음이 바르게 되면 몸의 수양이 완성될 것이며(修身) 그 후로 가정(齊家)과 사회(治國) 온 세상이 평화롭게 될 것이다(平天下).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일명 8조목의 8단계 평화론입니다.

기업을 경영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분들이 자신의 열정과 지혜를 몰입하여 사물의 이치를 알아내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주자학이 갖는 새로운 해석이자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가라! 내 열정을 쏟아 부어라!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대학에서 말하는 끝장 정신, 격물치지의 숨겨진 뜻입니다.


'넷향기(postmaster@nethyangki.net)'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박재희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고 계십니까? 사실 효도를 계획을 세워놓고 한다는 것, 전통적인 효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닌 듯합니다. 효도는 항상 하는 상식적 개념이지 ’언제’라고 하는 한시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집안에서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효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 해보셨습니까?

공자가 논어 속에서 들려주는 효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공자는 공경함이 없는 물질적 봉양만이 효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遊)가 효는 물질적 봉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효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요즘 사람들 효도하는 방법은 그저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봉양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물질적인 봉양은 자신이 아끼는 개나 말한테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물질적 봉양만 해준다면 이것은 자기가 아끼는 개나 말에게 잘 먹이고 잘해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라도 皆能有養이니라. 不敬이면 何以別乎이요)."

공경함이 없이 그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만 잘해주는 것, 그것만 갖고는 자신이 아끼는 애완견과 비교해서 다름이 없다는 아주 날카로운 공자의 지적입니다.

어버이날 효도 관광 시켜주고 다달이 통장에 용돈 자동이체 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효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측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인 봉양에 공경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효도가 아닐까요?

둘째 공자는 자식이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사는 것, 이것도 효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의 힘 있는 대부(大夫)의 아들이었던 맹무백(孟武伯)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와서 효를 물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주 병에 걸리는 병약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는 말이야 자식이 아픈 것을 가장 근심으로 생각하는 분들이야! 그러니 당신 같은 경우는 안 아픈 것, 그것이 효도하는 것이야(父母唯其疾之憂이라)."

자식의 입장에서 아프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하는 건데요, 부모가 되신 여러분들은 아마 모두 아실 겁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사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 하시는 분들이 진정 부모님들이십니다.

효도! 어떻게 생각하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 하는 것도 얼마든지 효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셋째 공자는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것, 이것이 효도라고 강조합니다.

자하(子夏)라는 공자의 제자가 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잘 관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 고생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르신 먼저 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 효라고 생각하는가?”

색난(色難)이라. 표정관리! 이것이 진정 효의 본질입니다.

아마 질문을 했던 자하라는 공자의 제자는 부모에게 늘 찡그린 모습만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회사 일이 좀 안 된다고 부모 앞에서 얼굴 표정 찡그리거나 한 숨 쉬는 자식을 바라보는 그 부모의 마음, 과연 어떻겠습니까? 부모 앞에서는 정말 어떤 순간이라도 얼굴을 편안하게 갖고 대하는 것, 쉽지 않은 효도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듯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효도에 관한 생각을 보면, 효란 물질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인 것, 이런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효도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효도의 원칙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라는 거죠.

오늘 한번 부모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시고 그 일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효도는 때로는 공경이요, 때로는 부모 앞에 편안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며, 어떤 때는 안 아픈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효도라고 할 것입니다.

http://www.nethyangki.net/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