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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단점

한국인들의 단점
김진홍

한국에서 11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였던 한 외국인 기자가 한국을 떠날 때에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리하여 말하면서 한국인들의 장점을 이야기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그에게 청하기를 그렇게 한국인의 장점만을 말하지 말고 당신이 느낀 한국인의 단점도 일러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주저주저하던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단점을 4가지로 일러 주었다.

첫째로 한국인들은 ‘미래 지향적’이지를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란 지적이다. 한국인들이 모이면 앞으로의 설계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군대 이야기, 지나간 정치사건 이야기, 과거의 동창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인들은 핑계를 너무 내세운다는 지적이다.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 솔직한 자기반성과 실패에 대한 인정이 없이 웃사람, 아랫사람에게 핑계를 대거나 형편에 핑계대기를 잘한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한국인들은 인간관계에서 질 줄을 모른다는 지적이다. 타협을 모르고 양보를 패배로 생각하며 흑백논리에 젖어든다는 지적이다.

넷째로 한국인들은 심지 않고 거두려는 공짜 심리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듣고 자란 말 중에는 “한국인들은 공짜라면 양젯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었다.

외국인이 우정(友情)의 마음을 품고 일러 준 말에서 우리 스스로가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깊다.


받은 글입니다.

韓國人과 日本人의 精神文化의 比較

韓國人과 日本人의 精神文化의 比較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입니다.

1.
한국인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평범한 근무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
한국인은 호의호식 하는것을 성공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공기밥 1사발, 단무지 3개, 김 3 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3.
한국인은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은 20평 정도 집에서 사는 것을 자족으로 알고 만족한다. 실제로 전직수상이나 각료들이 20평규모의 집에 사는것이 일반화된 나라다.

4.
한국인은 비싼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5.
한국인은 탈세, 감세를 하려고 거짓신고가 다반사인데,
일본인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6.
한국인은 아홉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손까락질하며 따돌리는데,
일본인은 한번 잘하고 9번 실수를 해도 한번 잘한 것을 칭찬격려 해 준다. 일본인은 전두환 노태우가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7.
한국인은 조금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꽉찬 물병인데,
일본인은 아무리 알아도 또 공부하고 노력하는 빈 항아리이다.

8.
한국인은 자기를 높이고 과시하며 상대방을 깔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자기는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려 한다.

9.
한국인은 수단방법 불문하고 내가 출세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여있다.

10.
한국인은 나라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애국자인양 여기는데,
일본인은 나라를 받들고, 총리 말을 바르게 실천하는것을 애국이라 생각한다.

11.
한국인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한는데,
일본인은 아는것도 동료와 협의 확인을 하며, 일을 처리함에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한다.

12.
한국인은 말로만 애국애족을 떠들고 실천에는 소극적인데,
일본인은 애국애족을 말로 떠들지 않고 소리없이 실천한다.

13.
한국인은 외국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서 잔뜩 사들고 오는데,
일본인은 자국 상품들고 나가 실컷 홍보하고 자랑하고 돌아온다.

14.
한국인은 높은 사람에게는 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강한 상약하강형이 많은데,
일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대하며 예의가 지나칠 정도로 바르다.

15.
한국인인 안먹어도 먹은 척, 책임이 있으면서 없는 척 오리발을 내미는데,
일본인은 잘못은 서로 책임지겠다고 하며, 그 책임자는 할복자살을 해버린다.

16.
한국인은 개개인이 사치하여 국가는 가난한데 비하여,
일본인은 한국보다 훨씬 어렵고 못사는것 같지만 국가는 세계초일류 부강대국이다.

17.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하는것 같지만 여럿이 하는일에는 싸움이 일어나고,
일본인은 개개인을 보면 형편없이 보이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단결이 되는 민족이다.

18.
한국인(노조)은 회사가 2천억이상의 손실이 났는데도 선과급 달라고 파업하는데.
일본인(노조)은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을 생각하여 임금동결을 자청한다.

세계화 시대 우리는 무었으로 일본인과 경쟁 하겠습니까? 우리도 변하면 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우리의 저력이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면 됩니다............!


받은 글입니다.

모든 한국인이나 모든 일본인이 그런 것도 아니고 공감하기 힘든 내용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외국인이 바라 본 현대 한국인의 기질

백석기의 ‘한국인 기질연구’- 8

외국인이 바라 본 현대 한국인의 기질

백석기: 아시아 투데이 대표이사

한국인의 기질에 대한 국내 지식인들의 시각은 매우 주관적이다. 그것도 부정적 시각에 비중이 치우쳐져 있다. 이는 일제강점으로 나라를 잃은 데 대한 자조와 반성의 풍조가 강했던 때문일 것이다. 모방성이 강하며 희색분자가 많고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며 방종, 사치, 낭비, 사행심이 심하다. 자립정신이 부족한데다 과거에 집착하며 긍정적 희망적 사고가 부족하다. 반면에 장점으로는 인정이 풍부하며, 인내심, 감투정신이 강한데다 낙천적이고 독창성과 교육열도 강하다. 또 풍부한 감성의 신바람문화가 체질화되어 있고 유머를 좋아한다.

근래 들어서는 한국인의 기질에 대한 객관적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 행동, 성격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는 질서의식, 자기관여, 동조성이 강한 것(김재은)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개방되고 국제교류가 왕성해지면서 세계 각국사람들은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편이다. 근대화 이후 중국과 일본인의 한국관으로는 개척정신과 호기심이 많고 예의를 존중하며 낙천적이다. 반면에 당파성이 강하고 과시성이 높으며 의존적 성격도 강하다. 과거 지향적이고 사치와 낭비벽도 심한데다 미신을 숭상하고 폭력성도 강하다. 개인적 재능은 비교적 우수한 편이나 단체생활에서는 조직력과 단결력, 질서의식이 부족해서 국민으로서는 결함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산업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세계국가들과의 무역, 과학, 교육, 문화 예술적 교류가 강화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와 문제점에서 다양한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외국상공인들 시각으로 볼 때 한국인은 역동적, 융통성, 인간미가 넘치는 반면, 합리성과 준법정신이 부족하며 노사대립이 한계를 벗어나기 일쑤인 나라이다. 또 기업들조차 공존의식 부족으로 건강한 기업문화를 흐리게 하고 있다.

외국 언론계나 일반 여행객들의 시각은 좀 더 다르다. 한국인의 고유문화 존중, 낙천적 인정주의, 역동성과 도전정신, 노인공경, 풍부한 감수성과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장점을 더 높게 꼽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급하며, 거칠고 흥분 잘하며, 질서의식 희박, 이기주의, 남에 대한 배려부족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화 예술계의 한국관은 훨씬 긍정적이다. 이들은 한국인의 단점으로 이타주의 부족과 운명론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밝은 ! 미래를 점치고 있다. 타고난 감성적 호소력, 인정주의와 자연미, 뛰어난 퓨전(Fusion)능력, 풍부한 창의력이 넘치는 국민으로 보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한국인은 개척정신이 강하고 낙천적이며 개개인이 우수한 재능과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이기주의와 파당성이 강해 국제화를 지향하는 국민으로서의 결함이 많다. 외형을 중시하여 허례와 과시성이 강하며 과거 지향적이고 질서의식이 약하다. 또 감정적 폭발력이 강하여 자칫 폭력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수긍 가는 면이 많다. 다만 서구인들의 시각이 좀 더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것은 한국인의 기질을 개방된 국제사회에서의 적응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외국인들의 한국관 역시 ? 解?한국인에게서 찾아 볼 수 없던 새로운 기질을 찾아냈다고 볼 수는 없다. 경제성장과 국제적 지위향상으로 자신감이 붙으면서 과거에 숨겨졌던 개성적 기질이 눈에 띠었을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국민적 기질이란 형성과정이 긴만큼 변화의 속도 역시 더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국인은 21세기 지식사회에 매우 유리한 기질을 타고 났다는 점이다. 다만 한국인이 보다 성숙한 세계인이 되려면, 아직은 덜 두드러진 공유협력의 정신 등 폭넓은 국제적 안목을 살려내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계속)


[필자 소개] 백석기 : 인터넷신문 ‘아시아투데이’ 대표이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주)데이콤의 창설멤버로 참여하여 본부장을 지냈다. 그 후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센터의 창설멤버로 문화진흥 본부장, 기획실장, 교육본부장 등을 역임한 이래 25년여 동안 한국의 정보문화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보화 전문잡지 〈정보시대〉 사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정보통신 교육원 원장 등을 지냈다. 20여 년 동안 정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군 기관, 주요 기업 등에서 정보문화 강의를 하면서 국내 주요일간지와 기관지, 기업사보 등에도 정보문화에 관한 장기연재 칼럼을 써왔다. 현재 인터넷종합신문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 〉의 대표이사, 인터넷방송협회 회장, 동국대학교 정보산업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 《정보예술의 미래》(공저), 《정보문화 확산을 위한 실천과제》 등이 있다.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
[연우포럼,No.2468]
www.younwooforum.com


받은 글입니다.

저는 이 편만 메일로 받았었는데 시리즈로 연재되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www.younwooforum.com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이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후 그 독일인의 사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사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것입니다.

** 이하 그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地圖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中國과 日本 사이에 韓半島가 있고 그곳에 韓國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中心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武力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自主性을 잃어본 적이 없는 奇跡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民族'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位와 3位를 차지하였다. 2位는 獨逸人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日本人 勝利者들의 表情, 이것은 人間이 表現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不可思議한 사진....

무엇이 이 두 勝利者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施賞臺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人間的인 儒敎라는 宗敎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民族은 이웃한 日本人(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不過하다는 價値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自負心 强한 民族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侵略, 즉 植民地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孫' 과 '南'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祖國 한국의 太極旗 (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革命이라든가 鬪爭이라든가 勝利 또는 위대한 皇帝의 문양인데 비해 宇宙와 人間과 세상 모든 것의 秩序와 調和를 의미한다) 代身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抵抗의 方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廢刊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彈壓의 方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解放되고 强要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戰爭을 치른 후, 한강의 奇跡!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唯一한 民族이다)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强力한 經濟的 富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開幕式, 聖火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勝利者, '孫'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演出家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場面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韓國人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暴力과 같은 單純함이 아닌) 놀라운 精神力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金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黃'이라고 하는 '孫' 老人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日本과 獨逸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祝祭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太極旗가 올라가자 이 '黃'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孫'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품은 '손'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人間에 대한 信賴에 限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悲劇的인 눈물로 시작된 歷史일지라도 歡喜와 高貴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人間과 國家와 民族의 尊嚴을 이 한국인 아니 韓國 民族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받은 글입니다.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李參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는 한국이 원래부터 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해석하였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 세 집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진돗개를 멧돼지 사냥에 이용하는 거예요. 멧돼지를 진돗개가 1대 1로 상대하여선 다 죽습니다. 그러니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입니다. 강한 敵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 좋게 지냅니다. 한국인들도 공동의 敵,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이지요."

(이 대목에서 첨언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렇다. 어디 한강의 기적뿐인가.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내 가족, 내 친족, 내 동네, 내 동문, 내 파당 등등으로 갈라져서 제편만 옳고 잘났다며 지역싸움, 당파싸움을 일삼고... 불안한 장래에 대하여도 각자가 다 다르게 개인적으로 혼자의 방식과 비책으로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번 뒤돌아 보자. 나라에 매우 큰 환란이 닥쳐올 때에는, 참 신기하게도국민 대다수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일치된 공감대(共感帶 consensus)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면서, 초당적으로 단결, 각자의 비책을 교환하며 너나없이 국난타개에 앞장서 몸바쳐 왔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동안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셔 대던 20만대군(지금같으면 2백만정도의 대군)의 왜구가 종국엔 거의 다 죽고 패퇴하였는데...그것은 이순신장군 혼자서 이룩한 승전이 아니라, 각처에서 온 백성이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용장으로서 6.25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한 장성(밴플리트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오랜동안 크고 작은 전쟁터를 다 다녀 보았는데, 한국군 같은 독종(?)은 보지 못했어요. 38선에서 밀리기 시작해서 한강, 수원, 대전, 낙동강 등 전선마다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군 패잔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거 같은데, 항상 저희들 끼리 새 부대를 편성하여 <일선에 다시 보내달라! 무기를 달라! >고 절규하는거야... 당시엔 탱크도 없어서, 나가면 죽는게 뻔한데... 유럽 전선에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패잔병은 도망쳐 초야에 흐터지면 그만이었지." ㅡ hweenam)

이찬씨는, 독일에서도 16세기 초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위대한 성취나 인물이 적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이 교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개인의 소중함이 인정되면서 위대한 국민, 위대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아직도 획일적인 생각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골프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여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국인의 성격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에너지는 세계적이란 것이다.

그는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철학자 헤겔이 지적한대로 독일인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情이 깊다, 애국심이 강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편감, 신부감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두 약사가 된 것처럼 각자 좋은 약을 추천하는 한국인,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자신감의 예로 들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李參씨는 비판하였다. 너무 "우리끼리 경쟁"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동양예의지국이 아니라 동양무례지국처럼 된 것도 교육의 실패이다.

李參씨는 한국인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멧돼지 같은 사냥감, 즉 국가적 목표와 비전, 또는 大義를 국가지도부가 만들어 내야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