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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호박이라면

만약 내가 호박이라면


만약 내가 잘 늙은 호박이었다면 내 안에 호박씨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호박씨마다 호박의 꿈을 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제대로 늙은 호박이었다면 물크러지거나 썩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기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죽을 뚫고 나가 솟는 떡잎들을 대견스럽게 여겼으리라.

- 최승호의 시산문집 '물렁물렁한 책' 중에서 -

Sundries: 아! 저렇게 노랄 수가.

Sundries: 아! 저렇게 노랄 수가.

노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정말 잎이 저렇게 노랄 수가 있는 것인가. 가을이 깊어갈수록 무당벌레들이 방황하는 것이 눈에 역력하다. 판자 울타리 위를 기어다니기도 하고 고추 말리는 마당을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 모두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발에 밟혀 죽은 무당벌레들만 해도 한두 마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날아든다.

- 최승호의《달맞이꽃 명상》중에서 -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코끝에, 눈가에, 옷깃 속에 가을 바람 가을 풍경이 파고듭니다. 거리엔 노란 은행잎이, 들녘엔 황금 물결이, 산야엔 붉은 단풍이 짙어갑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감도 따고 영근 곡식도 잘 거두십시오. 그러나 다음 채비도 잘 해야 합니다. 곧 추운 겨울이 올테니까요.


'Sundries: 아! 저렇게 노랄 수가.'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