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해야 할 일
◆ 이글은 피러한(한억만 목사)님이 보내주신 주간메일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어느 한국 유학생이 영어가 제대로 안 들려 강의 때마다 애를 먹는데 이상하게도 심리학(心理學) 시간만 되면 딴 사람이 되었다.
다른 교수에 비해 담당교수는 영어를 못 해도 학생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격려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주제(主題)를 칠판에 섰다.
‘만약 당신이 사흘 후에 죽는다면’
여기에 관해 세 가지 일을 생각해 보고 각자가 발표해 보라는 거였는데, 학생들이 갖고 온 답에는 다음 세 가지의 공통점(共通點)이 있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한다.
-다툰 사람과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다.
의외로 죽음을 앞두고 하고 싶은 세 가지 일들은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었다.
학생들의 대답을 다 들은 후에 교수는 칠판에 이렇게 섰다.
‘Do it now!’
어수선했던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질 때 그녀는 말했다.
‘죽음이 닥칠 때까지 그런 일들을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그 일들을 하세요!’
최근에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면서 내가 느꼈던 두 가지는 전쟁(戰爭)과 죽음에 대한 일이었다.
새삼 나는 지금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남자의 자격’에서는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 F16 전투기 타보기, 마라톤 완주, 지리산 정상 등반, 밴드를 결성하여 공연하기 등 황당한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정말 죽음을 앞두고 이런 이벤트적인 일들이 무슨 의미(意味)가 있을까.
오히려 지금 죽어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 학생들처럼 의외로 일상(日常) 속에 꿈 꾸었던 일들을 해보고 싶지 않겠는가.
첫째는 행복(幸福)한 삶이다.
새해가 되어 어느 언론사에서 '한국인의 행복'에 대해 조사 했었는데,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사람은 7% 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 질문했더니, 다른 9개국은 ‘나’ 자신이라고 대답한 반면에 한국은 ‘빌 게이츠’라 했다.
또 ‘무엇으로 행복해질까’물었더니 한국인은 주저 없이 ‘물질’(物質)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1960년대에 비해 GDP 250배쯤 불어났음에도, 미국에 비해 3배, 일본에는 2배나 더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하려면 함께 거하는 사람과 화목(和睦)해야 한다.
인간은 세상에서 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생의 핵심은 화목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고통이란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말할 대상도 없고, 자신을 인정해 주거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영웅(英雄)은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사람의 관계는 이처럼 마음만 통한다면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도 바칠 정도로 헌신적일 수가 있다. 그것이 행복의 원천(源泉)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의 인기가 갈수록 예사롭지가 않다.
인기(人氣) 비결은 너무나 단순하다. 내용이나 연기가 아니라, 일곱명 아저씨들의 ‘하모니’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있다.
처음 이 캐스팅을 본 주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혀 어울 릴 수 없는 조합’이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모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맡은 신 PD는 주위의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코드는 ‘하모니’였다.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아저씨들의 영향력이 생각 이상으로 극대화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모니의 위력’ 때문이었다.
지난 6천 년간의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겨우 268년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움과 분쟁(紛爭)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내일 죽든 50년을 더 살다가 죽든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며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眞理)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잘났든 못났든 그들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면서 하모니를 이루어 갈 때, 행복(幸福)의 꽃은 피어나게 된다.
둘째는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사랑(愛) 해야 한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생(生)이건만 사람들은 수없는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상처(傷處)는 친밀감을 먹고산다는 말처럼 가까운 사람은 너무 친밀하므로 기대가 많아 타인보다 더 많은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내 아내는 이젠 어머니보다 더 편한 여자가 되었다.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을 넘어 죄의식까지
들 때가 많다.
만약 그 사람이 먼저 저 하늘로 간다면 나는 얼마나 가슴 치며 속죄(贖罪)하는 마음으로 살 것인지 두렵다.
지금껏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그 얼굴을 보기가 미안한 것이다.
인생의 척도(尺度)는 사랑에 달려있다. 믿지 않았기에 빨리 끝나버리고, 그리워하지 않았기에 인내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사랑처럼 정직(正直)한 것도 없다. 내가 먼저 주지 않으면 상대도 주지 않는다.
사랑처럼 무모(無謀)한 것도 없다. 사랑은 몸과 인생을 다 주어도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그 사랑은 오늘도 용서(容恕)를 통해 구체화된다.
용서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는데, 그 하나는 용서란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자신을 용서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똑같이 스승을 배반했지만, 유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자살(自殺)했고 베드로는 과거를 용서했기에 순교자가 되었다.
또 다른 용서의 대원리는 용서의 유통기간은 하루라는 사실이다.
분(憤)은 해를 넘기지 말라고 말했듯이, 미움의 유통기간은 하루뿐이다. 상처는 빨리 치유해야한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용서를 생각한다면 분명 실패한 인생이다.
하루 사이에 죽을지도 모르기에 용서는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이다.
셋째는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봉사(奉仕)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사랑과 용서(容恕)는 봉사를 통해 비로써 결실을 맺게 된다.
‘의지’ 혹은 ‘선택’이라는 의미에서 온 자원봉사는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참된 진리를 알게 하는 히든 커리큘럼이다.
마치 신을 섬기듯 연약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그들의 삶의 일부를 느낌으로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되며 보다 폭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정(情)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색했던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이웃과 나눔에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백 마디 말보다도 한 번의 직접 봉사를 통해 돈 보다 더 귀한 인생의 가치들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중요 가치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자기밖에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던 자신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써 내일(來日)과 이웃 그리고 진지하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광고에 나온 것처럼 팔등신의 여인도 아름답지만, 따뜻한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로마 향기(香氣)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다.
봉사가 어느 한 때의 이벤트가 아니고 이미 삶의 일부분이 되어갈 때 내 양심을 지키고 겸허하게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므로 여유 있는 내일을 맞이하게 한다.
연말 어느 방송에서 대상을 받은 차인표 씨 소감(所感)이 감동을 주고 있다.
"새해가 밝았으니 모두 행복한 일을 하자. '컴패션'(compassion)을 통해 세계의 가난한 어린이들과 결연 해 달라. 결연하는 순간 여러분들의 인생이 더 행복해질 거다"라고 말하자, 고현정 씨와 권상우씨도 ‘저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는 아내 신애라 씨 대신 세계적인 어린이 양육기관 ‘컴패션’ 해외홍보촬영 차 만났던 아이들을 통해 그의 인생은 봉사(奉仕)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그는 컴패션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實踐)하는 연예인부부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행복은 자신을 넘어 이웃이 생의 사명(使命)이 될 때 삶의 의미를 느끼며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주여,
또 새해를
주시니 감사(感謝)합니다.
제게
2011년이 마지막인 것처럼,
누구든 화목하며
행복(幸福)한 삶을 살게 하시고,
진실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후회(後悔)하지 않는
삶을 살며,
당신처럼
사심(私心)없이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다가,
어느 때든지 저를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도록,
늘 준비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010년 새해, 1월 3일에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오래 전에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