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중국

Nature, Chinese Proverb

Image
If I keep a green bough in my heart, the singing bird will come. - Chinese Proverb 만약 내 마음에 녹색 가지가 있다면, 노래하는 새가 올텐데. - 중국속담

Happiness, Chinese Proverb

Image
If you want happiness for an hour? take a nap. If you want happiness for a day? Go fishing. If you want happiness for a year? Inherit a fortune. If you want happiness for a lifetime? Help someone else. - Chinese Proverb 한 시간 행복하고 싶다면 낮잠을 자라. 하루를 행복하고 싶다면 낚시를 해라. 일년을 행복하고 싶다면 재산을 물려받아라. 일생을 행복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라. - 중국속담

Judgement, Chinese Proverb

Image
盖棺论定[gàiguānlùndìng] - 中國俗談 Only when a man is dead can he be judged. - Chinese Proverb 한 사람의 일생의 공과(功過)와 시비(是非)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다.[盖棺论定 (개관론정, gàiguānlùndìng)] - 중국 속담 그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수 없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蓋棺事定(개관사정, gàiguānshìdìng) |

Generation, Chinese Proverb

Image
長江後浪推前浪 Simplified: 长江后浪推前浪 Transliteration (pinyin): Chángjiāng hòulàng tuī qiánlàng - 中國俗談 The Changjiang River(長江) waves behind drive the waves ahead. - Chinese Proverb Meaning: Each new generation excels the last one. 汉语成语俗语对照词典. 南京大学出版社. 2008. p. 162. ISBN 7305052116.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 - 중국 속담 明代의 증광현문(增廣賢文)에 나오는 말.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한 시대의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교체한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는 뜻. http://en.wikiquote.org/wiki/Chinese_proverbs

Advice, Chinese Proverb

Image
用人不疑疑人不用 [yòngrénbùyí yírénbùyòng] - 中國俗談 Don't suspect your employee. If one is suspicious, don't employ him. - Chinese Proverb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아라. [用人不疑 疑人不用(용인불의 의인불용)] - 중국속담 http://en.wikipedia.org/wiki/Ming-hsin_pao-chien http://idiomnstory.blogspot.com/1993/08/blog-post_08.html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2)

Image
만리장성(萬里長城)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km에이른다.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보통만리장성의 기원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770~ BC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왕국인 진이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당시의 만리장성은동쪽 랴오양(遼陽)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까지로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 2천여 년 역사, 시대에 따른 변화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다. 처음 건축될 무렵에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보하이 만까지 약 1,500km 길이였다. 이후 명(明) 나라 때 총 길이2,700km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지금에 이르고 있다 만리장성 2,700km가똑 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군사적 방어선이자 문화적 경계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1)

Image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흔히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어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은 후에 대 역사를 시작했을 때이죠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 한달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성 쌓는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죠.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야 있었겠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 터이라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보낸 여인이 외롭게 살고있는 외딴 집에 어느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었죠. 남편의 나이 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사람이 싸릿문을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했죠. 여인네가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주변에는 산세가 험하고 인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죠. "보아하니 이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듯 한데 사연이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숨길 것도 없고 해서 남편이 부역가게 된 그 동안의 사정을 말해 주었죠.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노골적인 수작을 걸었고,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더욱 안달이 났었죠.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정조를 지...

Virtue, Chinese Proverb

Image
Virtue is not left to stand alone. - Chinese Proverb 덕(德)은 홀로 남겨져 있지 않는다. - 중국 속담

中國: 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中國: 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1년 01월] 필자는 아이 둘의 학부모다. 요즘 진보 교육감들의 숨가쁜 교육개혁에 현기증이 난다. 공짜로 먹이고, 교복은 벗기고, 머리는 기르고, 중간•기말고사는 없애고…. 일단 바꾸고 보자는 식이다. 아찔한 속도감이다. 교육개혁 속도전이라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을 따라올 자가 없다. 1977년 여름 최고지도자로 복권된 그는 “중국에 가장 절박한 것은 교육”이라며 40명의 교육전문가와 5일간 합숙토론을 벌였다. 그가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12년 만에 우리의 대입수능인 가오카오(高考)의 부활이 결정됐다. 그해 입학한 대학 새내기가 중국의 77학번이다. 문화혁명 10년간 중국 대학에는 입시가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학교는 혁명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출신성분을 따지는 추천제를 통해 노동자•농민•군인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대부분 배울 자세도 아니고, 공부를 외면했다. 돌아다니며 정치 투쟁에만 골몰했다. 여기에 덩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는 마오쩌둥 선집을 찍던 종이와 윤전기로 가오카오 시험지를 인쇄했다. 불과 6개월 뒤 전국 각지에 하방(下放)됐던 570만 명의 인재들이 이 시험을 보았다. 당시 경쟁률은 무려 24:1을 기록했다. 중국의 77학번은 제대로 교육받은 첫 세대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제 이들이 중국을 이끌고 세계를 뒤흔드는 세상이 됐다. 차세대 지도자인 리커창(李克强•이극강) 부총리, 세계적 영화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 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 샤오보(劉曉波•류효파) 등이 대표주자다. 리 부총리는 집단농장에서 3년간 농사짓다 베이징대에 합격했고, 국민당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장 감독은 온갖 박해를 받다 27살 늦깎이로 베이징영화학교에 들어갔다. 지금 중국의 교육 현장은 어떨까. 한마디로 경쟁 그 자체다. 중•고부터 입시가 있다. 명문학교인 중점학교의 입시 경쟁은 살인적이다. 우월반 편성은 기본이다...

中國: 차이나 파워와 함께 사는 법

中國: 차이나 파워와 함께 사는 법 김영욱 중국이 ‘또 하나의 귀찮은 상전’으로 등장했다. 며칠 전 중국 유력신문 환구시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중국이 우리의 비윗장을 뒤집어 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천안함, 연평도, 어선 충돌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랬다. 하지만 이번 환구시보 건은 달랐다. 전에는 비윗장은 뒤집어 놓았을 망정 “손보겠다”는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강압했다. “한국이 멋대로 행동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한국을 손봐줄 지렛대가 많다”며 “그중 하나만 사용해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일개 신문의 논조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설령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라고 할지라도. 문제는 어쩌면 공연한 엄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한 힘을 중국은 분명히 갖고 있어서다. 역사적으로도 강대국은 늘 말발 뒤에 주먹을 숨기고 다녔다. 1990년대까지는 미국이 귀찮은 상전이었다. 시장 개방 요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쌀 시장을 열고, 담배 시장을 개방하고, 종국에는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라고 강요했다. 어차피 열 시장이었지만, 압력에 못 이겨 서둘러 개방한 게 탈이었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주도한, 다자간 협정을 통한 개방이야 그나마 감내할 만했다. 그러나 수퍼301조라는 보복성 무역법안을 끼고서 휘두르는 양자 협상에선 도무지 피할 재간이 없었다. 미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수출해서 번 돈으로 먹고살았기에 그들의 무례와 만용을 인내할 수밖에. 지금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는 양상이다. 2004년 미국을 제치고 최대 교역상대국이 됐다. 지난해 대(對)중국 무역의존도는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었다. 반면 미국은 그 절반도 안 된다. 무역흑자 의존도는 더 심하다.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우리가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은 380억 달러다. 하지만 대중 무역흑자는 407...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큰일 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라가 '핀란드화'의 가파른 비탈길을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1. 핀란드가 걸어온 길 핀란드는 작은 나라지만 백성들은 성깔 있는 사람들입니다. 백여 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7년 러시아가 공산혁명에 휩싸여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공산 소련이 자리 잡고 다시 독립을 위협하자 1939년 용감히 전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졌지요. 간신히 독립을 유지했지만 많은 권리를 내주었습니다. 1941년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켜 소련을 침공하자 함께 쳐들어갔습니다. 지난날의 불평등조약을 깨칠 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 서구를 등지고 나치 편에 선 셈이 되었습니다. 1944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단독으로 소련에 항복했습니다. 민주 정체로 독립을 유지하는 대가로 12%의 국토를 할양하고, 앞으로 외교 국방 등 일체의 대외 문제처리에 있어서는 소련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하고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나치 협력 때문에 서구 우방을 잃고 고립하게 된 핀란드는 완전히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한 모든 정부 요직 인선은 소련 대사관의 의중에 따르게 되고, 이를 어겼다 싶으면 즉각 경제 재제를 가하여 옴짝달싹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히 친소파가 판치게 되고, 언론, 출판도 반소적인 것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느덧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자기 검열"의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2. 깊어가는 한국 핀란드화의 수렁 21세기 들어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백년의 국치'를 겪었습니다. 1842년 아...

중국의 눈에 보이는 한국은?

중국의 눈에 보이는 한국은? “한국은 스스로를 동북아 국가로 본다. 일본은 스스로 동아시아 국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아시아 국가라고 하겠다.” 왕지쓰(王緝思)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은 아니다. 농담 반(半), 진담 반이었고 강연을 듣던 한중 양국 대학생들은 함께 웃었다. 합리적이고 온건한 주장을 펼쳐온 그는 “나는 가끔 중국 중심 사고를 한다. 내게 아시아란 중국과 주변 국가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8월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다.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지난해 베이징대에서 한 학기 겸임교수를 지내며 가진 중국 대표 지성들과의 토론을 무삭제로 실었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중국과 동등하게 보는 중국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은 한국의 제1무역 상대국이고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며 “중국은 한국을 이에 걸맞게 대접하고 있나”라고 묻는다. 중국은 대답한다. “지난해 중국 전체 수출액 중 한국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중국 31개 성시 중 하나인 광둥(廣東) 성의 소득이 조만간 한국 전체를 제칠 수도 있다.” 한국이 보는 중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은 이처럼 다르다. 게다가 이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제적 위상과 자신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문 교수는 그의 책에서 중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49년(중국 성립)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개혁개방 시작)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톈안먼 사태)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금융위기)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