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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Chinese Proverb


If I keep a green bough in my heart, the singing bird will come.

- Chinese Proverb

만약 내 마음에 녹색 가지가 있다면, 노래하는 새가 올텐데.

- 중국속담

Happiness, Chinese Proverb


If you want happiness for an hour? take a nap. If you want happiness for a day? Go fishing. If you want happiness for a year? Inherit a fortune. If you want happiness for a lifetime? Help someone else.

- Chinese Proverb

한 시간 행복하고 싶다면 낮잠을 자라. 하루를 행복하고 싶다면 낚시를 해라. 일년을 행복하고 싶다면 재산을 물려받아라. 일생을 행복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라.

- 중국속담

Judgement, Chinese Proverb


盖棺论定[gàiguānlùndìng]

- 中國俗談

Only when a man is dead can he be judged.

- Chinese Proverb

한 사람의 일생의 공과(功過)와 시비(是非)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다.[盖棺论定 (개관론정, gàiguānlùndìng)]

- 중국 속담

그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수 없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蓋棺事定(개관사정, gàiguānshìdìng) |

Generation, Chinese Proverb


長江後浪推前浪
Simplified: 长江后浪推前浪
Transliteration (pinyin): Chángjiāng hòulàng tuī qiánlàng

- 中國俗談

The Changjiang River(長江) waves behind drive the waves ahead.

- Chinese Proverb

Meaning: Each new generation excels the last one.
汉语成语俗语对照词典. 南京大学出版社. 2008. p. 162. ISBN 7305052116.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

- 중국 속담

明代의 증광현문(增廣賢文)에 나오는 말.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한 시대의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교체한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는 뜻.

http://en.wikiquote.org/wiki/Chinese_proverbs

Advice, Chinese Proverb


用人不疑疑人不用 [yòngrénbùyí yírénbùyòng]

- 中國俗談

Don't suspect your employee. If one is suspicious, don't employ him.

- Chinese Proverb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아라. [用人不疑 疑人不用(용인불의 의인불용)]

- 중국속담

http://en.wikipedia.org/wiki/Ming-hsin_pao-chien
http://idiomnstory.blogspot.com/1993/08/blog-post_08.html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2)

만리장성(萬里長城)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km에이른다.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보통만리장성의 기원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770~ BC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왕국인 진이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당시의 만리장성은동쪽 랴오양(遼陽)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까지로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


2천여 년 역사, 시대에 따른 변화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다. 처음 건축될 무렵에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보하이 만까지 약 1,500km 길이였다. 이후 명(明) 나라 때 총 길이2,700km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지금에 이르고 있다


만리장성 2,700km가똑 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군사적 방어선이자 문화적 경계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쏟는 정성도 달라졌다. 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1)

재미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이야기


흔히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어원은 전혀 다른 뜻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은 후에 대 역사를 시작했을 때이죠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 한달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장에 징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성 쌓는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죠.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야 있었겠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 터이라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을 부역장에 보낸 여인이 외롭게 살고있는 외딴 집에 어느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었죠.

남편의 나이 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한사람이 싸릿문을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정중하게 간청을 했죠. 여인네가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주변에는 산세가 험하고 인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죠. "보아하니 이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듯 한데 사연이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숨길 것도 없고 해서 남편이 부역가게 된 그 동안의 사정을 말해 주었죠.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노골적인 수작을 걸었고,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더욱 안달이 났었죠.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직 우리는 너무 젊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의 평생을 책임질 테니 나와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같이 삽시다."

사내는 별별 수단으로 여인을 꼬드기 시작 했었죠. 하지만 여인은 냉랭 했습니다.

사내는 그럴수록 열이나서 저돌적으로 달려 들었고, 여인의 판단은 깊은 야밤에 인적이 없는 이 외딴 집에서 자기 혼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저항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여인은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조건을 걸었었죠.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고 했고. 여인은 "남편에게는 결혼식을 올리고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간의 의리가 있으니 그냥 당신을 따라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 테니 날이 밝는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 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만 받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주는 기분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마음이 좀 홀가분 할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 오시면 저는 평생을 당신을 의지하고 살 것입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 주신다면 제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마음씨 또한 가상 한지라 좋은 여인을 얻게 되었노라 쾌재 부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덤벼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욕정을 채운 후 골아 떨어졌죠.

사내는 아침이 되어 흔드는 기척에 단잠을 깨었죠. 밝은 아침에 보니 젊고 절세의 미모에다 고운 얼굴에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니 양귀비와 같이 천하 미색이었죠.

사내는 저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는 황홀감에 빠져서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어제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길 떠날 차비를 했고.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의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괴나리 봇짐에 챙겨 주는 것이 었습니다.

사내 마음은 이제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와서 평생을 해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었었죠.

드디어 부역장에 도착하여 감독관에게 면회를 신청하면서. 옷을 갈아 입히고 글 한 장을 받아 가야 한다는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감독관이 "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장을 나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옷을 갈아 입을 동안 당신이 잠시 교대를 해 줘야 가능하다" 고 말하자. 사내는 그렇게 하겠노라 하고 여인의 남편을 만난 사내는 관리가 시킨대로 대신 들어가고 그에게 옷 보따리를 건네주었죠.

남편이 옷을 갈아 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자 옷 속에서 편지가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아내 해옥입니다. 당신을 공사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 각오가 서시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려거든 그 남자와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십시오."

자신을 부역장에서 빼내 주기 위해서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다고 고백을 듣지만 그것을 용서하고 아내와 오손도손 사는 것이 낫지, 어느 바보가 평생 못나올지도 모르는 만리장성 공사장에 다시 들어가서 교대를 해주겠는가?

남편은 옷을 갈아 입고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와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랍니다.

이거야말로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다 쌓은 것이 아닙니까? 하고 많은 인간사에서 이처럼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만리장성을 쌓아준다면 다행한 일이겠지만,

어리석은 그 사내 처럼 잠시의 영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만리장성을 영원히 쌓아주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요!


끝까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야 만리장성(萬里長城) 에 관한 전설을 잘 알게 되었군요. 지아비를 위한 한 여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하루 밤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여인의 남편을 대신하여 萬里長城을 쌓으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그 남자에게도 연민이 갑니다.


받은 글입니다.

Virtue, Chinese Proverb



Virtue is not left to stand alone.

- Chinese Proverb

덕(德)은 홀로 남겨져 있지 않는다.

- 중국 속담

中國: 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中國: 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1년 01월]

필자는 아이 둘의 학부모다. 요즘 진보 교육감들의 숨가쁜 교육개혁에 현기증이 난다. 공짜로 먹이고, 교복은 벗기고, 머리는 기르고, 중간•기말고사는 없애고…. 일단 바꾸고 보자는 식이다. 아찔한 속도감이다. 교육개혁 속도전이라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을 따라올 자가 없다. 1977년 여름 최고지도자로 복권된 그는 “중국에 가장 절박한 것은 교육”이라며 40명의 교육전문가와 5일간 합숙토론을 벌였다. 그가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12년 만에 우리의 대입수능인 가오카오(高考)의 부활이 결정됐다. 그해 입학한 대학 새내기가 중국의 77학번이다.

문화혁명 10년간 중국 대학에는 입시가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학교는 혁명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출신성분을 따지는 추천제를 통해 노동자•농민•군인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대부분 배울 자세도 아니고, 공부를 외면했다. 돌아다니며 정치 투쟁에만 골몰했다. 여기에 덩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는 마오쩌둥 선집을 찍던 종이와 윤전기로 가오카오 시험지를 인쇄했다. 불과 6개월 뒤 전국 각지에 하방(下放)됐던 570만 명의 인재들이 이 시험을 보았다. 당시 경쟁률은 무려 24:1을 기록했다.

중국의 77학번은 제대로 교육받은 첫 세대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제 이들이 중국을 이끌고 세계를 뒤흔드는 세상이 됐다. 차세대 지도자인 리커창(李克强•이극강) 부총리, 세계적 영화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 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 샤오보(劉曉波•류효파) 등이 대표주자다. 리 부총리는 집단농장에서 3년간 농사짓다 베이징대에 합격했고, 국민당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장 감독은 온갖 박해를 받다 27살 늦깎이로 베이징영화학교에 들어갔다.

지금 중국의 교육 현장은 어떨까. 한마디로 경쟁 그 자체다. 중•고부터 입시가 있다. 명문학교인 중점학교의 입시 경쟁은 살인적이다. 우월반 편성은 기본이다. 올림피아드준비반에, 수시대비반까지 있다. 거의 의무적으로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머리와 교복은 따로 규정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남학생은 빡빡머리, 여학생은 단발머리를 한다. 교복? 안 입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 대신 우리의 체육복이 교복이다.

중국 교사들은 우리의 ‘교총 대(對) 전교조’와 달리 일반교사-고급교사-특급교사로 나누어진다. 매 학기 교장•학생•학부모에게 칼 같이 종합평가를 받고, 잘못하면 학기 중간에 담임에서 쫓겨난다. 자신이 맡은 반의 대학 진학률, 가오카오 성적에 따라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승진을 위해 자기계발에 목을 맨다. 특급교사로 승진하면 정년이 5년 연장되고 대학교수 이상의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대신 매년 일류 학술지에 3편 이상의 논문을 실어야 한다.

이런 중국 교육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하이가 1등을 차지한 것이다. 읽기•수학•과학에서 골고루 압도적 점수차를 보였다. 왜 우리 진보 교육감들은 입만 열면 “핀란드를 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핀란드는 PISA에서 우리보다 한참 밑이다. 오히려 진정한 경쟁 상대는 중국•홍콩•대만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자신의 이념에 따라 핀란드의 좋은 면만 부각시키고 무섭게 부상한 중국은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교육은 한 세대 뒤의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우리 아이들의 경쟁 상대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다. 같은 학교 짝꿍이 아니라, 전 세계 또래 아이들과 어깨를 겨뤄야 한다. 한국은 사람 하나로 경제기적을 이뤘고, 앞으로도 믿을 건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 머리를 길러 머리가 좋아진다면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교복을 없애야 성적이 오른다면 알몸의 구석기시대로 달려갈 수 있는 게 한국의 학부모들이다. 중국 77학번의 화려한 비상을 보면서 덩의 혜안(慧眼)에 다시 한번 무릎을 친다. 우리 진보 교육감들의 어설픈 실험이 나중에 우리의 가슴을 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왠지 불안하다.



받은 글입니다.

中國: 차이나 파워와 함께 사는 법

中國: 차이나 파워와 함께 사는 법
김영욱

중국이 ‘또 하나의 귀찮은 상전’으로 등장했다. 며칠 전 중국 유력신문 환구시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중국이 우리의 비윗장을 뒤집어 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천안함, 연평도, 어선 충돌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랬다. 하지만 이번 환구시보 건은 달랐다. 전에는 비윗장은 뒤집어 놓았을 망정 “손보겠다”는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강압했다.

“한국이 멋대로 행동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면 중국은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한국을 손봐줄 지렛대가 많다”며 “그중 하나만 사용해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일개 신문의 논조에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설령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라고 할지라도. 문제는 어쩌면 공연한 엄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한 힘을 중국은 분명히 갖고 있어서다. 역사적으로도 강대국은 늘 말발 뒤에 주먹을 숨기고 다녔다.

1990년대까지는 미국이 귀찮은 상전이었다. 시장 개방 요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쌀 시장을 열고, 담배 시장을 개방하고, 종국에는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라고 강요했다. 어차피 열 시장이었지만, 압력에 못 이겨 서둘러 개방한 게 탈이었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주도한, 다자간 협정을 통한 개방이야 그나마 감내할 만했다. 그러나 수퍼301조라는 보복성 무역법안을 끼고서 휘두르는 양자 협상에선 도무지 피할 재간이 없었다. 미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수출해서 번 돈으로 먹고살았기에 그들의 무례와 만용을 인내할 수밖에.

지금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는 양상이다. 2004년 미국을 제치고 최대 교역상대국이 됐다. 지난해 대(對)중국 무역의존도는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었다. 반면 미국은 그 절반도 안 된다. 무역흑자 의존도는 더 심하다.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우리가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은 380억 달러다. 하지만 대중 무역흑자는 407억 달러로 전체 흑자보다도 30억 달러나 더 많다.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나라와의 무역 적자도 메우고 경제성장도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중 52%가 중국과의 교역효과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처럼 행동하는 건 시간문제다. 예전의 미국처럼 무역보복을 하거나 무역흑자를 줄이라고 요구할 수 있다. 무례와 만용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환구시보의 막말은 맛보기에 불과할 게다.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둘러싼 미•중 각축전이 치열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 편이냐”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날도 올 게다. 전에는 미국으로부터 살아남는 게 우리의 생존전략이었지만, 앞으론 중국의 거대한 자기장 속에서 어떻게 독자생존할지가 관건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필요한 건 현실을 인정하는 거다. 중국이 재채기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이라는 현실을. 싫지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순간적인 분노와 증오에 매여 반중(反中)과 혐중(嫌中)으로 달려가선 안 된다. 이 칼럼에서 여러 차례 썼듯이, 중요한 건 용중(用中)의 지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정말 잘해야 한다.

중국 의존형 경제구조에서 벗어나는 차이나 아웃(China out) 전략도 필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 체결하고, 한• EU FTA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인도나 브라질 등과의 협력과 제휴 강화는 물론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국력을 키우는 일이다. 독일처럼 세계 4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면 중국이 무례와 만용을 부릴 수 없다. 힘이 세면 아무도 집적대지 못한다는 건 나라도 마찬가지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에 안주하거나 그런 시스템으론 안 된다는 얘기다. 5만 달러, 6만 달러 전략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으로부터 살아남을 지혜는 우리에게 분명 있다. 문제는 어떻게 실천하느냐다. 그런 리더가 정녕 우리에게 있느냐다.


옮긴 글입니다.

中國: 차이나 파워와 함께 사는 법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큰일 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라가 '핀란드화'의 가파른 비탈길을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1. 핀란드가 걸어온 길

핀란드는 작은 나라지만 백성들은 성깔 있는 사람들입니다. 백여 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7년 러시아가 공산혁명에 휩싸여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공산 소련이 자리 잡고 다시 독립을 위협하자 1939년 용감히 전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졌지요. 간신히 독립을 유지했지만 많은 권리를 내주었습니다.

1941년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켜 소련을 침공하자 함께 쳐들어갔습니다. 지난날의 불평등조약을 깨칠 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 서구를 등지고 나치 편에 선 셈이 되었습니다. 1944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단독으로 소련에 항복했습니다.

민주 정체로 독립을 유지하는 대가로 12%의 국토를 할양하고, 앞으로 외교 국방 등 일체의 대외 문제처리에 있어서는 소련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하고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나치 협력 때문에 서구 우방을 잃고 고립하게 된 핀란드는 완전히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한 모든 정부 요직 인선은 소련 대사관의 의중에 따르게 되고, 이를 어겼다 싶으면 즉각 경제 재제를 가하여 옴짝달싹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히 친소파가 판치게 되고, 언론, 출판도 반소적인 것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느덧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자기 검열"의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2. 깊어가는 한국 핀란드화의 수렁

21세기 들어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백년의 국치'를 겪었습니다.

1842년 아편전쟁으로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어 홍콩을 할양한 것을 스타트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여 대만을 내주고 조선에서 밀려나고, 1931년 일본의 침공으로 만주를 빼앗기고 뒤이어 중일전쟁으로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었다가, 1945년 2차대전이 끝나 겨우 국권이 회복될 때까지의 백년간입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3국시대 천년을 빼고는, 청일전쟁 이후부터 냉전이 종식되어 한중 국교가 재개된 1992년까지의 백년이 한국이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던 유일한 기간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보듯, 대국과 이웃하는 것은 불행한 일에 속합니다. G2의 경제 대국이면서 이미 한국의 제1무역상대국이 된 중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그런 富에 걸맞은 문화 수준에 와 있지 못하고, 더구나 지난 백년의 국치에 한이 맺혀, 사리에 맞지 않게 힘을 과시하려 합니다. 광적 민족주의 성향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위한 성화 봉송 도중 중국인들이 한국시민과 경찰에 폭행을 가했습니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우발이 아닌 정부의 지시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또 작년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때 중국의 정부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 유물이며, 냉전시대의 군사동맹으로 현대의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한국의 국가 원수를 모욕함으로써 자국의 위상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또 툭하면 한국 상품에 제동을 걸어 한국 정부를 길들이려 합니다. 북한은 이미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어 식량과 기름을 얻어 쓰는 대가로 북한 내 사업 이권을 대폭 양도하고, 백두산 등 국경선 책정에 양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들리는 중국대사의 망언이나 위 여러 사례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나 언론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미국이나 일본 측에서 일어났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미 한국의 핀란드화가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입니다.

3. 후손을 위한 우리의 할 일

중국이 저리도 커지고 우리와 이웃이라는 조건으로 볼 때 우리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가정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그 영향권 내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를 최소로 줄일 것인가를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첫째는 장기적 목표로,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중국 대책을 포함해 모든 일의 근본적 해결책일 것입니다.

둘째는 당장의 목표로, 한국 내 북한지지 좌파세력을 척결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핀란드가 그랬듯이 동맹국 우방이 없어지면 강국에 일방적으로 당하게 마련입니다. 중국이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하는 것도 그 점을 노린 것입니다. 한미동맹이 깨지는 날이 중국이 한국을 경멸하게 되는 날입니다. 중국에 대해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일본과도 중국문제에 대해서는 협력해 나가야 합니다.

넷째는 나라의「國格」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외국인에 대한 사법권의 정당한 행사는 대국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나라의 마지막 보루가 됩니다. 중국인의 난동에 대한 비굴한 자세는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도덕적 타락입니다. 과거 대만과의 신의 없는 단교가 오히려 중국 당국의 경멸을 샀던 것과 같은 처사입니다.

이상은 卜鉅一 씨의 저서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중 몇 대목입니다. 이 책을 읽고 오늘에 우리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이 자라고 있는 우리들의 어린 후손을 위해 지금 세대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중대사에 눈을 뜨게 해준 저자에게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韓國의 Finland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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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눈에 보이는 한국은?

중국의 눈에 보이는 한국은?

“한국은 스스로를 동북아 국가로 본다. 일본은 스스로 동아시아 국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아시아 국가라고 하겠다.”

왕지쓰(王緝思)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은 아니다. 농담 반(半), 진담 반이었고 강연을 듣던 한중 양국 대학생들은 함께 웃었다. 합리적이고 온건한 주장을 펼쳐온 그는 “나는 가끔 중국 중심 사고를 한다. 내게 아시아란 중국과 주변 국가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8월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다.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지난해 베이징대에서 한 학기 겸임교수를 지내며 가진 중국 대표 지성들과의 토론을 무삭제로 실었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중국과 동등하게 보는 중국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은 한국의 제1무역 상대국이고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며 “중국은 한국을 이에 걸맞게 대접하고 있나”라고 묻는다.

중국은 대답한다. “지난해 중국 전체 수출액 중 한국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중국 31개 성시 중 하나인 광둥(廣東) 성의 소득이 조만간 한국 전체를 제칠 수도 있다.”

한국이 보는 중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은 이처럼 다르다. 게다가 이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제적 위상과 자신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문 교수는 그의 책에서 중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49년(중국 성립)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개혁개방 시작)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톈안먼 사태)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금융위기)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나라다. 타국의 원조에 의존해 살다가 50년 만에 원조를 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나라다.

한국이 남미에 있었다면 국내총생산(GDP) 수위(首位)를 다투는 강국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유럽에서도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이웃나라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라는 4대 열강이다. 모두 한국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세계패권을 잡았거나 다투는 국가다.

올해 들어 중국이 미국 일본 등과 도처에서 티격태격한다. ‘희토류’ 하나로 일본을 무릎 꿇렸다. 미국이 남중국해 개입 의사를 분명히 하자 중국 인민해방군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실탄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 위안화 환율 절상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중국 부활의 토대를 닦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생전에 “앞으로 50년간 조용히 힘만 기르라”고 당부했다. 현재 중국의 모습은 이 말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 간의 힘겨루기는 이처럼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게다가 부활한 중국의 눈에 이웃나라인 한국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100년 전 열강의 격돌로 한반도는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고 60년 전 열강의 격돌에 한반도가 불바다로 변했다. 중국을 제대로 보고 공존의 길을 찾는 것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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