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러시아의 뜨내기 청년 흘레스타코프는 부패한 지방 관리와 우체국장 등에게 자신이 검찰관 행세를 하면서 뇌물을 실컷 받는다. 그 가운데 한 관리는 이 청년을 주지사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추잡한 아첨을 떨지만 지체 높으신 분들의 소사이어티를 발칵 뒤집어 놓은 채 그는 홀연히 사라진다. 관리들의 뒤통수를 치고 바보로 만든 뒤 그들이 갖다 바친 돈만 챙겨서 아무도 모르게 뺑소니쳐버린 것이다. 검찰관이라는 신분만으로 통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세태가 그대로 엿보인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가인 니콜라이 고골리의 희곡 ‘검찰관(Revizor)’은 1863년에 무대에 올려졌다. 주인공 청년 이야기는 당시 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결국 작가가 국외로 도피하기까지 했다. 2년 전 고골리 탄생 200주년을 지나면서 그의 문학작품 재조명 분위기 이후 ‘검찰관’을 다시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연극을 본 사람들은 주지사나 지방관리들의 부패에 역겨움을 느끼지만 사실 고골리가 미워했던 것은 그들을 처단해야 할 검찰관의 부패와 직권남용이었을 것이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던 경북 경산시청의 5급 공무원 김모(54)씨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대검의 감찰결과 검사가 손찌검을 하고 수사관들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김 씨를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유서에서 “당일 검찰청에 조사를 받으러 갔더니 한 수사관은 술에 취해 생OOO하고 다른 수사관 역시 술 냄새가 진동해 제대로 조사를 받을 수 없었다. 1XX3호 검사는 자기가 원하는 답을 강요하면서 개OO, 소OO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고 수 차례 뺨을 때렸다. 주먹으로 가슴을 구타당했을 때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는 내용을 남겼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김 씨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검찰수사과정의 ‘자살시리즈’는 한두 번이 아니다. 2년 전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0여 년 동안에만 수십 건의 자살이 이어졌다. 2003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자살을 비롯해 2004년 안상영 부산시장 구치소 자살,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 자살, 박태영 전남지사 자살, 이준원 파주시장 자살, 2005년 이수일 국정원 차장 자살, 2009년 김영철 국무총리실 차장 자살, 지난해 LIG 넥스원 평석태 부회장 자살 등 알 만한 사람들만 이 정도니 세상 사람들 기억에도 없이 자살한 수많은 민초들의 사례는 또 얼마나 될지 가슴이 답답하다.
지난 주 검찰총장의 요청으로 특강에 나선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 씨가 오죽하면 검찰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김 씨는 40여명의 검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심한 듯 “검찰의 국민 불신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과거 억울하게 기소돼 장기 복역하거나 사형당한 사람들이 최근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검찰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엄청난 잘못을 사과하거나 해명하지 않고 민원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으로 검찰이미지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고 거친 충고를 쏟아냈다.
직권남용과 독직에 대해 법원도 국정원(과거 안기부와 중앙정보부)도 머리 숙여 사죄했지만 유독 검찰만은 진실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시선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소설가 김훈 씨만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에게 ‘검찰은 자기반성을 모르는 유일한 권력기관’이라는 이미지를 벗도록 해주는 것이 이 시대의 요청이고 소명이다. 검사들은 김훈씨 강의 기사에 올라온 수많은 네티즌들의 의견을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검찰은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여 법원에 법의 정당한 적용을 요구하는 국가 행정작용, 국가소추주의의 주인공이다.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이 나라에서는 오로지 검사들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맡겼는데 잊어버릴만하면 불공정 편파수사 시비와 수사 중 자살사건이 끓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소독점권을 해체해 경찰이나 공수처로 나누자는 논의에는 결사반대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20여 년 전 필자가 일선 검찰출입기자 시절 만난 심재륜 전 고검장의 말이 생각난다. “검찰은 칼날을 세우되 항상 고뇌 어린 자기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특수 수사통으로 절개를 지키다 옷을 벗은 그는 폭탄주의 대표 주당답게 술잔을 돌리면서 언론인들에게 검찰의 끝없는 자기 성찰을 강조했다.
한국의 검찰(檢察)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수사(檢)하고 괴롭혀서 목표했던 대상을 기소하는 성과를 올리는 일에만 급급했지 피의자나 백성을 따뜻한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는 또 다른 노력(察)은 세월이 가도 그대로인 것 같다. 경제수준도 높아지고 사회도 선진화되었는데 왜 검찰만은 아직도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검(檢)이 바로 서려면 찰(察)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검찰의 초심이 지켜져야 국민들이 행복해진다. 검찰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반성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의 변화를 잘 읽어내야 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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