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유한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가능성을 믿는 낙관적인 힘으로 인간은 발전한다
- 탈무드
때론 세상이 우릴 힘들게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 사람들에게 삶은 '웃음'을 안겨주는 듯 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무한질주하는 한주되세요..
옮긴 글입니다.
Sundries: 실패는 유한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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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에 의해서 평가된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알려지고 사람은 일에 의해서 평가된다.
- 탈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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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말조심 한 말도 다시 보자
자나 깨나 말조심 한 말도 다시 보자
어느 날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그 아내는 바구니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서 소의 혀를 사왔다. 그 혀를 가지고 그날 요리를 해서 먹었다. 몇 일 후에 남편이 또 말하기를 오늘은 가장 싼 것을, 모든 음식 재료 중에 싼 것을 사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아내는 또 가서 소 혀를 사왔다. 남편이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혀를 사오고,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느냐?” 하고 말하자 부인은 대답하기를 “가장 맛있는 것이 혀입니다.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그 아름다운 말을 듣는다는 것, 이보다 더 맛있는 게 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거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왔습니다. 또한,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바로 말입니다. 그래서 혀를 사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혜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고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것도 말이다. 그래서 말에 허물이 없으면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하고 그리고 망하기도 한다. 평소에 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어떻게 나에게 영향을 주는지 아는가? 말은 한번 내 입에서 나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취하고서야 사라진다. 가령 내가 누구를 저주했다고 치자. 내가 저주한 그 상대가 받아서 저주를 받았던가, 아니면 저주를 받을 대상이 전혀 저주받을 이유가 없다면 그 저주는 저주를 한 바로 그 사람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저주는 우주를 떠돌다가 그들의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좋은 말은 좋은 말대로 성취되고, 나쁜 말은 나쁜 말대로 이루어진다.
흔히 의사들이 하는 말 가운데 마취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마취가 끝나고 회복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자기의 속마음을 말하게 되는데 거기서 종종 재미있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름이 아닌 전혀 가족들이 모르는 이름을 부르면서 웅얼 웅얼한다든지, 뭔가 비밀이 될만한 것들을 이야기해서, 주변 사람을 아연질색 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가 결정적일 때 어떤 말을 할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알게 된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 앞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가 있는데,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 결과가 생기지 않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필자를 찾아온 부형이 있었다. 아들이 가출을 하게 되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의 가출에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거의 이 부형은 정신이 없었다. 애가 나가서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돌아올 것인지 안 돌아 올 것인지 이게 너무 답답해서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해서 가출을 하였는지, 아버지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은 어떠한지를 이야기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평상시에 아이가 말썽을 부릴 때면 "야! 그럴 바엔 차라리 집을 나가라.” 그렇게 말해본 일은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죠. "그 꼴로 살려면 차라리 나가서 죽어라!" 고 했다는 것이다. “야! 너 같은 거 우리 가문에 필요 없고, 내가 널 낳은 걸 내가 후회한다” 이랬다는 것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어머니가 한 말 그대로 되었었지 않은가? 오히려 나가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으니 그 아들은 효자인 셈이다.
평상시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사는가? 긍정적인 말, 부정적인 말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세워주는 말이 있고 사람을 깎아 내리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이 더 좋은지 우리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보다도 나쁜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나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험담이라는 것을 탈무드에서는 삼자를 죽인다고 한다.. 하나는 말을 듣는 사람을 죽인다. 내가 험담을 말하게 되면 그 사람 마음이 그만 상하고 무너지고 만다. 또 하나는 험담의 대상이 죽는다. 이 내용에 있는 거 내가 지금 험담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죽는다..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험담하고 있는 내 자신이 죽는다. 바로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어두운 말, 부정적인 말, 더러운 말을 하지 말 것은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내 인격을 황폐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운명이 삐뚤어져 나간다. 결국 실패의 인생을 살게 된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의 말 습관을 살펴 보라. 어떤 말을 주로 하고 있는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을 많이 사용하는가? 아니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많이 사용하는가?
한국리더십연구소 김태흥소장
받은 글입니다.
어느 날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그 아내는 바구니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서 소의 혀를 사왔다. 그 혀를 가지고 그날 요리를 해서 먹었다. 몇 일 후에 남편이 또 말하기를 오늘은 가장 싼 것을, 모든 음식 재료 중에 싼 것을 사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아내는 또 가서 소 혀를 사왔다. 남편이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혀를 사오고,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느냐?” 하고 말하자 부인은 대답하기를 “가장 맛있는 것이 혀입니다.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그 아름다운 말을 듣는다는 것, 이보다 더 맛있는 게 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거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왔습니다. 또한,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바로 말입니다. 그래서 혀를 사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혜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고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것도 말이다. 그래서 말에 허물이 없으면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하고 그리고 망하기도 한다. 평소에 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어떻게 나에게 영향을 주는지 아는가? 말은 한번 내 입에서 나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취하고서야 사라진다. 가령 내가 누구를 저주했다고 치자. 내가 저주한 그 상대가 받아서 저주를 받았던가, 아니면 저주를 받을 대상이 전혀 저주받을 이유가 없다면 그 저주는 저주를 한 바로 그 사람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저주는 우주를 떠돌다가 그들의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좋은 말은 좋은 말대로 성취되고, 나쁜 말은 나쁜 말대로 이루어진다.
흔히 의사들이 하는 말 가운데 마취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마취가 끝나고 회복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자기의 속마음을 말하게 되는데 거기서 종종 재미있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름이 아닌 전혀 가족들이 모르는 이름을 부르면서 웅얼 웅얼한다든지, 뭔가 비밀이 될만한 것들을 이야기해서, 주변 사람을 아연질색 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가 결정적일 때 어떤 말을 할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알게 된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 앞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가 있는데,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 결과가 생기지 않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필자를 찾아온 부형이 있었다. 아들이 가출을 하게 되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의 가출에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거의 이 부형은 정신이 없었다. 애가 나가서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돌아올 것인지 안 돌아 올 것인지 이게 너무 답답해서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해서 가출을 하였는지, 아버지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은 어떠한지를 이야기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평상시에 아이가 말썽을 부릴 때면 "야! 그럴 바엔 차라리 집을 나가라.” 그렇게 말해본 일은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죠. "그 꼴로 살려면 차라리 나가서 죽어라!" 고 했다는 것이다. “야! 너 같은 거 우리 가문에 필요 없고, 내가 널 낳은 걸 내가 후회한다” 이랬다는 것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어머니가 한 말 그대로 되었었지 않은가? 오히려 나가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으니 그 아들은 효자인 셈이다.
평상시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사는가? 긍정적인 말, 부정적인 말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세워주는 말이 있고 사람을 깎아 내리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이 더 좋은지 우리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보다도 나쁜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나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험담이라는 것을 탈무드에서는 삼자를 죽인다고 한다.. 하나는 말을 듣는 사람을 죽인다. 내가 험담을 말하게 되면 그 사람 마음이 그만 상하고 무너지고 만다. 또 하나는 험담의 대상이 죽는다. 이 내용에 있는 거 내가 지금 험담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죽는다..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험담하고 있는 내 자신이 죽는다. 바로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어두운 말, 부정적인 말, 더러운 말을 하지 말 것은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내 인격을 황폐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운명이 삐뚤어져 나간다. 결국 실패의 인생을 살게 된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의 말 습관을 살펴 보라. 어떤 말을 주로 하고 있는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을 많이 사용하는가? 아니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많이 사용하는가?
한국리더십연구소 김태흥소장
받은 글입니다.
마지막에 동행할 친구
♣마지막에 동행할 친구♣
탈무드에 보면 세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날 임금이 使者를 보내어 어떤 사나이에게 곧 출두하라고 명령을 했다.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첫 친구는 대단히 우정이 깊어 항상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두번째 친구는 친하긴 했지만 첫째 친구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평소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이였다
임금의 사자(使者)가 왔을 때 그는 겁도 나고 불안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가기로 마음을 먹고 첬째 친구에게 가서 동행을 청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단호히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 친구는 대궐문 앞까지만 가겠다고 대답했다. 풀이 죽은 그는 할 수 없이 세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세번째 친구는 뜻밖에도 기쁘게 응하면서 임금에게 잘 말해 주겠다고했다
이이야기에 등장하는 임금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대궐로의 부름은 죽음을 비유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이땅에서 생명이 끝나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친구가 동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인 우화다.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첫째 친구는 돈이다. 서양 속담에"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 했다. 돈은 결코 가져갈 수 없다.
둘째 친구는 친척이다 사람이 죽으면 친척들은 대궐문앞인 무덤까지만 같이 간다.
셋째 친구는 선행이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늘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끝내고 심판대 앞에 설때까지 함께한다
최후에 남는 것은 돈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고 이 땅에서 행한 "선한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없어질 친구들에게만 너무 집착한다. 첫째 친구에게만 관심을 두고 이 친구만 있으면 좋아하고, 이 친구를 위해서 살고, 이 친구 때문에 싸우고 원수가 되곤 한다.
내가 죽을 때 유일하게 동행할 수 있는 셋째 친구, 즉 "선한 삶" 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친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좋은 글 중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 Corinthians 13:13)
받은 글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세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날 임금이 使者를 보내어 어떤 사나이에게 곧 출두하라고 명령을 했다.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첫 친구는 대단히 우정이 깊어 항상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두번째 친구는 친하긴 했지만 첫째 친구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평소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이였다
임금의 사자(使者)가 왔을 때 그는 겁도 나고 불안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가기로 마음을 먹고 첬째 친구에게 가서 동행을 청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단호히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 친구는 대궐문 앞까지만 가겠다고 대답했다. 풀이 죽은 그는 할 수 없이 세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세번째 친구는 뜻밖에도 기쁘게 응하면서 임금에게 잘 말해 주겠다고했다
이이야기에 등장하는 임금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대궐로의 부름은 죽음을 비유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이땅에서 생명이 끝나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친구가 동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인 우화다.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첫째 친구는 돈이다. 서양 속담에"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 했다. 돈은 결코 가져갈 수 없다.
둘째 친구는 친척이다 사람이 죽으면 친척들은 대궐문앞인 무덤까지만 같이 간다.
셋째 친구는 선행이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늘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끝내고 심판대 앞에 설때까지 함께한다
최후에 남는 것은 돈도 아니고, 친척도 아니고 이 땅에서 행한 "선한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없어질 친구들에게만 너무 집착한다. 첫째 친구에게만 관심을 두고 이 친구만 있으면 좋아하고, 이 친구를 위해서 살고, 이 친구 때문에 싸우고 원수가 되곤 한다.
내가 죽을 때 유일하게 동행할 수 있는 셋째 친구, 즉 "선한 삶" 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친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좋은 글 중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 Corinthians 13:13)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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