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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단점

한국인들의 단점 김진홍 한국에서 11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였던 한 외국인 기자가 한국을 떠날 때에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리하여 말하면서 한국인들의 장점을 이야기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그에게 청하기를 그렇게 한국인의 장점만을 말하지 말고 당신이 느낀 한국인의 단점도 일러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주저주저하던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단점을 4가지로 일러 주었다. 첫째로 한국인들은 ‘미래 지향적’이지를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란 지적이다. 한국인들이 모이면 앞으로의 설계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군대 이야기, 지나간 정치사건 이야기, 과거의 동창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인들은 핑계를 너무 내세운다는 지적이다.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 솔직한 자기반성과 실패에 대한 인정이 없이 웃사람, 아랫사람에게 핑계를 대거나 형편에 핑계대기를 잘한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한국인들은 인간관계에서 질 줄을 모른다는 지적이다. 타협을 모르고 양보를 패배로 생각하며 흑백논리에 젖어든다는 지적이다. 넷째로 한국인들은 심지 않고 거두려는 공짜 심리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듣고 자란 말 중에는 “한국인들은 공짜라면 양젯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었다. 외국인이 우정(友情)의 마음을 품고 일러 준 말에서 우리 스스로가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깊다. 받은 글입니다.

경주 양동마을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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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받은 사진입니다.

경주 양동마을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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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받은 사진입니다.

경주 양동마을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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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와가와 초가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과 낮은 토담길 사이를 걸으며 긴 역사의 향기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유교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어 아름다운 우리 예절과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 편집 황문옥 드림 받은 글입니다.

경주 양동마을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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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 마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반촌(班村) 양동 마을은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문화제(중요 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 되었다.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쌓여 있는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깊은 반촌 마을이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특이하게 손(孫), 이(李) 양성이 서로 협조하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문화 보존 및 볼거리, 역사적인 내용 등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마을이다. 전국에 6개소의 전통민속마을이 있으나, 마을의 규모,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에서 어느 곳보다 훌륭하고 볼거리가 많아 1992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이 곳을 방문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은 경주시에서 동북방으로 20km쯤 떨어져 있으며,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

韓國人과 日本人의 精神文化의 比較

韓國人과 日本人의 精神文化의 比較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입니다. 1. 한국인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평범한 근무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 한국인은 호의호식 하는것을 성공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공기밥 1사발, 단무지 3개, 김 3 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3. 한국인은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은 20평 정도 집에서 사는 것을 자족으로 알고 만족한다. 실제로 전직수상이나 각료들이 20평규모의 집에 사는것이 일반화된 나라다. 4. 한국인은 비싼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5. 한국인은 탈세, 감세를 하려고 거짓신고가 다반사인데, 일본인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6. 한국인은 아홉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손까락질하며 따돌리는데, 일본인은 한번 잘하고 9번 실수를 해도 한번 잘한 것을 칭찬격려 해 준다. 일본인은 전두환 노태우가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7. 한국인은 조금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꽉찬 물병인데, 일본인은 아무리 알아도 또 공부하고 노력하는 빈 항아리이다. 8. 한국인은 자기를 높이고 과시하며 상대방을 깔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자기는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려 한다. 9. 한국인은 수단방법 불문하고 내가 출세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여있다. 10. 한국인은 나라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애국자인양 여기는데, 일본인은 나라를 받들고, 총리 말을 바르게 실천하는것을 애국이라 생각한다. 11. 한국인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한는데, 일본인은 아는것도 동료와 협의...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李參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는 한국이 원래부터 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해석하였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

북한산 둘레길 산책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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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산책이 최고 (山정상 등반은 옛날 방식) 북한산둘레길 44㎞가 마침내 개통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직접 만든 전국 국립공원의 첫 둘레길이다. 정상 지향형에서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찾는 둘레 지향형으로 등산형태를 바꾸기 위해 공단에서 1년여 작업 끝에 이번에 내놓은 것이다. 이미 개통된 지리산숲길은 산림청이 사단법인 숲길에 의뢰해서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서 만든 길이라, 공단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북한산둘레길은 항상 정상 백운대로만 걷다 옆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북한산둘레길의 총 길이는 약 70㎞에 이르지만 이번에 개통된 구간은 도봉산 구간 26㎞를 뺀 순수한 북한산 구간이다. 도봉산 구간은 올 연말부터 작업에 들어가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지난 8월 6일과 10일 두 차례 공단시설팀 박기연 팀장과 윤대원 차장, 이진범 과장, 김준석 계장 등과 함께 9월 7일 북한산둘레길 개통식을 하기 전 미리 둘레길 전 코스를 처음으로 한 바퀴 둘러봤다. 북한산을 수십 번 올랐지만 “북한산에 이런 길이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생전 처음 보는 아늑하고 걷기 좋은 길이 많아, 걷기문화와 등산문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은평구엔 나무데크를 놓은 길이 많아 일명 스카이로드라 부른다. 북한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이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고려시대 때는 한반도의 5악 중의 하나로 꼽혀 국가에서 주요 행사를 지내기도 했다. 5악은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백두산), 금강산 등이다. 산 숭배사상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중종실록'은 동악 금강산, 서악 묘향산, 남악 지리산, 중악 삼각산, 북악 백두산 등으로 5악을 정해 국가 주요 제사를 산에서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북한산에 올라 한양의 지세를 찬양하기도 했다. 스카이로드 위로 벌써 탐방객이 걷고 있다. 조선시대 김종길은 ‘孤高(고고)’란 시로 북한산을 노래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