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Positive), Steve Jobs
Years passed, kids came, good times, hard times, but never bad times. Our love and respect has endured and grown. We’ve been through so much together and here we are right back where we started 20 years ago-older, wiser- with wrinkles on our faces and hearts. We now know many of life’s joys, sufferings, secrets and wonders and we’re still here together. My feet have never returned to the ground.
- Steve Jobs, Mar 2011
수년이 지나 아이들이 태어났고, 행복한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빴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의 사랑과 존경은 점점 더 커졌지요. 많은 것을 함께하고 이렇게 20년 전에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왔네요. 좀 더 늙고, 좀 더 현명해지고 얼굴과 가슴에 주름도 늘었지요.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 스티브 잡스, 결혼 20주년 기념일인 2011년 3월,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에서 부인에게 읽어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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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피카이로
결혼
결혼이란 단순히 만들어놓은 행복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둘이서 만들어먹는 것이다.
- 피카이로 -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생김새마저 판이하게 다른 둘이 만나서 부부로, 양쪽 집안의 자식으로,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생각하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설렘이며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을 맺은 부부, 아니 조금 지났거나 오래된 부부라도 꼭 새겨야 할 말인 듯합니다.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 먹는 것', 그것이 결혼임을.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결혼이란 단순히 만들어놓은 행복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둘이서 만들어먹는 것이다.
- 피카이로 -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생김새마저 판이하게 다른 둘이 만나서 부부로, 양쪽 집안의 자식으로,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생각하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설렘이며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을 맺은 부부, 아니 조금 지났거나 오래된 부부라도 꼭 새겨야 할 말인 듯합니다.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 먹는 것', 그것이 결혼임을.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Y^^]K: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Y^^]K: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And therefore is winged Cupid painted blind.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그러므로 날개 달린 큐피트는 눈이 먼 것으로 표현된다.
- William Shakespeare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A Midsummer Night's Dream (한 여름 밤의 꿈), Act i. Sc. 1.
마음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외모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것은 모두 갖게 해줄 것 같은 부(富)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가 우러러 보는 것 같은 권력이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봐야 한다'라는 핑계로 그런 잣대를 적용합니다. 모두 육체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성인군자일 수 없고,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각자가 선택할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잣대도 바라보는 눈도 모두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채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만 붙인 사적인 계약입니다. 그런 계약은 공허할 수 밖에 없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후회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죠.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사랑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 마음으로 보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옮긴 글입니다.
http://nowgnoy3.blogspot.com/2011/01/love-looks-with-mind-william.html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And therefore is winged Cupid painted blind.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그러므로 날개 달린 큐피트는 눈이 먼 것으로 표현된다.
- William Shakespeare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A Midsummer Night's Dream (한 여름 밤의 꿈), Act i. Sc. 1.
마음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외모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것은 모두 갖게 해줄 것 같은 부(富)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가 우러러 보는 것 같은 권력이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봐야 한다'라는 핑계로 그런 잣대를 적용합니다. 모두 육체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성인군자일 수 없고,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각자가 선택할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잣대도 바라보는 눈도 모두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채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만 붙인 사적인 계약입니다. 그런 계약은 공허할 수 밖에 없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후회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죠.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사랑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 마음으로 보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옮긴 글입니다.
http://nowgnoy3.blogspot.com/2011/01/love-looks-with-mind-william.html
결혼과 의무 (아더 쇼펜하우어)
Marriage & duties (Arthur Schopenhaur)
To marry is to halve your rights and double your duties.
결혼을 한다는 것은 당신의 권리를 반감시키고 의무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 Arthur Schopenhaur (아더 쇼펜하우어, 1788-1860) 독일 철학자
결혼과 책임. 간단해 보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의무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잊을 때, 결혼생활은 힘들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 명언, 아더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r, Marriage, Quotation, Quote
To marry is to halve your rights and double your duties.
결혼을 한다는 것은 당신의 권리를 반감시키고 의무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 Arthur Schopenhaur (아더 쇼펜하우어, 1788-1860) 독일 철학자
결혼과 책임. 간단해 보이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의무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잊을 때, 결혼생활은 힘들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 명언, 아더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r, Marriage, Quotation, Quote
배우자에게 덕 보겠다는 심보를 버려라
이 주례사는 법륜 스님의 주례법문이라고 합니다. 법륜 스님은 ‘쓰레기 없는 국토’를 만들겠다며 ‘정토회’라는 실천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탈북자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한 스님입니다.
이 주례사는 2001년 11월 4일 정토법당에서 정상오 김정숙 씨의 결혼식에서 베푼 것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성철 스님의 것으로 둔갑해서 인터넷에 돌아다녔고 일부 언론에서 인용한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 마음이 10년, 20년, 30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 다 지키고 살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는가 물으면 '예' 하며 약속을 해놓고는 3일을 못 넘기고 3개월, 3년을 못 넘기고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살겠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기를 원해 놓고는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게 나았을걸"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럼 안 살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해놓고 안 살수도 없고, 이래 어영부영하다가 아기가 생기니까 또 아기 때문에 못하고, 이렇게 하면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가지고, 아내가 남편을 "아이고 웬수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이 들면서 겨우 포기하고 살만하다 싶은데, 이제 또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자식이 사춘기 지나면서 어긋나고 온갖 애를 먹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고생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할 때는 다 부러운데, 한참 인생을 살다 보면 여기 이 스님이 부러워, 아이고 저 스님 팔자도 좋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스님이 되는 것이 좋으면 처음부터 되지, 왜 결혼해 살면서 스님을 부러워합니까? 이렇게 인생이 괴로움 속에 돌고 도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할 테니, 두 분은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 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 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 주고 70% 덕 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 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 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 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100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그런데 심보를 잘못 가져놓고 자꾸 사주팔자를 보려고 합니다. 궁합 본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바깥궁합 속궁합 다보고 3년을 동거하고 살아봐도 이 심보가 안 바뀌면 사흘 살고 못삽니다.
그러니 이 하객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이니까 괜히 둘이 잘살면 심보를 부립니다. 남편에게 "왜 괜히 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이렇게 할 것 뭐 있나'하고, 아내에게는 "니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죽어 사나, 니가 얼굴 이 못났나 왜 그렇게 죽어 사노' 이렇게 옆에서 살살 부추기며, 결혼할 땐 박수치지만 내일부터는 싸움을 붙입니다. 이런 말은 절대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놓는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남편에게 덕되는 일 좀 해야 되겠다. 남이 뭐라 그러든, 어머니가 뭐라 그러든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누가 뭐라 그러든 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딱 굳혀야 합니다.
괜히 애까지 낳아놓고 나중에 이혼한다고 소란 피우지 말고 지금 생각을 딱 굳혀야 됩니다. 신랑, 신부는 그렇게 하시겠어요? 덕 봐야 돼요? 손해 봐야 돼요?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해 가지고 덕 보려고 했는데 손해를 보니까, 심사가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같이 자다 보니 애가 생깁니다. 기도하고 정성 다해서 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가지고 더부덕덥덥하다 보니까 아기가 생겨버립니다.
그러니 이게 처음부터 태교가 잘못됩니다. 이렇게 잉태해 가지고는 성인 낳기는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밥 먹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나중에 위를 해부해보면 소화가 안 되고 그냥 있습니다. 이 자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오장육부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내면 오장육부가 긴장이 되어있습니다. 안에 있는 애기가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천적으로 신장질환이 생기든지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원기가 늘 따뜻하게 돌고, 애기가 그 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중에 태어나도 선천적으로 도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애를 가진 이는 편안해야 합니다. 편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편안한 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바로 남편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이 애는 좋은 애를 낳고 싶으면서 아내를 걱정시키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애를 가졌다고 하면 집에 일찍 들어오고, 나쁜 것은 안 보여주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거들어 줘야 합니다.
시어머니들도 손자는 좋은 것을 보고 싶은데, 며느리를 볶으면 손자가 나쁜 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편안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편안한 것이 제일 좋고, 주위에서도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정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육식을 조금하고 채식을 많이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이렇게 해야 아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둘이서 서로 싸운다면 안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말 배우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말 배우고, 일본에서는 일본말 배우고, 원숭이 무리에서 자라면 원숭이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아이의 심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기가 조그만 하다고 애기를 옆에 두고 둘이서 짜증내고 다투면, 사진 찍듯이 그대로 아기 심성이 결정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주정하고 그러면 아이가 나는 크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할 거야 하지만 크면 술주정합니다. 다투는 집에서 태어나면 자기는 크면 절대로 다투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면 다투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하려면 아이를 낳고, 안 그러려면 안 낳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복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인생을 망치는 고생덩어리가 됩니다. 아이 때문에 평생 고생하고 살게 됩니다. 3년까지만 하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이렇게 안 하려면 낳지를 말고 낳으려면 반드시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좋고 자식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잘못 애 낳아서 키워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것을 첫째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 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 됩니다. 두 부부는 아기 3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아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 가십시오. 돈도 필요 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가도 아무 문제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줘도 망칩니다. 여기도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신 차리십시오. 제 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가정이 화목해집니다.
이렇게 먼저 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만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내 자식만 귀엽게 생각 말고 이웃집 아이도 귀엽게 생각하고, 내 부모만 좋게 생각하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 좋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내면 내가 성인이 되고 자식이 좋은 것을 본받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그런데 늘 자식보다는 부모를, 첫째가 남편이고 아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돼야 자식이 교육이 똑바로 됩니다. 애를 매를 들고 가르칠 필요 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그러나 하면 안 됩니다. 누굴 닮겠습니까? 둘을 닮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를 받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인연을 잘 지어서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잉태할 때와 뱃속에 있을 때, 세 살 때까지가 중요하니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부부가 화합해야 합니다. 주로 결혼해서 틈이 생길 때 애가 생기고, 저 남자와 못살겠다 할 때, 애기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저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가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가 고등학교 가더니 그렇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그러니 이미 아기가 그렇게 되었거든 지금 엎드려서 참회를 하여야 고쳐집니다. 지금 이 부부는 안 낳았으니까 반드시 그렇게 낳아야 합니다.
남편을 아내를 서로 우선시 하고 자식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 하면 안 됩니다. 부모를 우선하는 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할 것, 두 번 째 부모를 우선시 할 것, 세 번 째 자식을 우선시 할 것, 이렇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 합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조 대신 이렇게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글입니다.
이 주례사는 2001년 11월 4일 정토법당에서 정상오 김정숙 씨의 결혼식에서 베푼 것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성철 스님의 것으로 둔갑해서 인터넷에 돌아다녔고 일부 언론에서 인용한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 마음이 10년, 20년, 30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 다 지키고 살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는가 물으면 '예' 하며 약속을 해놓고는 3일을 못 넘기고 3개월, 3년을 못 넘기고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살겠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기를 원해 놓고는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게 나았을걸"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럼 안 살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해놓고 안 살수도 없고, 이래 어영부영하다가 아기가 생기니까 또 아기 때문에 못하고, 이렇게 하면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가지고, 아내가 남편을 "아이고 웬수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이 들면서 겨우 포기하고 살만하다 싶은데, 이제 또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자식이 사춘기 지나면서 어긋나고 온갖 애를 먹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고생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할 때는 다 부러운데, 한참 인생을 살다 보면 여기 이 스님이 부러워, 아이고 저 스님 팔자도 좋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스님이 되는 것이 좋으면 처음부터 되지, 왜 결혼해 살면서 스님을 부러워합니까? 이렇게 인생이 괴로움 속에 돌고 도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할 테니, 두 분은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 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 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 주고 70% 덕 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 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 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 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100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그런데 심보를 잘못 가져놓고 자꾸 사주팔자를 보려고 합니다. 궁합 본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바깥궁합 속궁합 다보고 3년을 동거하고 살아봐도 이 심보가 안 바뀌면 사흘 살고 못삽니다.
그러니 이 하객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이니까 괜히 둘이 잘살면 심보를 부립니다. 남편에게 "왜 괜히 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이렇게 할 것 뭐 있나'하고, 아내에게는 "니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죽어 사나, 니가 얼굴 이 못났나 왜 그렇게 죽어 사노' 이렇게 옆에서 살살 부추기며, 결혼할 땐 박수치지만 내일부터는 싸움을 붙입니다. 이런 말은 절대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놓는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남편에게 덕되는 일 좀 해야 되겠다. 남이 뭐라 그러든, 어머니가 뭐라 그러든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누가 뭐라 그러든 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딱 굳혀야 합니다.
괜히 애까지 낳아놓고 나중에 이혼한다고 소란 피우지 말고 지금 생각을 딱 굳혀야 됩니다. 신랑, 신부는 그렇게 하시겠어요? 덕 봐야 돼요? 손해 봐야 돼요?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해 가지고 덕 보려고 했는데 손해를 보니까, 심사가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같이 자다 보니 애가 생깁니다. 기도하고 정성 다해서 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가지고 더부덕덥덥하다 보니까 아기가 생겨버립니다.
그러니 이게 처음부터 태교가 잘못됩니다. 이렇게 잉태해 가지고는 성인 낳기는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밥 먹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나중에 위를 해부해보면 소화가 안 되고 그냥 있습니다. 이 자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오장육부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내면 오장육부가 긴장이 되어있습니다. 안에 있는 애기가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천적으로 신장질환이 생기든지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원기가 늘 따뜻하게 돌고, 애기가 그 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중에 태어나도 선천적으로 도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애를 가진 이는 편안해야 합니다. 편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편안한 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바로 남편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이 애는 좋은 애를 낳고 싶으면서 아내를 걱정시키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애를 가졌다고 하면 집에 일찍 들어오고, 나쁜 것은 안 보여주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거들어 줘야 합니다.
시어머니들도 손자는 좋은 것을 보고 싶은데, 며느리를 볶으면 손자가 나쁜 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편안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편안한 것이 제일 좋고, 주위에서도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정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육식을 조금하고 채식을 많이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이렇게 해야 아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둘이서 서로 싸운다면 안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말 배우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말 배우고, 일본에서는 일본말 배우고, 원숭이 무리에서 자라면 원숭이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아이의 심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기가 조그만 하다고 애기를 옆에 두고 둘이서 짜증내고 다투면, 사진 찍듯이 그대로 아기 심성이 결정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주정하고 그러면 아이가 나는 크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할 거야 하지만 크면 술주정합니다. 다투는 집에서 태어나면 자기는 크면 절대로 다투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면 다투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하려면 아이를 낳고, 안 그러려면 안 낳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복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인생을 망치는 고생덩어리가 됩니다. 아이 때문에 평생 고생하고 살게 됩니다. 3년까지만 하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이렇게 안 하려면 낳지를 말고 낳으려면 반드시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좋고 자식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잘못 애 낳아서 키워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것을 첫째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 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 됩니다. 두 부부는 아기 3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아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 가십시오. 돈도 필요 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가도 아무 문제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줘도 망칩니다. 여기도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신 차리십시오. 제 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가정이 화목해집니다.
이렇게 먼저 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 합니다. 우리만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내 자식만 귀엽게 생각 말고 이웃집 아이도 귀엽게 생각하고, 내 부모만 좋게 생각하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 좋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내면 내가 성인이 되고 자식이 좋은 것을 본받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그런데 늘 자식보다는 부모를, 첫째가 남편이고 아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돼야 자식이 교육이 똑바로 됩니다. 애를 매를 들고 가르칠 필요 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그러나 하면 안 됩니다. 누굴 닮겠습니까? 둘을 닮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를 받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인연을 잘 지어서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잉태할 때와 뱃속에 있을 때, 세 살 때까지가 중요하니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부부가 화합해야 합니다. 주로 결혼해서 틈이 생길 때 애가 생기고, 저 남자와 못살겠다 할 때, 애기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저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가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가 고등학교 가더니 그렇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그러니 이미 아기가 그렇게 되었거든 지금 엎드려서 참회를 하여야 고쳐집니다. 지금 이 부부는 안 낳았으니까 반드시 그렇게 낳아야 합니다.
남편을 아내를 서로 우선시 하고 자식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 하면 안 됩니다. 부모를 우선하는 것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할 것, 두 번 째 부모를 우선시 할 것, 세 번 째 자식을 우선시 할 것, 이렇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 합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조 대신 이렇게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글입니다.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
처음 결혼했을 때, 둘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극과 극이라는 걸 알고는 적잖은 충격과 실망에 빠졌고 하마터면 이혼까지 할 뻔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뿐 아니라 그 차이점에 의존하게 되었고, 마침내 둘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서로 똑같다면, 그렇다면 둘 중 한 사람은 필요 없을 게 아닌가.
- 앤디 앤드루스의《용서에 관한 짧은 필름》중에서 -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지요? 그 말은 '본래는 서로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상대가 먼저 나에게 닮기를 바라면 잘 안되고, 내가 먼저 바뀌어 상대를 닮겠다 해야 잘 됩니다.
받은 글입니다.
난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다.
난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다.
어떤 아내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언제나 2순위였어요. 남편의 머릿속에는 자기 엄마 밖에 없어요. 그럴 바에는 자기 엄마하고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이 고백에 대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꼭 듣게 되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럴 때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남편이 남~~의~~편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리 배우자라는 것입니다. 대리배우자란 배우자를 대신하는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호적상으로는 모자지간인데 정서적으로는 엄마의 남편이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리배우자는 엄마의 보호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엄마의 위로자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모자의 관계가 아주 끈끈한 관계가 됩니다.
엄마의 명령, 엄마의 부탁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들입니다. 이런 남자들은 아내가 뭔가를 요구 할 때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머니 편에 서게 됩니다. 사실 대리배우자의 문제는 대한민국 가정의 아픔입니다. 유교문화권의 답습이기도 합니다. 조상들의 경우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왔지만 시대와 사회가 변화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외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리배우자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여자는 결혼할 때 남자 하나만 봅니다. 이 남자가 평생 자기를 도와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유교문화는 부부사이를 수평으로 두지 않고 수직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표면적인 남편은 있지만, 수평관계로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는 남자는 없는 정서적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가 해야 할 일중의 대부분은 시댁과 관련된 일입니다. 결혼한 후 호칭부터 변하게 됩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삼촌...등. 다만 남편을 부를 때만 시남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
남편은 내 편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여자가 시댁과 시댁 일에 치여 있을 때 남편은 바깥사람이라고 바깥으로 돌게 되는데 이것은 부부 둘만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합니다. 그런 아내는 정서적과부로 지내다 보니 남편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다 아주 젊고, 싱싱하고, 이쁘고, 기특하고, 괜찮은 남자 하나를 구하게 됩니다. 바로 아들입니다. 아들의 탄생은 아내로 하여금 ‘시댁에서 정식 발언권을 갖게 하는 큰 힘’이 되고 나의 신분을 격상시켜 주는 고마운 남자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주고 헌신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대리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새 남편인 아들이 초등학교 3, 4 학년쯤 되면 아주 기가 막힌 사랑표현을 해 옵니다.
“엄마,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이 말에 아내는 “그래. 내가 이 남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지.” 라고 헌신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됩니다.
새 남편과 사랑이 더욱 싹트는 사이에 원래 남편과는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50살이 넘어가면 버릴 것 1순위에 남편을 올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50세를 넘긴 아내들이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1순위가 돈, 2위가 친구, 3순위가 건강, 마지막 4순위가 바로 딸이라고 합니다. 50세를 넘긴 남편들이 꼭 가져야 할 것은 첫 번째가 아내, 두 번째가 마누라, 세 번째가 집사람, 네 번째가 안사람 이라고 합니다.)
새 남자인 아들이 성장해서 장가를 가고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들을 중간에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 되고 어머니와 며느리는 연적(戀敵)관계가 됩니다. 시어머니가 된 여자 입장에서는 내가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워 온 남자를 젊은 여자 하나가 들어와서 뺏어간 것이 됩니다. 그러니 새로 들어 온 젊은 여자가 용서가 될 수 있을까요?
며느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핍박을 받게 됩니다. 흔히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말을 하지만 틀린 표현입니다. 이것은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핍박인 것입니다.
갈등이란 것은 힘의 원리가 비슷할 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엄마의 대리배우자로 자라온 아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한 여자의 남편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엄마와 아내 중간에서 자기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비겁한 남자, 자기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남자가 됩니다. 며칠 전 제게 상담을 온 50대 여성 한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시어머니에 대해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유는 ‘시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며느리는 돈 안 드는 식모다.’라고 얘길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어 분노가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두 여자가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남편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당연히 아내 편에 서서 싸워야 하는데, 대리 배우자가 된 남편은 엄마 편에 서서 아내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됩니다. 그런 아내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고, 복수를 생각합니다.
물론 이 복수를 실행하는 것은, 남편을 버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중년기 이후가 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젊었을 때 아내와의 관계보험을 잘 들어둬야 중년이 편하게 됩니다. 대리배우자 남편은 시간이 지나 갈수록 아내는 마음속으로 독기를 품고 겉으로는 도끼를 든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 여자 사이에 낀 이 남자를 샌드위치맨(sandwich man)이라고 합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견디지 못한 남편은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됩니다. 진짜 여자를 구해서 나가기도 하고, 일에 몰두해서 나가기도 합니다. 일이라는 대상이, 남자에겐 괜찮은 탈출구입니다. 보상을 주고, 인정도 받고, 넉넉함을 줍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또 남편을 뺏기고 정서적으로 과부로 살아 온 아내 역시, 자신의 아이들을 대리배우자로 만들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상담학에서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마스터 키는 남편에게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여보 난 당신편이야.”라고 말 할 수 있다면 베스트입니다.
-옮긴글-
받은 글입니다.
위에서 말한 '정리'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참 어려운 부분이고, 잘못되면 베스트가 아닌 최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내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언제나 2순위였어요. 남편의 머릿속에는 자기 엄마 밖에 없어요. 그럴 바에는 자기 엄마하고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이 고백에 대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꼭 듣게 되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럴 때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남편이 남~~의~~편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리 배우자라는 것입니다. 대리배우자란 배우자를 대신하는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호적상으로는 모자지간인데 정서적으로는 엄마의 남편이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리배우자는 엄마의 보호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엄마의 위로자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모자의 관계가 아주 끈끈한 관계가 됩니다.
엄마의 명령, 엄마의 부탁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들입니다. 이런 남자들은 아내가 뭔가를 요구 할 때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머니 편에 서게 됩니다. 사실 대리배우자의 문제는 대한민국 가정의 아픔입니다. 유교문화권의 답습이기도 합니다. 조상들의 경우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왔지만 시대와 사회가 변화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외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리배우자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여자는 결혼할 때 남자 하나만 봅니다. 이 남자가 평생 자기를 도와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유교문화는 부부사이를 수평으로 두지 않고 수직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표면적인 남편은 있지만, 수평관계로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는 남자는 없는 정서적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가 해야 할 일중의 대부분은 시댁과 관련된 일입니다. 결혼한 후 호칭부터 변하게 됩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삼촌...등. 다만 남편을 부를 때만 시남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
남편은 내 편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여자가 시댁과 시댁 일에 치여 있을 때 남편은 바깥사람이라고 바깥으로 돌게 되는데 이것은 부부 둘만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합니다. 그런 아내는 정서적과부로 지내다 보니 남편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다 아주 젊고, 싱싱하고, 이쁘고, 기특하고, 괜찮은 남자 하나를 구하게 됩니다. 바로 아들입니다. 아들의 탄생은 아내로 하여금 ‘시댁에서 정식 발언권을 갖게 하는 큰 힘’이 되고 나의 신분을 격상시켜 주는 고마운 남자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주고 헌신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대리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새 남편인 아들이 초등학교 3, 4 학년쯤 되면 아주 기가 막힌 사랑표현을 해 옵니다.
“엄마,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이 말에 아내는 “그래. 내가 이 남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지.” 라고 헌신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됩니다.
새 남편과 사랑이 더욱 싹트는 사이에 원래 남편과는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50살이 넘어가면 버릴 것 1순위에 남편을 올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50세를 넘긴 아내들이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1순위가 돈, 2위가 친구, 3순위가 건강, 마지막 4순위가 바로 딸이라고 합니다. 50세를 넘긴 남편들이 꼭 가져야 할 것은 첫 번째가 아내, 두 번째가 마누라, 세 번째가 집사람, 네 번째가 안사람 이라고 합니다.)
새 남자인 아들이 성장해서 장가를 가고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들을 중간에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 되고 어머니와 며느리는 연적(戀敵)관계가 됩니다. 시어머니가 된 여자 입장에서는 내가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워 온 남자를 젊은 여자 하나가 들어와서 뺏어간 것이 됩니다. 그러니 새로 들어 온 젊은 여자가 용서가 될 수 있을까요?
며느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핍박을 받게 됩니다. 흔히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말을 하지만 틀린 표현입니다. 이것은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핍박인 것입니다.
갈등이란 것은 힘의 원리가 비슷할 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엄마의 대리배우자로 자라온 아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한 여자의 남편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엄마와 아내 중간에서 자기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비겁한 남자, 자기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남자가 됩니다. 며칠 전 제게 상담을 온 50대 여성 한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시어머니에 대해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유는 ‘시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며느리는 돈 안 드는 식모다.’라고 얘길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어 분노가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두 여자가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남편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당연히 아내 편에 서서 싸워야 하는데, 대리 배우자가 된 남편은 엄마 편에 서서 아내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됩니다. 그런 아내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고, 복수를 생각합니다.
물론 이 복수를 실행하는 것은, 남편을 버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중년기 이후가 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젊었을 때 아내와의 관계보험을 잘 들어둬야 중년이 편하게 됩니다. 대리배우자 남편은 시간이 지나 갈수록 아내는 마음속으로 독기를 품고 겉으로는 도끼를 든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 여자 사이에 낀 이 남자를 샌드위치맨(sandwich man)이라고 합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견디지 못한 남편은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됩니다. 진짜 여자를 구해서 나가기도 하고, 일에 몰두해서 나가기도 합니다. 일이라는 대상이, 남자에겐 괜찮은 탈출구입니다. 보상을 주고, 인정도 받고, 넉넉함을 줍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또 남편을 뺏기고 정서적으로 과부로 살아 온 아내 역시, 자신의 아이들을 대리배우자로 만들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상담학에서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마스터 키는 남편에게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여보 난 당신편이야.”라고 말 할 수 있다면 베스트입니다.
-옮긴글-
받은 글입니다.
위에서 말한 '정리'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참 어려운 부분이고, 잘못되면 베스트가 아닌 최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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