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여운 도둑
아들 내외는 두어 주에 한 번은 손녀를 데리고 오는데,
와서 두어 주일 치 양식이 될 만큼 낯을 익혀 두고 가는데,
나는 면도하고, 샤워하고, 옷 단정히 갈아입고
나의 귀한 손님을 맞네.
머물다 가는 시간이야 언제나 복사꽃 피는 봄날이거나
모내기철 내리는 단비처럼 아쉽지만, 제가 부리는 재롱에
내가 커르르 커르르 웃고,
내가 부리는 재롱에 저도 차르르 차르르 웃어,
봄 샘물 같은 웃음소리에 낡은 재킷 벗듯 나는 잠시 노인을 벗는데,
손바닥에 고물고물 상형문자 같은 손금들.
첫봄에 막 피어난 참 여린 목련꽃 이파리 같기도 하고,
거기에 곱게 나 있는 엽맥 같기도 한데.
그 작은 손이 다녀갈 때마다 집어가네.
내 마음 한 줌씩 집어 가네.
- 손광성, 수필 '나의 귀여운 도둑' 중에서 -
정말 귀여운 도둑이네요. 이토록 할아버지의 마음을 다 가져가다니요. 내리사랑이라지요. 자식을 기를 때의 어설펐던 사랑이 이제는 완숙해져서 손주를 보면 자식보다 더 사랑스러운 감정. 일생이라는 것은 이토록 작은 것이 모여 행복이 되는 듯합니다.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