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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d, Chinese Pro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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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田引水。 - 中國俗談 Draw water to one's mill. - Chinese Proverb 제 논에 물대기. [我田引水(아전인수)] - 중국속담 자기에게 이롭게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하는 일 관련 한자성어 동의어·유의어 我田引水(아전인수) |

욕심 많은 고양이와 꾀 많은 쥐

욕심 많은 고양이와 꾀 많은 쥐 쥐를 잘 잡는 고양이의 조건은 까다롭다. 우선 눈과 귀가 밝아야 한다. 발톱이 날카로워야 하며,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걷는 발레리나 같은 발동작을 익혀야 한다. 또한 몸을 숨길 때는 등을 활처럼 구부렸다가 순식간에 일직선으로 뻗으며 튀어나가는 순발력과 정확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머리까지도 좋아서 덧셈 뺄셈을 척척 해내었다. 그러나 셈을 알기 시작하면 욕심도 많아지는 법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셈에 눈을 뜨면서 물욕에 눈이 어두워졌다. “먹이를 보면 즉시 잡아먹어야 한다. 뭐든지 때가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어려서 사냥하는 법을 배울 때 검은 고양이는 부모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스스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 검은 고양이는 그런 말을 한 쪽 귀로 흘려들었다. 다 자란 검은 고양이는 쌀이 가득한 광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던 어느 날, 검은 고양이는 광 안에서 생쥐를 한 마리 발견하였다. “이놈, 생쥐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라!” 검은 고양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본 생쥐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고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생쥐라 고양이님에게는 한 입도 안 됩니다요.” 생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널 잡아먹겠다.” 검은 고양이는 입맛을 쩍 다셨다. “아이 참, 고양이님도. 제가 이곳 광에서 쌀을 많이 훔쳐 먹을 수 있도록 허락만 해주신다면 살을 통통하게 찌워 놓겠습니다. 그때 잡아 잡수시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네 말이 그럴 듯하구나. 내가 너에게만 쌀을 훔쳐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 대신 통통하게 살이 찌면 그때는 약속대로 네 몸을 내게 바쳐야 한다. 알겠느냐?” “그,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약속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비움의 철학

비움의 철학 비우면 편안하다. 뱃속을 비우면 육신이 편안하고, 마음을 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평온해진다. 미워하는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이나 모두 고통을 가져온다. 누군가를 미워해 보았는가? 남을 미워하면 그 대상은 멀쩡한데 내 마음만 힘들고 괴롭다. 누군가를 사랑해 보았는가. 사랑할 때는 달콤할지 모르나, 그 이후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이별은 너무도 힘들다. 샘은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갈 것이고 결국에는 더 이상 샘솟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산에 가는 것은 자신의 흐려있는 정신과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한 행위이다. 종교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매주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은 일주일 동안 쌓인 삶의 독소를 비우러 가는 것이다. 일상적인 우리의 마음은 온갖 욕망으로 흔들리고 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욕망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핸드폰 등을 보면 자꾸만 사고 싶어진다. 이런 욕망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심하게 파도친다. 파도치는 욕망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그 욕망을 채우는 것은 문제해결의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두개 이상의 욕망이 비집고 나온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더 커지는 게 바로 욕망이다. (그야말로 만질수록 커지는게 바로 욕망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온갖 욕망이 점차 사라진다. 이를 위해 때때로 명상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 법정 스님의 책이 관심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삶이 평생을 비우는 삶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무소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비우고 또 비우는 삶의 자세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 노자, 장자에게 길을 묻다 20100518 이석명 교수-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