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철학

웃음 철학

인생은 힘들면 힘들수록 웃음이 필요하다.
- 빅토르 위고

웃음은 마음의 치료제인 동시에 몸의 미용제이다. 당신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
- 칼 조세프 쿠 셸

당신이 웃고 있는 한 위궤양은 악화되지 않는다.
- 패티우텐

웃음은 참을 수 없는 최악의 슬픔도 희망으로 바꾸어 준다.
- 봅 호프

나에겐 끝없이 힘든 역경이 계속되었다. 내가 만일 웃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 링컨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나를 웃게 만든다는 것이다.
- 오덴

우는 사람이 웃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 제임스 월시

웃음은 행복의 보증수표다.
- 스탕달

많이 웃는 사람은 행복하고 많이 우는 사람은 불행하다.
- 쇼펜하우어

웃음은 가장 빛나는 태양이다.
- 새커리

웃음은 돈이 전혀 들지 않지만 기적을 만들어 낸다.
- 카네기

아름다운 의복보다 웃는 얼굴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웃다 보면 친구도 많이 생긴다.
- 알랭

질병과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오직 웃음밖에 없다.
- 찰스 디킨스

한번 생각해 보라. 웃다가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 앤드류 매튜스

행복하고 싶다면 일단 웃기부터 해야 한다.
- 호라티우스

웃어라. 그러면 세상도 너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너는 혼자 울게 된다.
- 엘라 월러 윌콕스

오늘 웃는 사람은 내일도 웃게 될 것이다.
- 니체

우리가 헛되게 낭비한 것은 웃지 않았던 날들이다.
- 샬포르

무엇이든 이상한 일에 부딪히면 웃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웃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안이 된다.
- 멜빌

인생이 노래처럼 잘 흘러갈 때는 누구나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가치 있는 사람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웃는사람이다.
- 허버트

웃음은 전염된다. 웃음은 감염된다. 이 둘 다 건강에 좋다.
- 윌리엄 프라이

웃음은 지갑 속에 든 수표다.
- 러시아 속담

어머니는 20년 만에 소년을 한 사람의 사나이로 만든다. 그러고 나면 난데없이 한 여자가 나타나서 20분 만에 그 사나이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 프로스트

어영부영 살다가 나 이렇게 갈 줄 알았다.
- 버나드 쇼 묘비명

돈으로 개를 살 수 있다. 그러나 개의 꼬리를 흔드는 기술은 살 수 없다.
- 조시 빌링스

돈이 없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돈이 남아도는 것은 그 두배나 슬픈 일이다.
- 톨스토이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
- 서양 속담

우리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부자로 죽기 위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이만저만 미친 것이 아니다.
- 유베날리스

명예를 가볍게 여기라고 책에 쓰는 사람도 자기 이름을 그 책에 쓰고야 만다.
- 키케로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 전에 ' 먼저' 웃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웃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

행복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 더글러스 말로흐 -

결단은 타이밍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해 남쪽으로 가던 철새 떼가 있었다.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가던 철새들은 어느 날 옥수수 밭에 내려앉자 맛있는 옥수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한참을 먹고 나서 철새들은 이윽고 떠날 차비를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한마리가 같이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남아있겠다는 새가 하루만 더 쉬다 가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잘 익은 옥수수를 두고 날아가기가 아깝다는 생각은 다른 새들도 마찬가지였으나 떠나기로 결심한 새들은 갈 길이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련을 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새는 하루쯤이야 어떠냐 싶은 마음으로 출발을 미룬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이 새는 또 다시 마음이 변했다. 도저히 그냥 떠나기가 섭섭해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또 하루를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기를 며칠 날씨가 차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새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지
이제는 정말 길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자기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나 새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수가 없었다. 며칠간 잘 먹고 쉬었기 때문에 살이 쪄서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새는 날아가지 못하고 눈 속에 묻혀 죽고 말았다.

이 말은 덴마크의 대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이야기다. 키에르케고르는 슬기로운 결단을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다가는 정작 성공과 실패위기에서 용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잃게 된다는 경각심을 주기위해 이와 같은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수많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결단이란 대단한 용기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단이란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현명한 판단에 의해 결단을 내리기보다 그 타이밍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지적을 해 주고 있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건강을 위한 생각을,계획을 미루고 있는것은 없는지..찾어 봅시다.


받은 글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은, 언제나 너무 이르거나 늦거나 한다.

- 사르트르 -

격려 / 마야 안젤루

격려

인간의 마음은
워낙 섬세하고 예민해서
겉으로 드러나게 격려해주어야
지쳐 비틀거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워낙 굳세고 튼튼해서
한번 격려를 받으면 분명하고 꾸준하게
그 박동을 계속한다.

- 마야 안젤루의《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


격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시대가 험악하고 지쳐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나없이 우리 모두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지쳐 비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사는 것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마야 안젤루의 글에 멘트를 단 원 글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쓰여진 형태를 보면 아마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고도원님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격려를 받고 싶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격려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이러이러하니 잘못될 거라고 이유를 찾아내는 것도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그 사람을 격려하는 것이겠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 마더 데레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 마더 데레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잘못 생각 하는 것,

세상의 모든 불행의 근원은?
이기심,

세상에서 가장 나쁜 패배는
용기를 잃는 것,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

세상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잘못은
짜증을 내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이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곳은
내적인 평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낙관주의,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감은
책임완수,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믿음,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부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


받은 글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글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은 직접 그러한 삶을 살면서 남긴 것이기 때문이겠죠.

내 삶에 미쳐보자!

내 삶에 미쳐보자!

사는 동안엔 내 삶에 미처라. 미쳐 보면 즐길줄 안다.

조그마한 하나 하나에도 따뜻한 가슴을 담아라. 그래야 포옹할줄 안다.

즐길줄 모르면 세상은 재미 없다. 즐거움 속에 생동력이 넘친다.

내 삶의 개척자는 나 뿐이다. 바라지 마라, 누군가가 즐겁게 해 주기를..

때로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리거든 자연을 벗 삼아 다녀봐라. 아니면,그림이나 음악을 찾아서 즐겨라.

세상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하다. 내 보는 눈에 따라서 삶은 변해 가리라.

많은 일 들에 묻혀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답답 할 지라도 그냥 미쳐 버리기로 하자.

미쳐가는 순간이면 즐거움으로 전환 될 것이다. 벅차고 힘들어 즐길 수 없다면 한 걸음 더 달려갈 수 없으리라.

-모셔온 글-


봄날 새싹의 용기로 꽃피우는 아름다움으로 이젠 내 일에 미쳐보자

퐁당 퐁당 하늘여울
http://cafe.daum.net/leeruth


받은 글입니다.

가족끼리의 예의

가족끼리의 예의

"움직이는 두 물체가 서로 부딪히면 마찰이 생기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만나면 늘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서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예의는 서로 부딪히게 되어 있는 두 인간이 함께 일하도록 해주는 윤활유와 같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기, 상대방의 생일이나 이름 기억하기, 가족에 대한 안부 전하기 등 작고 간단한 일이 모두 예의이다."

- 이재규의《청소년들을 위한 '피터 드러커'》중에서 -


우리는 흔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거나 받곤 합니다. 아예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자주 만나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좋은 말도, 나쁜 말도 더 많이 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살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족끼리도, 반드시 예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좀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더욱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한번쯤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받은 글입니다. 원 발신은 '고도원의 아침편지' 같네요.

공중전화에서

어떤 남자가 집으로 전화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가 찾은 유일한 공중전화는 통화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곁에 서서 몇분만 기다리면 전화가 끝나겠지 하고 기다렸다.

5분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남자는 계속 통화중이었다.
그는 전화기를 자기 귀에 대고는 있었지만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0분이 지났어도 그는 말이 없었다.

15분이 지났는데도 그는 말이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남자가 그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내가 전화를 쓸수 있으면 절대 오래 쓰지 않겠습니다. 나는 짧지만 요긴하
게 알릴게 있어서요"

전화를 하고 있던 남자가 송화기를 덮어 가리고 대답했다.
"기다리세요, 나는 아내와 통화중이오"

행복의 경제학

행복의 경제학


예전에 비해 말할 수 없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더 정신 없고, 더 분주하고,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삶의 질은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더 행복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 버는 일에 올인해 부자가 된 사람에게 어떠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돈을 버는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경제적 풍요가 삶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였지요. 돈을 얻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를 잃으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별 의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로 엉뚱한 목표에 목숨을 걸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들 최대의 관심사는 경제이고 성장이다. 경제만 잘 된다면 만사형통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도 국가도 경제문제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경제만 풀리면 행복해지고,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대는 부유하지만 불행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부자가 되고 보니 별로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다. 부탄이 그런 나라다. 부탄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풍부한 생태계, 자급 자족형 농업, 공동체를 통한 상부상조, 슬로라이프 등이 건재하고 있다. 사람들도 무척 행복해 보인다.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책이 아니다. 풍요라는 이름의 괴물을 퇴치해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국민총생산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총행복지수이다. 오늘은 그런 것에 관한 책 ‘행복의 경제학’을 소개한다. 저자는 슬로라이프의 주창자인 쓰지 신이치이다. 재일교포로 한국이름은 이규다. 국민총행복(GNH)이란 개념은 부탄의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전 국왕이 1970년대 만들어낸 말이다. 당시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국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각국의 수뇌를 초청한 자리에서 처음 이 말을 사용했다. GNP보다 GNH 가 더 중요하다고 2008년 공포된 부탄 최초의 헌법에서 GNH란 말이 국가 통치개념에서 중심개념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1958년에 비해 1991년은 GDP측면에서 무려 6배 성장했다. 하지만 만족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같은 결과다. 1984년 설문조사를 보면 조사자 중 만족한다가 13.7%, 그럭저럭 만족한다가 50.5%였다. 2005년에는 만족한다 3.6%, 그럭저럭 만족한다가 35.8이다. 2006년 세계 8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일본은 178개국 중 90위였다. 우리는 103위다. 경제측면에서는 10위를 오르내리는 우리가 만족도 측면에선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당연하다. 개발이나 발전을 나타내는 지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채에 의해 삼림이 사라질 때마다 GNP는 상승한다. 마음 병으로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을 때마다 역시 GNP는 증가한다. 부를 측정하는 GNP 라는 척도 속에는 사회에 해가 되는 것, 자연에 해가 되는 것, 사람의 불행마저 모두 돈으로 환산되어 뭉쳐져 있다. 교통사고가 날수록 전쟁이 많이 일어날수록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총생산이 는다는 것과 행복과는 별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

풍요가 행복을 준다는 착각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풍요한 것이 문제다.” 간디의 말이다. 세계 인구 1%가 전체 부의 40%를, 2%가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빈곤층의 절반은 전세계 총생산량의 1%만 갖고 있을 뿐이다. “빈곤을 낳는 것은 자연을 자원으로,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세계관 때문이다. 이런 세계관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방패로 자연을 언제나 충분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이를 보완하고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을 동원해 온갖 기술을 낳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술은 환경과 생태를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한층 심각한 빈곤을 안겨주었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말이다. 실제가 그렇다. 바다는 수 백 년간 어민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거대한 그물을 가진 하이테크 트롤선)이 나타나 해저를 뿌리 채 헤집고 해양의 생명 사이클을 파괴한 결과 지금 전 세계 어업의 90%가 붕괴직전이다. 빈곤으로부터 구해줄 줄 알았던 기술이 어민을 붕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돈이 많은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일본을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 일본>의 저자 카렐 월프런은 “일본은 풀이 죽고 기운이 없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가 제기한 의문점이다.
-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이가 너무 많다.
- 우울하고 심심해 보이며 멍한 표정의 대학생이 너무 많다.
- 여성들이 가장 늦게 결혼한다. 결혼을 해도 자식을 낳지 않으려 한다.
- 냉랭하고 공허한 관계의 신혼부부가 많다.
- 성도착적이며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의 만화가 너무 많다
- 샐러리맨들은 만원 전철 속에서 긴 시간을 시달리는데 잘 받아들인다.
- 다른 나라에서는 화를 내는 일을 일본인들은 당연히 받아들인다¡|
- 의문이 없다 등등

한 마디로 일본은 행복을 희생하여 부를 쌓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 추구인데 행복하지 않은 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우리와 너무 비슷하다.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간이다. 다음은 장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는 것,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면 노후에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 근무시간에 맞는 수입 등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미래의 자유로운 시간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풍요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격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궁핍과 빈곤은 다르다. 저축이 있는가와 없는가의 차이다. 생활이 궁핍해도 행복한 사람은 많다. 저축이 있기 때문이다. 저축이란 은행의 저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 친척, 지인들과 가까운 지역이나 직장 속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자연계와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 등이다. 넓은 의미의 사회 안전망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저축이 없는 사람, 즉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빈곤은 단순히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풍요 역시 단순히 돈이 있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가난해서 불쌍하다고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돈이 많고 부유한 사람들이 거꾸로 악착같이 버둥대며 살아간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일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행복을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현대인은 정말 바쁘게 산다.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도 “바쁘시죠?”다. 바쁘지 않은 것은 무능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걸까? 그래서 얻는 것이 뭘까? 처자식을 위해 바쁘게 일한다고 주장하지만 너무 바쁘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그 동안 우리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면서 살아왔다.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것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바쁘면 관계가 무너진다. 어떤 관계에도 수고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관계에 들일 힘과 여유를 잃으면 행복도 잃는다. 우리들이 느끼는 행복의 대부분은 좋은 관계에서 생겨난다. 소설 어린왕자에 이런 장면이 있다. 친구인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그 장미꽃에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이토록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 하지만 넌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마렴."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빨리 걸었다. 우리야말로 영혼이 쫓아올 수 있게끔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

삶에서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랑의 근본은 상대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잊고 산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살아야 한다. 슬로라이프란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되찾자는 운동이다. 슬로라이프는 돈이나 물건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쟁의 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게을러져야 한다. 원래 사회는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장소가 아니다. 경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모든 것에 경쟁의 원리가 침투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진정한 부자다

위만 보는 대신 아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장 대신 후퇴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홋카이도에는 정신지체자 공동체인 베델의 집이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열심히 하지 않기, 중간에 그만둘 줄 아는 미덕, 자신의 약점 드러내기, 편견과 차별 대환영, 안심하고 절망할 수 있는 인생 등등. 한 마디로 우리의 통념과 반대다. 작업장에서는 <약점을 유대 기반으로 서로 도우며 안심하고 농땡이 칠 수 있는 직장 만들기>를 추구한 결과 몇 가지 히트상품을 가진 슬로비즈니스를 낳았다. 이들은 너무 즐겁게 일하며 대화에 참여한다. 아무리 보아도 장애를 가진 불행한 사람 모습은 아니다. 이곳의 창시자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의 말이다. “예전에는 부유한 사람들은 행복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병은 주로 가난과 힘듬 속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식은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부자,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풍요를 목표로 경쟁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병 덕분에 상승지향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희들은 하강지향의 프로들입니다.” 상승하는 인생에서 하강하는 인생으로라는 말은 베델의 집의 이념이다.

우리는 많이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미국식 문화에 익숙해왔다. 그래서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 적게 소비하는 사람보다 풍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교경제학을 추구하는 슈마허는 “경제학이란 보다 적은 소비로 보다 큰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버마에서의 경험으로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다. “2-3주가 흐르고, 몇 군데 지역을 방문한 뒤 버마인들이 나 같은 구미 경제학자에게 조언 받을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은 우리들이 그들로부터 배워야 했다. 버마인들은 고도로 발달한 종교와 문화를 지탱할 수 있는 완벽한 경제제도를 갖고 있었다.” 경제학과 불교가 무슨 관계냐는 말에 그는 “불교 없는 경제학은 사랑 없는 섹스와 같은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그 크기와 속도, 힘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에는 균형, 조정, 정화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그에 비해 기술은 스스로 제어하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균형, 조정, 정화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 경제는 수요창출에서 시작된다. 그 동안 불필요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또 수요는 광고나 매스컴에 의해 없어도 되는 것을 억지로 만들었다. 그 결과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별로 행복하지도 않다.

네트워킹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임 저 모임 모임이라는 모임은 다 쫓아다닌다. 점심은 두 탕, 저녁은 세 탕을 겹치기로 출연하기도 한다. 주말에는 결혼식이다 뭐다 해서 정신 없이 다닌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의구심이 생긴다. 정치를 하려는 것도 아닌데 뭐 저렇게까지 분주하게 살까? 저래서 얻어지는 게 뭘까? 과연 행복할까? 그 사람이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 끌려 다닌다는 생각마저 든다. 돈과 시간의 문제도 그런 것 같다. 풍요와 행복의 상관관계도 그렇다. 나는 행복이 다른 것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요도 행복관 관계가 높을 때 의미가 있다.

다음 사례가 그 얘길 해 준다. 노인과 청년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인이 얘기한다. “힘도 좋은 청년이 일은 하지 않고 왜 그리 빈둥대고만 있나!” 청년이 답한다. “일을 하면 뭐가 좋습니까?” 노인이 말한다. “일을 하면 돈을 받지 않는가!” 청년이 대답한다.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노인의 말이다. “부자가 되지” 청년이 말한다. “부자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노인의 말이다. “부자가 되면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지” 마지막으로 청년이 말한다. “저는 이미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는데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성경 말씀이다. 풍요를 얻기 위해 영혼을 지불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간소, 자립, 관대, 신뢰”라는 네 단어로 답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과 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사이의 균형 감각이며, 자신과 세상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풍요를 얻기 위해 세 가지를 희생했다. 땅, 영혼, 사회가 그것이다. soil, soul, society. 해결방법은 역순이다. 지구와 이어지는 것, 자신과 이어지는 것, 사람들과 이어지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뭔지, 지금 자신은 어떤 위치인지를 생각해 보길 권한다.

- 출처: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