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초점] 파리바게뜨와 삼립식품의 엇갈린 운명
김영수 기사기획 에디터
성공할 기업과 망할 기업을 가려내기는 어렵지 않다.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딴짓 하는 기업은 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나 오너가 오랫동안 잘해온 家業을 버리고 갑자기 엉뚱한 사업에 크게 투자한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한우물을 파서 성공한 사례가 파리바게뜨로 널리 알려진 SPC그룹이고, 한눈팔다 망한 사례가 100원짜리 크림빵으로 유명한 삼립식품이다.
원래 삼립식품 창업주는 큰아들에게 삼립식품을, 둘째아들에게 샤니를 물려주었다. 당시 샤니의 매출 규모는 삼립식품의 10분의 1이었다. 그런데 삼립식품은 빵 사업 대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리조트 사업에 크게 투자했고, 결국 어음 3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하지만 동생인 허영인 회장은 빵에 미쳤다. 폼나는 미국 대학 경영학과(MBA)를 포기하고, 미국 제빵학교에서 빵과 과자를 배웠다. 그러고는 미국 빵집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일했다.
귀국 후 프랑스식 빵에서 영감을 얻어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를 설립, 태극당과 고려당이 장악했던 한국 빵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 제빵학교 시절 친했던 인맥을 통해 던킨도너츠와 배스킨라빈스 브랜드를 국내에 도입했고, 파스쿠찌라는 커피브랜드도 만들었다.
허 회장은 사무실 한편에 큰 책상을 놓고, 계열사에서 만드는 여러 종류의 빵을 작게 잘라 먹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해외에 나갈 때는 인천공항에 있는 계열사 매장을 빠짐없이 돌면서 빵과 커피를 챙겨먹는다. 의사가 허 회장에게 빵을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경고하지만, "빵 만드는 사람이 빵을 안 먹으면 누가 먹느냐"며 들은 척도 안 한다. 빵에 미친 허 회장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母기업 삼립식품을 다시 인수했다.
기업이나 음식점이나 성공하는 방법은 똑같다. 곰탕집 주인이면 곰탕 만드는 데 미쳐야 성공한다. 곰탕집의 생명은 곰탕 맛과 신선도이다. 몇 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1년 내내 꾸준하게 같은 맛을 유지하는 게 성공 비결이다. 특히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곰탕집 주인으로서는 사업을 빨리 확장하고 싶은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여러 곳에 분점을 내고 프랜차이즈를 만든다. 음식의 맛과 질을 잘 관리하기보다는 마케팅과 홍보로 승부한다. 마케팅에 혹해서 한두 번 곰탕집을 찾을 수는 있지만 콘텐츠가 없는 마케팅은 모래 위에 쌓은 성(城)과 같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는 어윤권 쉐프가 운영하는 '리스토란테 에오'라는 이탈리안 음식점이 있다. 그는 무일푼으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온갖 고생과 수모를 이겨내고 탁월한 요리 실력을 쌓았다. 덕분에 에오는 2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자 그 명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렸고, 피꼴로 에오•오스테리아 에오같이 비슷한 이름의 음식점이 생겨났다. 어떤 곳은 어 쉐프가 직접 음식을 챙기고, 어떤 곳은 이름만 빌려줬다. 하지만 고객들은 명성에 못 미치는 음식에 실망했다. 그러자 어 쉐프는 다른 음식점들을 정리하고,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새로 시작하는 정신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성공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찾아 미친듯이 좋아한다면 성공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더 어려운 것은 성공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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