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와 빼기

썼더니
사랑하는 마음 더해지고

아픈 마음이 있어서
아픈 시를 썼더니
아픔 마음 덜어낼 수 있었네

기쁜 일이 있어서
친구와 같이 나누었더니
그 기쁨은 두 배로 늘어나고

슬픈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털어놓았더니
슬픔이 반으로 줄어들었네

그 묘약이 뭔지 알수 없지만
마음속에 있는 문제
밖에서 셈 해보니

좋은 일은 덧셈이 되고
나쁜 일은 뺄셈이 되었네

-좋은 글에서-


받은 글 입니다.

[Y^^]K: 일등 따라하기

[Y^^]K: 일등 따라하기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는 벤치마크입니다. 나만 보면 안되고 시장과 경쟁자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벤치마크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맹목적인 볜치마크나 무작정 따라하기는 오히려 기업을 위기로 몰 수 있습니다. 어느 기업 임원은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 교육과정 중 임원특강 시긴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1등보다 잘닜냐? 없잖아. 그럼 그냥 1등만 따리해. 그게 니네 머리에서 나오는 것보다 나을거 아니야? 그럼 2등이라도 하지. 쓸데없이 나쁜 머리 굴리면 2등도 못해."

사실이라면 생각도 위험하고 조직원들의 의욕도 팍 깍아내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안 좋은 빌언이지민 일단 따라하기에만 촛점을 밎추면... 1등이 과연 영원히 옳은 결정만 내리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1등은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해놓은게 있어 버틸 수 있지만 무작정 따라가던 자가 입는 충격은 훨씬 더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를 따라가는데 급급하다 스마트폰 진입시기를 놓친 엘지전자처럼.


'[Y^^]K: 일등 따라하기'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Two ways of spreading light


There are two ways of spreading light: to be the candle or the mirror that reflects it.

- Edith Wharton (1862-1937)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 이디스 워튼 (1862-1937) 미국 작가


내가 좋은 글을 못쓰더라도 그것을 이렇게 전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거울이 되는 걸까요?


http://maguquotes.blogspot.com/2010/11/inspiration-edith-wharton.html

금이 간 항아리

금이 간 항아리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막대기로 만든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사람들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아내인가? 그래서 남편이 죽어가는 것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남편인가? 그래서 아내가 죽어가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명문대를 나온 어떤 학생을 알고 있다. 부모의 완벽함 때문에 그 자식이 죽어가고 있었다. 2등을 해도 만족이 없었다. 심지어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해야한다고 다그쳤다. 그 아이의 심성이 아스팔트 바닥같이 메마른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좀 금이 가면 어떤가? 틈이 있으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안되는가?

영국 의회에 어떤 초선 의원이 있었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청산유수로 너무나도 완벽한 연설을 했다.

연설을 마치고 난 다음에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해 달라고 했다. 물론 처칠로부터 탁월한 연설이었다라는 평가와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너무 완벽함은 정 떨어진다. 한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든다.


옛말에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금이 갔기 때문에 훌륭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좋은 글에서


받은 글입니다.

좋은 기억력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 니체 -


약속이란 알면서 안 지키는 것도 나쁘지만, 몰라서 못 지키는 것도 약속을 어긴 변명이 되지 못합니다.

삶을 변화 시키는 인생관

삶을 변화 시키는 인생관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은 같은 평수의 방이라도
전망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히 납니다.

똑같은 설계에 똑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인테리어를 해도
어느 쪽에 방을 만드느냐,

객실에서 창 밖을 내다볼 때 바다가 잘 보이느냐
산이 잘 보이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오웰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으나
부정적인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창을 열면 어떤 곳이 보이나요?

*-- 좋은글 중에서 --*


받은 글입니다.

나를 살피는 지혜

나를 살피는 지혜

어떤 기차의 차장이 승객의 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기차를 잘못 타셨습니다. 다음 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차표 검사를 해 나갈수록 잘못 탄 손님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차안이 온통 수라장이 되었을 때 손님 한 사람이 차장에게 "차장님, 실례지만 혹시 차장님께서 기차를 잘못 타신 것 아닙니까?" 하고 정중히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차장 자신이 기차를 바꿔 탄 것입니다.

나도 이 차장처럼 내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지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가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먼저 아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지금 자신의 목표와 목적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 선택했는지,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길인지를…

- 좋은글 중에서 -


받은 글입니다.

아무리 본인이 옳다고 생각해도 모두가 틀렸다면 자신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은 같이 살고, 상호작용으로 만들어가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멘토 (Mentor)

멘토(Mentor)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때에 이르면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란 우리를 안내하고 보호하며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체화한 사람이다. 멘토는 우리의 상상력을 고취시키고 욕망을 자극하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운을 북돋워준다. 멘토는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할 때 나타나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대부나 대모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플로렌스 포크의《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중에서 -


멘토가 있으신가요? 자기 아들딸처럼, 제자처럼, 친구처럼 전인적으로 돌봐주는 사람. 때로는 내가 꿈꾸었던 것 이상의 꿈을 이루도록 챙겨주고 지원해주는 사람. 진정성이 있고, 사랑이 있고, 가슴이 따뜻하고, 세상 보는 눈이 긍정적이고, 인내할 줄 알며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 이런 멘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운아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웃자웃자~

1 황수관 교수의 웃음 철학.

월요일- 원래대로 웃자.
화요일- 화통하게 웃자.
수요일- 수수하게 웃자.
목요일- 목터지게 웃자.
금요일- 금방 웃고 또 웃자.
토요일- 토실토실 웃자.
일요일- 아침부터 일찍 웃자.

1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에는 꽃과 함께 웃고,
여름에는 물과 함께 웃고,
가을에는 열매와 함께 웃고,
겨울에는 눈과 함께 웃자.


받은 글입니다.

옛날 청소년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삽입곡 중 하나의 가사에 그런 말이 있었죠.

"...한동안 슬픔이 없었지. 기쁨이 없었던 것처럼..."

그 노래를 들을 때, 울 일이 없는 대신 웃을 일도 없다는 게 웃을 일이 있는 대신 울을 일도 있는 것보다 좋은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울을 일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슬픔은 없고, 웃을 일은 많은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꿀먹은 벙어리 새

작은 새들이 사는 숲에는 한 개의 큰 나무가 서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작은 새들은 그 나무를 신령스럽게 생각하여 감히 나무 가지에 앉지 않았다.

그 고목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새들은 그 나무 구멍 속에 무지무지하게 큰 구렁이가 산다고 생각하였다.
작은 새들은 그 구렁이를 나무신이라 믿고, 일 년에 한 번씩 그 나무 밑에서 큰 제사를 지냈다.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되기를 빌었다.

어느 날 새들이 사는 숲으로 두 마리의 큰 새가 날아들었다. 그 새들은 고목나무에 날아와 각자 두 개의 둥지를 틀었다.

작은 새들 중에서 가장 늙은 새가 두 마리의 큰 새 앞에 나타나 말하였다.

“이 나무에 둥지를 틀면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냐?”

두 눈이 부리부리한 큰 새가 물었다.

“신령스런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에는 용이 되려는 큰 구렁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에 둥지를 틀면 부정을 타게 됩니다.”

작은 새들 중 가장 늙은 새가 설명하였다.

“그 구렁이들을 네 눈으로 직접 보았느냐?”

“아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우리 새들이 사는 숲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깁니다.”

“보지도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너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구나. 벌건 대낮에 가시나무에 찔려 애꾸눈이 된 저 멍청한 새와 다를 바가 없군.”

두 눈이 부리부리한 큰 새가 바로 옆에 둥지를 튼 큰 새를 가리켰다. 정말 그 큰 새는 눈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 대신에 두 개의 큰 귀를 가지고 있었다.

“애꾸눈이라고 했나? 그대는 일목요연(一目瞭然)이란 말도 모르는 모양이로군.”

두 귀가 큰 새가 한 마디 하고는 곧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높은 산에 올라가 도를 닦고 내려온 성자들이다. 성자들은 구렁이 따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두 눈이 부리부리한 큰 새가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 고목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구렁이가 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겠군요?”

작은 새들 중 가장 늙은 새가 물었다.

“물론이지. 우리는 한 달 동안 먹지 않고도 고목나무 구멍 속에서 도를 닦을 수 있다. 어이, 애꾸눈! 이 기회에 누가 더 도를 많이 닦았는지 내기해 보지 않겠나?”

두 귀가 큰 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두 마리의 큰 새는 고목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한 달 동안 나오지 않았다. 작은 새들은 그 새들이 구렁이에게 물려죽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후 두 마리의 큰 새가 구멍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왔다. 작은 새들은 그 두 마리의 큰 새들을 성자로 모시기로 하였다.

“우리들에게 도(道)의 참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작은 새들을 큰 나무 주위로 불러 모은 후, 가장 늙은 새가 두 마리의 큰 새에게 청하였다.

“도란 지혜로운 자만이 지닐 수 있는 덕목이다. 저 고목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동안 구렁이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구렁이는 감히 내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바로 내가 도를 닦은 성자이기 때문이다.”

두 눈이 부리부리한 큰 새가 말하였다.

“그것이 참말입니까? 그럼, 그 옆에 계신 성자께서도 구렁이를 보았단 말입니까?”

작은 새들 중 가장 늙은 새가 이번에는 두 귀가 큰 새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만 꾹 감고 있을 뿐이었다.

“저 애꾸눈은 구렁이가 나타나자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만 하였다. 그리고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입술이 붙어 아주 벙어리가 되어 버렸지. 내 도력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한 것만도 다행스런 일이야.”

두 눈이 부리부리한 새가 대신 말하였다.

그때 눈을 꾹 감고 있던 두 귀가 큰 새는 어디선가 불씨를 물어다 자신의 둥지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앉아 기도를 드렸다. 둥지가 불에 다 탈 때까지 그 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새는 타지 않고 오히려 몸에서 불보다 더 밝고 투명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둥지가 다 타고나자 그 새는 불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새의 꼬리가 그리고 지나간 자국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말이 아닌 몸으로 도를 보여주었군!”

작은 새들 중 가장 늙은 새가 감탄하여 소리쳤다.

“과연 도가 깊은 성자로구나!”

작은 새들도 합창을 하듯 말하였다.

“저건 도를 닦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도술이다.”

두 눈이 부리부리한 큰 새도 자신의 둥지에 불을 지르고 그 위에 올라앉았다. 잠시 후에 그 새는 몸에 불이 붙어 새카맣게 타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옮긴 글입니다. 말만 앞서지 말라는 우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