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마음 열린 마음
주는 마음 열린 마음
조화로운 인간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문을 열기는 커녕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고 담장도 없다.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요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다.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 설 자리도 좁다.
많이 쌓고 싶으면 울타리를 넓게 쳐라.
더 많이 쌓고 싶으면 아예 울타리를 허물어라
열린 마음은 강하다.
아무 것도 지킬 게 없으니
누구와도 맞설 일이 없다.
진정 강해지려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어라.
낮은 것이 높은 것이고
열린 마음이 강한 것이다.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 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마음의 손에 달려있다...
『 좋은 생각 中에서 』
받은 글입니다.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
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만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뿐인걸요.
누가 알아요.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세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죠.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하세요.
즐거워하세요.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세요. 최선을 다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죠. 지금 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 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입니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받은 글입니다.
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만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하세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뿐인걸요.
누가 알아요.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세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죠.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하세요.
즐거워하세요.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마세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세요. 최선을 다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죠. 지금 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 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입니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받은 글입니다.
Back to the Basic
기초, 기초, 기초
기초부터 알기. 그것은 그레이엄 코치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기초, 기초, 기초.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학생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이 점을 무시하는 것을 보아 왔다. 당신은 반드시 기초부터 제대로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화려한 것도 해낼 수가 없다.
- 랜디포시의 《마지막 강의》 중에서 -
집도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운동, 공부, 직업, 생활도 기초가 핵심입니다. 작고 시시하고 귀찮아 보이는 것을 혼을 담아 반복하는 것, 피눈물나는 반복 훈련이 기초를 튼튼하게 해줍니다. 이를 건너뛰거나 대충대충, 허겁지겁 하게 되면 기초의 기초조차 기약할 수 없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Basic!'하니까 갑자기 일기당천 1기가 생각나네요.
기초부터 알기. 그것은 그레이엄 코치가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기초, 기초, 기초.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학생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이 점을 무시하는 것을 보아 왔다. 당신은 반드시 기초부터 제대로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화려한 것도 해낼 수가 없다.
- 랜디포시의 《마지막 강의》 중에서 -
집도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운동, 공부, 직업, 생활도 기초가 핵심입니다. 작고 시시하고 귀찮아 보이는 것을 혼을 담아 반복하는 것, 피눈물나는 반복 훈련이 기초를 튼튼하게 해줍니다. 이를 건너뛰거나 대충대충, 허겁지겁 하게 되면 기초의 기초조차 기약할 수 없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Basic!'하니까 갑자기 일기당천 1기가 생각나네요.
열정을 저버리는 것은...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저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 더글러스 맥아더 -
- 더글러스 맥아더 -
신념으로 사는 사람
신념으로 사는 사람
인간은 단호한 태도로 참으로 원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만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설사 육지를 헤매든 바다에 떠 있든 소원을 이루기 위해 플러스가 되는 것만을 끊임없이 자기 주위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사고하고 이미지 화하는 뛰어난 능력이 나면서부터 주어져 있다.
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어떻게 소원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신념이란 바꿔 말하면 생각하는 힘이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 막연한 소원이 어느새 강한 소망이 되고, 거기에 "반드시 실현한다"는 기대가 가미된 것 그것이 바로 신념이다.
이 신념이 성장해 가면 갈수록, 즉 강한 소원이 생겨나 끊임없이 견지되고, 확고한 기대에 차 있을수록, 구하는 것이 가까이 끌려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정신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신념은 본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거기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그 힘은 중화되어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념을 굳게 가지고 확고한 기대에 의해 끊임없이 육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념은 모든 것을 유리하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 원하는 그대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랄프 W. 트라인 -
받은 글입니다.
인간은 단호한 태도로 참으로 원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만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설사 육지를 헤매든 바다에 떠 있든 소원을 이루기 위해 플러스가 되는 것만을 끊임없이 자기 주위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사고하고 이미지 화하는 뛰어난 능력이 나면서부터 주어져 있다.
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어떻게 소원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신념이란 바꿔 말하면 생각하는 힘이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 막연한 소원이 어느새 강한 소망이 되고, 거기에 "반드시 실현한다"는 기대가 가미된 것 그것이 바로 신념이다.
이 신념이 성장해 가면 갈수록, 즉 강한 소원이 생겨나 끊임없이 견지되고, 확고한 기대에 차 있을수록, 구하는 것이 가까이 끌려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정신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신념은 본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거기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그 힘은 중화되어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념을 굳게 가지고 확고한 기대에 의해 끊임없이 육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념은 모든 것을 유리하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 원하는 그대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랄프 W. 트라인 -
받은 글입니다.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자연의 다양함과 같이 인간의 삶도 다양하지만 너무도 감명 깊은 글이기에 이글 한편을 선택해 보았읍니다. 가슴에 전류가 흐르는 뜨거운 글, 꼭 읽어 봐 주세요.
[감동의 글] - 서울대하교 합격자 생활수기
-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 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 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위의 글은 10여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국내 굴지 기업에서 그를 후원하고 있다고 하며 그는 어머니와 형 모두를 미국으로 모셔 형과 같이 공부하면서 어머니께 극진한 효도를 한다고 한다.
이글은 반복해 읽을 수록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 우리사람들은 사랑이나 행복. 성공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고 노력도 해보기전 너무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런 글에서 배워야 하리라
받은 글입니다.
[감동의 글] - 서울대하교 합격자 생활수기
-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 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 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위의 글은 10여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국내 굴지 기업에서 그를 후원하고 있다고 하며 그는 어머니와 형 모두를 미국으로 모셔 형과 같이 공부하면서 어머니께 극진한 효도를 한다고 한다.
이글은 반복해 읽을 수록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 우리사람들은 사랑이나 행복. 성공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고 노력도 해보기전 너무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런 글에서 배워야 하리라
받은 글입니다.
굴이라고 다 같은 굴이 아니다
굴이라고 다 같은 굴이 아니다
통영 굴은 씨알이 굵다.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서산태안 굴은 작다. 굴은 플랑크톤을 먹고 큰다. 통영 굴은 바닷물 속에서 양식하므로 성장 내내 플랑크톤을 먹는다. 서산 태안 굴은 바닷물이 가득 찰 때만 플랑크톤을 먹을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햇볕에 드러나 성장이 멈춘다.
서산태안 굴은 둘레에 돋은 잔털 같은 게 7, 8겹이나 된다. 그만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이 골고루 잘 밴다. 씨알이 굵은 굴은 상대적으로 잔털이 드물다. 양념이 잘 배지 않는다. 서산 어리굴젓은 고춧가루가 굴에 충분히 배어 숙성되면, 맛이 고소하고 얼얼해진다. 그래서 어리굴젓이다.
통영 굴은 국내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통영사람들은 굴을 ‘꿀’로 발음한다. 그래서 ‘꿀(굴)맛이 꿀맛이다’. 시내엔 굴 천지다. 어느 음식점이든 굴이 빠지면 음식이 안 된다. 굴향토집(055-643-4808)이 오래됐다.
서산은 굴밥이 유명하다. 밤 버섯 당근 대추 굴 호두 은행 등을 넣어 돌솥에 앉혀 짓는다. 달래양념장 넣고 쓱쓱 비벼 어리굴젓을 밑반찬 삼아 먹는다. 간월도 입구의 춘자네(011-9838-7091), 간월도의 큰마을영양굴밥(041-662-2706)이 붐빈다.
보령 천북면 굴마을(서해안고속도로 광천나들목)엔 굴요리 전문점 100여 개가 있다. 은박지에 싸 은근한 불에 굽는 굴구이가 맛있다. 토박이집(041-641-9634). 선창(041-641-2092), 고래굴구이(041-641-7773).
서울에선 홍대앞 돌꽃(02-324-5894), 김명자굴국밥집 광화문점(02-392-9199) 등이 눈에 띈다
통영 굴은 씨알이 굵다.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서산태안 굴은 작다. 굴은 플랑크톤을 먹고 큰다. 통영 굴은 바닷물 속에서 양식하므로 성장 내내 플랑크톤을 먹는다. 서산 태안 굴은 바닷물이 가득 찰 때만 플랑크톤을 먹을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햇볕에 드러나 성장이 멈춘다.
서산태안 굴은 둘레에 돋은 잔털 같은 게 7, 8겹이나 된다. 그만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이 골고루 잘 밴다. 씨알이 굵은 굴은 상대적으로 잔털이 드물다. 양념이 잘 배지 않는다. 서산 어리굴젓은 고춧가루가 굴에 충분히 배어 숙성되면, 맛이 고소하고 얼얼해진다. 그래서 어리굴젓이다.
통영 굴은 국내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통영사람들은 굴을 ‘꿀’로 발음한다. 그래서 ‘꿀(굴)맛이 꿀맛이다’. 시내엔 굴 천지다. 어느 음식점이든 굴이 빠지면 음식이 안 된다. 굴향토집(055-643-4808)이 오래됐다.
서산은 굴밥이 유명하다. 밤 버섯 당근 대추 굴 호두 은행 등을 넣어 돌솥에 앉혀 짓는다. 달래양념장 넣고 쓱쓱 비벼 어리굴젓을 밑반찬 삼아 먹는다. 간월도 입구의 춘자네(011-9838-7091), 간월도의 큰마을영양굴밥(041-662-2706)이 붐빈다.
보령 천북면 굴마을(서해안고속도로 광천나들목)엔 굴요리 전문점 100여 개가 있다. 은박지에 싸 은근한 불에 굽는 굴구이가 맛있다. 토박이집(041-641-9634). 선창(041-641-2092), 고래굴구이(041-641-7773).
서울에선 홍대앞 돌꽃(02-324-5894), 김명자굴국밥집 광화문점(02-392-9199) 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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