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의‘2분산책’-30
리더십과 파트너십
김수종
링컨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최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책을 뒤적이다가 문득 알래스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링컨과 알래스카? 뭔가 생뚱맞다고 생각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 두 번 알래스카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삼라만상이 밤과 눈 속에 파묻힌 12월에, 또 한번은 해가 질 줄 몰라 호박넝쿨이 하루에 한자씩 자란다는 7월초였습니다. 북극해 연안까지 구경했던 여름철 방문은 남한의 17배나 넓은 알래스카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알래스카 여행을 하면서 필자의 눈과 귀에 가장 많이 다가온 단어가 '수워드(Seward)'였습니다. '수워드'라는 항구도시가 있었고, '수워드 하이웨이'라는 고속도로도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세종'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쓰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 정부가 제정 러시아에게 72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땅입니다. 요새 우리 돈으로 단순히 환산하면 70억원 정도이니 강남의 큰 평수 아파트 3채 정도면 너끈히 지불할 수 있는 부동산입니다. 그러나 140년 전의 달러가치로 보면 미국정부가 부담하기에 벅찬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인물이 윌리엄 수워드(William Seward) 국무장관입니다. 그런데 아직 광대한 서부개발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이어서 그런 거금을 주고 알래스카를 사겠다는 수워드의 결심에 의회와 언론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의회와 언론은 알래스카를 '수워드의 얼음박스'라고 조롱했고, 그 거래를 '수워드의 우행(愚行)'이라고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알래스카의 영토적 가치를 평가했던 수워드 장관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뚫고 이 땅을 매입하는 데 진력했습니다. 당시 수워드 장관은 핵무기나 핵잠수함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매입 덕분에 한 세기가 지난 후 미국은 그 땅 면적을 뛰어 넘어 사실상 거대한 태평양을 내해처럼 사용하며 '팍스아메리카'의 세계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내가 만난 알래스카 사람들은 수워드장관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땅으로 남아 수천기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수워드는 미국본토 사람들에게 조지 워싱턴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나쁜 비유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수워드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서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지만, 그를 처음 국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수워드와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였습니다. 수워드는 사실 링컨 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었습니다. 약관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이나 당선되었으며,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일 만큼 흑인인권보호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느 모로 보나 지명도에서 앞서 있던 수워드에게 중서부 변방 출신의 링컨이 도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수워드는 링컨에게 역전패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화려한 이력의 서울 시장이 지방출신 국회의원에게 당한 꼴입니다.
당시의 정치풍토가 그랬는지는 모르나, 패배한 수워드는 미국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링컨 지원유세에 열성적으로 나섰습니다. 대통령에 당선 된 링컨은 그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수워드는 링컨 정부의 남북전쟁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감으로 손색이 없는 두 정치인이 콤비를 이루어 혼란기의 내각을 이끌어 나갔던 것입니다.
링컨이 재선한 후인 1865년 4월 14일 밤 수워드 장관의 집에 무장괴한이 침입했습니다. 수워드의 아들이 괴한을 차단하면서 격투가 벌어졌고, 괴한이 아들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집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아들은 총상을 입었고 수워드도 괴한의 칼에 찔려 부상했습니다.
이 소동이 벌어지던 바로 그 순간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암살범 부스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당의 음모였습니다. 이날 밤 수워드 장관이 암살됐더라면 알래스카는 미국 땅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워드와 링컨의 관계가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만만치 않는 경력의 경쟁자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었던 링컨의 배포와 도량, 그 밑에서 훌륭한 국무장관으로 미국에 봉사했던 수워드의 자세입니다.
링컨이 미국인에게 위대한 것은 두 동간 난 나라를 통일했기 때문입니다. 수워드가 대단한 것은 이 혼란의 시기에 미국의 장래를 내다보며 국가의 외연을 넓혔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쓸데없는 일이지만, 링컨과 수워드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국난을 반전시키고 국가의 앞날을 보며 여론을 뛰어 넘어 행동했던 민주주의 시대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야수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또 근래 첨예하게 분열적 대립상을 보이는 미국의 대통령제 정치를 보면서, 링컨 시대의 정치 리더십과 정치 파트너십을 다시 한번 떠 올려보게 됩니다. 멀리 길게 국가의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라스베가스의 도박판 같이 돌아가는 우리의 대선 모습이 결코 건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원제작처인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과의 협의하에 연우포럼에서도 동시에 전재.배포하고 있습니다.(김연우 포럼장)
[필자 소개] 김수종
한국일보 주필을 역임했으며 현재 칼럼집필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래 일선기자 해외특파원 데스크로 일했다. 1998년부터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썼으며 2005년 퇴사했다. 신문사 재직중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를 지냈다. 환경책‘0.6도’와 ‘지구온난화의 부메랑’(공저)을 썼다.
받은 글입니다.
킬리만자로 (3)
얼룩말들도 이 순간만은 평화로운 한때
펠리칸 떼의 정경이 펼쳐지고..
펠리칸들이 한가로이
하이에나 한쌍이 늪지대에서 무얼하는지
'하이에나'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뒷다리가 짧아서인지 띠뚱띠뚱 걷는 모습이 이전 알고 있던 지저분한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 왔다. 표정 또한 코메디언의 표정같이 우스웠고, 귀엽기까지 했다
초원에 관목 숲이 있을 뿐 인데 드물게 보이는 아카시아류 나무와 초록색 잎나무(그린 허트)가 있는 곳에 기린 가족이 살고 있었다.
킬리만자로산이 삐끗 나와 우릴 배웅한다
하이얀 만년설이 우릴 유혹하는 킬리만자로여 ~~~
킬리만자로 산이여 아듀~~~~
펠리칸 떼의 정경이 펼쳐지고..
펠리칸들이 한가로이
하이에나 한쌍이 늪지대에서 무얼하는지
'하이에나'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뒷다리가 짧아서인지 띠뚱띠뚱 걷는 모습이 이전 알고 있던 지저분한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 왔다. 표정 또한 코메디언의 표정같이 우스웠고, 귀엽기까지 했다
초원에 관목 숲이 있을 뿐 인데 드물게 보이는 아카시아류 나무와 초록색 잎나무(그린 허트)가 있는 곳에 기린 가족이 살고 있었다.
킬리만자로산이 삐끗 나와 우릴 배웅한다
하이얀 만년설이 우릴 유혹하는 킬리만자로여 ~~~
킬리만자로 산이여 아듀~~~~
킬리만자로 (2)
멀리 사자 한마리가 눈에 들어 온다.
코끼리 떼는 아직도 물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발달된 푸른 초원을 차지하고 있다.
케냐 엠보세리 국립공원은 사파리로 유명한 곳이다. 여전히 하늘은 청명하고, 드넓은 야생 세계의 광활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암보셀리는 코끼리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조류도 다양하다.
얼룩말은 시각이 아주 좋지 않은 반면에 청각과 후각이 아주 발달해 숨어서 접근하는 맹수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노련한 운전기사는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 광활한 사바나를 거침없이 달리고, 신기하게도 찾아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맞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무리의 동물들이 반긴다.
그것들과의 사이에 어떠한 장벽도 없다는 것이 바로 사파리의 매력이다. 이 넓은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멀리 하마가 한가로이.
먹이사슬 제일밑에 있는 톰슨가젤은 얼룩말과 함께 맹수들의 먹이 일순위
평화로운 가젤무리들
코끼리 떼는 아직도 물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발달된 푸른 초원을 차지하고 있다.
케냐 엠보세리 국립공원은 사파리로 유명한 곳이다. 여전히 하늘은 청명하고, 드넓은 야생 세계의 광활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암보셀리는 코끼리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조류도 다양하다.
얼룩말은 시각이 아주 좋지 않은 반면에 청각과 후각이 아주 발달해 숨어서 접근하는 맹수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노련한 운전기사는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 광활한 사바나를 거침없이 달리고, 신기하게도 찾아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맞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무리의 동물들이 반긴다.
그것들과의 사이에 어떠한 장벽도 없다는 것이 바로 사파리의 매력이다. 이 넓은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멀리 하마가 한가로이.
먹이사슬 제일밑에 있는 톰슨가젤은 얼룩말과 함께 맹수들의 먹이 일순위
평화로운 가젤무리들
킬리만자로 (1)
킬리만 자로
일어나 바라보는 킬리만자로는 푸르름에 젖어있다. 여명이 비치며 고요의 어둠속에서 신비한 자태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아침 해돋이가 환상인 환상적인 위치에 암보셀리롯지가 있다.
암보셀리롯지 View Point에서 킬리만자로를 조망
암보셀리를 떠나던 날 아침 킬리만자로 산 (5,895m)이 완전히 구름으로부터 벗어나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도 유명한, 한 해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명이 오르기 위해 모인다는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는 그 이름 자체가 오를수 없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망원렌스로 관찰한 산정에 두겊게 덮힌 만년설의 아름다움이 등반해 보고픈 욕망을 샘솟게 할 만큼 날 매혹시켰다.
이곳에서는 성스러운 산으로 1848년 독일인 선교사 레프만이 처음 발견하고 1889년 독일인 메이어가 식민지 하에서는 영국과의 신경전끝에 독일 땅이었다가 독립과 함께 탄자니아로 귀속 되었다.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의 동물 사파리는 흥미진진했다.
사자는 2,000여 마리, 코끼리는 약 2,700마리, 사바나얼룩말은 약 6만 마리, 톰슨가젤 약 15만 마리, 마사이기린 약 8,000마리, 누 약 100만 마리 등과 함께 6종류에 이르는 대머리독수리, 흰허리독수리 등이 서식한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넓은 평원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야생동물들을 보는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야생에서 자급자족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것은 동물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신기한 일처럼 느껴졌다.
받은 사진입니다.
일어나 바라보는 킬리만자로는 푸르름에 젖어있다. 여명이 비치며 고요의 어둠속에서 신비한 자태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아침 해돋이가 환상인 환상적인 위치에 암보셀리롯지가 있다.
암보셀리롯지 View Point에서 킬리만자로를 조망
암보셀리를 떠나던 날 아침 킬리만자로 산 (5,895m)이 완전히 구름으로부터 벗어나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도 유명한, 한 해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명이 오르기 위해 모인다는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는 그 이름 자체가 오를수 없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망원렌스로 관찰한 산정에 두겊게 덮힌 만년설의 아름다움이 등반해 보고픈 욕망을 샘솟게 할 만큼 날 매혹시켰다.
이곳에서는 성스러운 산으로 1848년 독일인 선교사 레프만이 처음 발견하고 1889년 독일인 메이어가 식민지 하에서는 영국과의 신경전끝에 독일 땅이었다가 독립과 함께 탄자니아로 귀속 되었다.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의 동물 사파리는 흥미진진했다.
사자는 2,000여 마리, 코끼리는 약 2,700마리, 사바나얼룩말은 약 6만 마리, 톰슨가젤 약 15만 마리, 마사이기린 약 8,000마리, 누 약 100만 마리 등과 함께 6종류에 이르는 대머리독수리, 흰허리독수리 등이 서식한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넓은 평원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야생동물들을 보는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야생에서 자급자족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것은 동물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신기한 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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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나였다
나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나였다
내게는 적이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를 알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의 발길을 피해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나의 계획을 방해했고 나의 목표를 좌절시켰으며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할 때, 그는 을씨년스럽게 내게 말했다.
"안된다."
어느 날 밤 나는 그를 잡았다. 그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베일을 벗겼다.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아..! 그 얼굴은 바로 나였다.
- 존 맥스웰의 '리더십의 법칙' 중에서 -
"우리가 어리석을 때는 세상을 정복하기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로울 때 우리는 자신을 정복하기 원한다."
나의 '최대의 적'은 누구인가... 그는 실력이 뛰어난 라이벌도, 경쟁사도 아닙니다. 나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의 목표를 좌절시키는 것도 그이고, 내 계획을무산시키는 것도 그입니다.
그래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라이벌을 노려보고 세상을 정복하려 하지만, 성숙하고 지혜로운 이는 자신을 주시하고 자신을 이기려 노력하는 것일 겁니다.
링컨은 "내가 준비만 된다면, 기회는 내게 주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실패도 그렇고, 성공도 그렇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박지성을 바꾸어 놓은 그 말 한마디
나는 수원공고를 나왔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프로에 입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로축구단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난 그때 별 볼일 없는 까까머리에 말라깽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풋내기 축구선수가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수십 수백 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 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 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 난 선수들이 꽉 들어 차 있어 갓 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때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 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 번에 20분을 그 다음 번엔 전반전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합에 내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 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 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일지라도 오래 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 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 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 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 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여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내가 되어 있다는' 감독님이 던진 채 1 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받은 글입니다.
수십 수백 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 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 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 난 선수들이 꽉 들어 차 있어 갓 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때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 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 번에 20분을 그 다음 번엔 전반전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합에 내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 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 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을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얼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 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일지라도 오래 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 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 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 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 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여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내가 되어 있다는' 감독님이 던진 채 1 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받은 글입니다.
세개의 만트라
세개의 만트라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는 타협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 류 시화,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
만트라 (mantra, 眞言)
주(呪)•신주(神呪)•밀주(密呪)•밀언(密言) 등으로도 번역한다. '만트라'는 사고의 도구, 즉 언어를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신들에 대하여 부르는 신성하고 마력적(魔力的)인 어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베다 시대부터 널리 행해졌다.
받은 글입니다.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는 타협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 류 시화,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
만트라 (mantra, 眞言)
주(呪)•신주(神呪)•밀주(密呪)•밀언(密言) 등으로도 번역한다. '만트라'는 사고의 도구, 즉 언어를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신들에 대하여 부르는 신성하고 마력적(魔力的)인 어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베다 시대부터 널리 행해졌다.
받은 글입니다.
Works of Sally Swatland (3)
Quiet Afternoon at Binney Park
Oil on canvas
26 x 32 inches
Pond at Riversville Road
Oil on canvas
26 x 32 inches
Afternoon on the Terrace
Oil on canvas
26 x 32 inches
Island Garden
Oil on canvas
26 x 32 inches
Long Island Sound
Oil on canvas
24 x 30 inches
Summer Hollyhocks
Oil on canvas
30 x 24 inches
http://www.rehsgalleries.com/sally_swatland_memories_of_summer.htm
인생을 지배하는 성공의 법칙
우연히 넘겨버릴 수 있는 현상 속에서 몇 가지의 결정적인 법칙들을 정리해 내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에서 자신 만의 독특한 길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관찰할 수 있는 '인생(성공)을 지배하는 법칙'을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제대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1. 인과 법칙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다. 모든 결과에는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한 가지 이상의 원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했다면 처음에는 우리보다 수입이 적었지만 지금은 두 배나 많은 수입을 거두는 사람 한 두명을 찾아 그들이 목표를 성취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다시 말해, "성공은 흔적을 남긴다."
성공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실패 또한 마찬가지다. 성공이란 사람들과 똑같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그들이 수행한 일을 반복한 결과이다. 나는 줄곧 일과 그 일에서 거둘 수 있는 재정적인 성공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일에든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했고 나는 항상 그 관계를 찾아냈다.
나는 수년 동안 스물두 개 회사를 설립하거나, 관리하거나, 회생시켰다. 여덟 가지 분야에서 백만 달러 정도 혹은 이따금 그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마다 처음에는 그 분야의 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기술을 찾아내고 완전히 익힐 때까지 반복했다. 그러자 물이 언덕 아래로 흘러내리듯이 돈이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운 좋게도 찾아야 할 해답을 모두 찾아냈다. 특정한 업무나 생활의 분야에서 어떤 목표를 성취하고 싶든 상관없이 수 십만 혹은 수백만명의 사람이 시행착오와 희생을 통해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배워야 할 요소를 이미 찾아냈다. 우리가 바퀴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경험을 사거나 빌릴 수 있다. 경험을 살 경우 시간, 돈, 노력으로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경험을 빌린다면 다른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이용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대부분 대가를 완전히 치루는 방법을 택한다.
나는 수년 동안 수천 권의 책과 수만 편의 글을 읽었다. 45개국의 천 곳이 넘는 회사에서 컨설턴트, 연사, 트레이너로 일했다. 사업, 판매, 기업 관리 분야에 대해 4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훈련시키고 백만장자 수천 명을 배출했다. 내게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전한 사람은 하나같이 인과 법칙을 이해하자. 성공이 곧 뒤따라왔다고 말한다.
2. 신념 법칙
이는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이든 현실로 나타난다'는 법칙이다. 하버드대학의 윌리엄 제임스는 "믿음이 현실적인 사실로 창조한다"고 말했다. 신약성서는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전한다.
강한 믿음과 내적 확신이 대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과 성과를 결정한다. 만일 낙관주의, 자신감, 궁극적인 성공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두려움, 자기 의심, 열등감에 사로잡힌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대부분 빈손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5백 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같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좌절이나 실망은 훗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배움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믿음 덕분에 어떤 것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사업가로 성공하려면 자신이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부로 향하는 길에서 수많은 함정과 우회로를 만나고, 실망감을 느끼고, 일시적으로 실패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출처: 브라이언 트레이시, <사업 성공의 길>, pp.25-30
받은 글입니다.
1. 인과 법칙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다. 모든 결과에는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한 가지 이상의 원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했다면 처음에는 우리보다 수입이 적었지만 지금은 두 배나 많은 수입을 거두는 사람 한 두명을 찾아 그들이 목표를 성취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다시 말해, "성공은 흔적을 남긴다."
성공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실패 또한 마찬가지다. 성공이란 사람들과 똑같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그들이 수행한 일을 반복한 결과이다. 나는 줄곧 일과 그 일에서 거둘 수 있는 재정적인 성공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일에든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했고 나는 항상 그 관계를 찾아냈다.
나는 수년 동안 스물두 개 회사를 설립하거나, 관리하거나, 회생시켰다. 여덟 가지 분야에서 백만 달러 정도 혹은 이따금 그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마다 처음에는 그 분야의 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기술을 찾아내고 완전히 익힐 때까지 반복했다. 그러자 물이 언덕 아래로 흘러내리듯이 돈이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운 좋게도 찾아야 할 해답을 모두 찾아냈다. 특정한 업무나 생활의 분야에서 어떤 목표를 성취하고 싶든 상관없이 수 십만 혹은 수백만명의 사람이 시행착오와 희생을 통해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배워야 할 요소를 이미 찾아냈다. 우리가 바퀴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경험을 사거나 빌릴 수 있다. 경험을 살 경우 시간, 돈, 노력으로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경험을 빌린다면 다른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이용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대부분 대가를 완전히 치루는 방법을 택한다.
나는 수년 동안 수천 권의 책과 수만 편의 글을 읽었다. 45개국의 천 곳이 넘는 회사에서 컨설턴트, 연사, 트레이너로 일했다. 사업, 판매, 기업 관리 분야에 대해 4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훈련시키고 백만장자 수천 명을 배출했다. 내게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전한 사람은 하나같이 인과 법칙을 이해하자. 성공이 곧 뒤따라왔다고 말한다.
2. 신념 법칙
이는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이든 현실로 나타난다'는 법칙이다. 하버드대학의 윌리엄 제임스는 "믿음이 현실적인 사실로 창조한다"고 말했다. 신약성서는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전한다.
강한 믿음과 내적 확신이 대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과 성과를 결정한다. 만일 낙관주의, 자신감, 궁극적인 성공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두려움, 자기 의심, 열등감에 사로잡힌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대부분 빈손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5백 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같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좌절이나 실망은 훗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배움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믿음 덕분에 어떤 것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사업가로 성공하려면 자신이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부로 향하는 길에서 수많은 함정과 우회로를 만나고, 실망감을 느끼고, 일시적으로 실패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출처: 브라이언 트레이시, <사업 성공의 길>, pp.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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