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주는 산
산의 품에 안겨 산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사람들이 산의 주인인 산신령에게 말했다.
“산신령님! 우리는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을 주십시오.”
“그렇다면 산에서 나는 칡뿌리를 캐먹거나 고사리라도 뜯어 먹거라.”
산신령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작 칡뿌리나 고사리 가지고는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산신령님! 농사지을 땅이 없습니다. 화전이라도 일구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무나.”
산신령은 선선히 승낙하였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고 산비탈에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었다. 불길 때문에 발밑이 화끈거리고 연기로 인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지만, 산신령은 그저 태연자약하였다.
이번에는 숯 굽는 사람들이 와서 산신령에게 말하였다.
“숯을 굽게 해주십시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숯을 굽지 않으면 굶어죽을 판입니다.”
“산목숨인데 굶어죽을 수야 없지. 산의 나무를 베어 숯을 굽도록 하라.”
산신령은 변함없는 태도로 허락해주었다.
숯을 굽는 사람들은 산 중턱에 숯가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굵은 참나무를 베어다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팔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더욱 늘었다.
사람들은 산자락 밑에까지 도로를 뚫었다. 그리고 어느 날 트럭을 몰고 온 목수가 산신령에게 말하였다.
“도시에서 집을 짓는데 재목이 많이 필요합니다. 굵고 곧은 소나무를 베어가야겠습니다.”
“집을 짓는다니 좋은 일을 하는구먼. 그렇게 하도록 하라.”
목수는 일꾼들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마구 베어 트럭에 실었다.
목수와 일꾼들이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도로를 닦는 건설업자들이 나타나 산에 터널을 뚫어야겠다고 하였다. 산신령은 언제나 그렇듯이 쾌히 승낙하였다.
곧 산에 터널이 뚫리고,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각종 차들이 수없이 콧구멍 같은 터널을 들락거렸다.
어느 날인가는 외제 검은 승용차가 터널 입구에 멈추어 섰다.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돈 많은 재벌이었다.
“체력은 국력입니다. 국민 건강이 최고지요. 이곳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재벌이 산신령에게 부탁을 하였다.
“좋도록 하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데, 산신령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산신령은 사람들이 부탁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은 한이 없었다. 죽어가면서까지 산신령에게 끊임없이 부탁을 하였다.
어느 날 도시의 공무원이 와서 말하였다.
“산신령님! 이 산에다 공원묘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공원묘지를?”
“네! 도시 사람들이 먼 거리까지 성묘를 가려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고향에 있는 조상의 묘를 도시 근교로 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다 공원묘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허허! 공원묘지를 만들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많이 생기겠구먼. 좋도록 하라.”
이처럼 산신령은 사람들이 부탁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었다. 사람들이 귀찮은 부탁을 해올지라도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였다.
드디어 골프장이 들어선 반대편 산자락에 공원묘지가 조성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묘를 온 어떤 사람이 담배공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바람에 불이 났다. 불은 공원묘지의 마른 잔디를 다 태우고 산의 나무로 옮겨 붙으면서 순식간에 산 전체로 번져나갔다.
급기야 소방대원이 달려오고 헬기가 동원되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겁나게 번지는 불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니 골프장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산은 검은 잿더미로 변하였다. 잿더미로 변한 산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한탄하였다. 공원묘지를 찾아온 주인들은 조상의 묘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였고, 골프장 주인인 재벌은 잃어버린 재산이 아까워 밤잠을 못 이루었다.
그러나 산신령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껄껄 웃었다.
“자업자득이로다. 그러나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년 봄이 되면 다시 나무뿌리에서 새싹이 돋고, 타버린 재는 밑거름이 되어 새싹을 무럭무럭 자라게 할 것이다. 산은 또다시 온갖 나무와 온갖 풀과 온갖 꽃을 피워 올려 예전처럼 그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다.”
산신령은 다시 산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날 새들이 나무숲으로 찾아들고, 사람들이 산자락 안으로 모여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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