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진흙에서 나왔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는 중심이 비었으나 곧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오뚝이 깨끗하게 섰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다”

연못이나 물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연꽃을 노래한 송나라 대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設)입니다.

돈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돈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 돈은 더럽고 나쁜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꽃 가운데 군자로 칭송 받는 것처럼 돈 또한 선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 착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태양은 져도

태양은 져도

태양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도, 지기 마련이다.

- 페르디난트 레이먼드 -

현직에 있을 때 그렇게 찾아오던 사람들이 퇴직하고 나니 발길을 뚝 끊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인심이 이렇구나, 생각했다는군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그때만큼 발길이 가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돌아가는 이치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인간성이 나빠서라기보다, 사는 일이 바빠서 마음처럼 여유롭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그러나 한편, 아무런 이해득실 없어도 가끔 만나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서 삶이 각박하지 않습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당신의 마음을 지켜라

당신의 마음을 지켜라

마음의 평화와 자유보다 더 나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왕자이고, 왕이며 군주가 되는 것이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내일을 여는 지혜' 중에서 -

우리가 우리를 찾아가는 숲

우리가 우리를 찾아가는 숲

고라니 한 마리가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숲이 있었고, 사람이 사람을 피해 숨어 사는 숲도 있었다. 우리는 그를 은자(隱者)라고 불렀으나 그는 언제나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만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스스로에게 자신을 숨길 수는 없었다. 우리가 우리를 숨기는 숲이 있었고, 우리가 우리를 찾아가는 숲이 있었다.

- 정승윤, 수필 '숲' 중에서 -

홀로 있거나 고요히 지내고 싶어 하지만 얼마나 지속이 될까요. 주변이 적막해도 내안에 몰려온 갈망들로 시끄러워지는 시간입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서로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우리는 서로 비슷한 듯 다른 나무들, 그 숲이 푸르러지고 살만한 곳이 되려면 서로 어우러져야만 하는 것, 우리가 우리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일 테지요.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행복해지십시오


행복해지십시오

행복은 내 안의 이기와 슬픔을 버렸을 때 내게로 온다. 그리고 행복은 나눔을 기뻐할 때 만개한다. 꽃이 나를 보고 웃듯 그대가 나를 보고 미소 지을 때 나는 행복하다.

- 성전스님의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 중에서 -

꽃보다 나비

오늘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비의 사진과 함께 하루를 열겠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페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비가 이렇게 화려한 것은 꽃 때문일까. 꽃보다 나비….”


아침에 그룹 Way 방송을 듣다가 좋은 내용이 나와서 공유해 드립니다.

실행이 없는 비전은 꿈에 불과하며, 비전이 있는 행동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미국의 미래경제학자 Joel A. Barker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받은 글입니다.

행복할 수 있는 비결

행복할 수 있는 비결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현재에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과거를 후회할 게 아니라, 또 장래를 걱정할 게 아니라, 현재의 이 순간에서 얻어 낼 수 있을 만큼 얻어내는 것입니다.

-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

깊은 강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깊은 강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깊은 강물은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

- 톨스토이 -

길을 가다가 어깨만 부딪쳐도, 복잡한 지하철에서 살짝 발을 밟혀도 사람들은 욱!하는 마음에 벌컥 화를 내기 십상입니다. 실수한 사람이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도 목소리를 한껏 높여 상대방을 나무랍니다.

잠시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리 화낼 것까지는 없는데도 일단 소리부터 지르며 상대방을 윽박지릅니다.

톨스토이는 '깊은 강물은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면서 '모욕을 당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얕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화를 잘내고 인격수양이 얕은 사람일수록 참을성이 없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화나게 한다면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얕은 냇물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물이 흐려지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니까요.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혹자는 그러죠. 정말 힘들 때 이런 '당연하고 좋은 말'이 오히려 화가 난다고.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게 쉽냐며.

뭐든 다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생각됩니다.

[Humor] In a bar

In a bar

A man that was drinking all day goes into a bar.
He demands a beer and is denied.
Yet he keeps asking the bartender.

Finally the bartender grabs him and throws him out.
Another man is walking by and the man who was thrown out stops him.
He says, "Hey, I'll bet you 100 dollars that I'm Jesus Christ."

The man walking by laughs at him and says, "Make it 500 dollars and you got yourself a bet."
The man claiming to be Jesus says, "Come with me into this bar and I'll prove it."

So they walk in and sit down at the bar.
Suddenly the bartender comes from the back of the bar and sees the man he threw out.

Angrily the bartender looks toward the man he just threw out and says "Jesus Christ, I told you to stay out of here."
The man walking by looks amazed and pays the man his 500 dollars.

온종일 술을 마셔댄 어떤 남자가 바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는 술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래도 그는 바텐더에게 술을 달라고 계속 졸랐다.

드디어 바텐더는 그를 붙잡아 밖으로 던졌다.
다른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밖으로 집어 던져진 남자가 그를 세웠다.
그가 말했다, "여봐요, 내가 Jesus Christ라는 사실이 증명되면 100달러를 주세요."

지나가던 그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500달러를 걸테니 당신도 돈을 거시요."
예수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말했다, "나와 함께 이 바 안으로 들어 갑시다. 그러면 제가 증명해 드릴게요."

그래서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앉았다.
갑자기 바텐더가 카운터 뒤쪽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가 밖으로 던졌던 그 남자를 봤다.

화가 난 바텐더는 자기가 바로 밖으로 던졌던 그 남자를 보고 말했다, "Jesus Christ(제기랄), 내가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말했잖아"
지나가던 남자는 놀란 듯 하더니 그 남자에게 500달러를 지불했다.

밥 푸는 순서

밥 푸는 순서 ***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들어 오게 하셨고 오남매의 맏이라 그러셨는지 남동생이나 당신 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어느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 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왠일이유? 늘 내 밥을 먼저 퍼 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어야 안 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늘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편과 나 중에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를 많이 생각 했다. 그러다 남편 밥을 먼저 푸기로 했다.

홀아비 삼 년에 이가 서말이고 과부 삼 년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 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 같아서이다.

더구나 달랑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면 어찌 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 스럽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가지 보살펴주고 뒤따라가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혹, 알게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데 우리 두사람, 늙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