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는 의미
닭이 울었다고 새벽이 온 것이 아니듯
일월 일일이 되었기에 새해가 된 것은 아닙니다.
새해는 지난해를 옛 것으로
규정하는 자에게만 새해가 됩니다.
옛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옛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용서 할 것은 용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뜻으로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이 된 이가 있다면 다 용서 하겠습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잘못 한 일들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과거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고 역사이기에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흐르는 물처럼 잊어버릴 때
새것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역사가 보여준 아름다운 선의 구상을
새로 주어지는 새해의 화판에 그려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로 올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의 미래를 함께 내다보며
상기된 얼굴로 서로 따듯한 손 맞잡으면
우리 함께 행복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노인과 아내
노인과 아내
어떤 노인이 그의 아내가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귀에 가까이 가서 물었다.
"내말 들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더 가까이 가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드디어 그는 매우 큰소리로 한번더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세번째로 예스예요!!!"
어떤 노인이 그의 아내가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귀에 가까이 가서 물었다.
"내말 들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더 가까이 가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드디어 그는 매우 큰소리로 한번더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세번째로 예스예요!!!"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이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후 그 독일인의 사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사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것입니다.
** 이하 그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地圖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中國과 日本 사이에 韓半島가 있고 그곳에 韓國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中心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武力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自主性을 잃어본 적이 없는 奇跡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民族'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位와 3位를 차지하였다. 2位는 獨逸人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日本人 勝利者들의 表情, 이것은 人間이 表現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不可思議한 사진....
무엇이 이 두 勝利者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施賞臺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人間的인 儒敎라는 宗敎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民族은 이웃한 日本人(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不過하다는 價値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自負心 强한 民族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侵略, 즉 植民地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孫' 과 '南'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祖國 한국의 太極旗 (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革命이라든가 鬪爭이라든가 勝利 또는 위대한 皇帝의 문양인데 비해 宇宙와 人間과 세상 모든 것의 秩序와 調和를 의미한다) 代身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抵抗의 方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廢刊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彈壓의 方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解放되고 强要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戰爭을 치른 후, 한강의 奇跡!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唯一한 民族이다)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强力한 經濟的 富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開幕式, 聖火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勝利者, '孫'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演出家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場面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韓國人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暴力과 같은 單純함이 아닌) 놀라운 精神力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金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黃'이라고 하는 '孫' 老人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日本과 獨逸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祝祭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太極旗가 올라가자 이 '黃'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孫'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품은 '손'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人間에 대한 信賴에 限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悲劇的인 눈물로 시작된 歷史일지라도 歡喜와 高貴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人間과 國家와 民族의 尊嚴을 이 한국인 아니 韓國 民族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받은 글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후 그 독일인의 사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사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것입니다.
** 이하 그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地圖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中國과 日本 사이에 韓半島가 있고 그곳에 韓國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中心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武力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自主性을 잃어본 적이 없는 奇跡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民族'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位와 3位를 차지하였다. 2位는 獨逸人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日本人 勝利者들의 表情, 이것은 人間이 表現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不可思議한 사진....
무엇이 이 두 勝利者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施賞臺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人間的인 儒敎라는 宗敎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民族은 이웃한 日本人(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不過하다는 價値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自負心 强한 民族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侵略, 즉 植民地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孫' 과 '南'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祖國 한국의 太極旗 (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革命이라든가 鬪爭이라든가 勝利 또는 위대한 皇帝의 문양인데 비해 宇宙와 人間과 세상 모든 것의 秩序와 調和를 의미한다) 代身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抵抗의 方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廢刊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彈壓의 方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解放되고 强要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戰爭을 치른 후, 한강의 奇跡!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唯一한 民族이다)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强力한 經濟的 富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開幕式, 聖火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勝利者, '孫'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演出家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場面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韓國人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暴力과 같은 單純함이 아닌) 놀라운 精神力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金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黃'이라고 하는 '孫' 老人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日本과 獨逸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祝祭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太極旗가 올라가자 이 '黃'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孫'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품은 '손'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人間에 대한 信賴에 限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悲劇的인 눈물로 시작된 歷史일지라도 歡喜와 高貴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人間과 國家와 民族의 尊嚴을 이 한국인 아니 韓國 民族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받은 글입니다.
왜? 젊음을 열광하는가?
왜? 젊음을 열광하는가?
왜? 우리는 역동적인 사람을 주시하는가?
왜? 열정의 시대를 원하가?
시대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몽골의 제왕 톤유쿠크는 '정착은 죽음이다. 움직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고 했다.
망설이는 시간으로 생산은 통곡 하고 주저하는 기회가 가슴을 친다.
사람들이여! 드디어 움직여라. 시대는 행동하는 자를 주시한다.
움직이는 자가 열매를 거두고 움직이는 자가 먹이를 찾아내고 행동의 선두자가 세상을 이끈다.
생각을 움직여라! 용기를 움직여라! 행동을 움직여라!
두 팔을 벌려 소리를 쳐내라. 성공의 불꽃은 움직이는 자의 것이다.
뛰고 또 뛰어라. 지금 당장, 그 움직임을 시작하라!
- 소 천 -
살아있는 증거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공자의 결과는 먼저 움직임의 결과입니다. 그 반경이 넓은 사람일수록 성공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 세계는 움직이는 자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
받은 글입니다.
왜? 우리는 역동적인 사람을 주시하는가?
왜? 열정의 시대를 원하가?
시대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몽골의 제왕 톤유쿠크는 '정착은 죽음이다. 움직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고 했다.
망설이는 시간으로 생산은 통곡 하고 주저하는 기회가 가슴을 친다.
사람들이여! 드디어 움직여라. 시대는 행동하는 자를 주시한다.
움직이는 자가 열매를 거두고 움직이는 자가 먹이를 찾아내고 행동의 선두자가 세상을 이끈다.
생각을 움직여라! 용기를 움직여라! 행동을 움직여라!
두 팔을 벌려 소리를 쳐내라. 성공의 불꽃은 움직이는 자의 것이다.
뛰고 또 뛰어라. 지금 당장, 그 움직임을 시작하라!
- 소 천 -
살아있는 증거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공자의 결과는 먼저 움직임의 결과입니다. 그 반경이 넓은 사람일수록 성공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 세계는 움직이는 자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
받은 글입니다.
앉은 채로 도착한 바위
앉은 채로 도착한 바위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반칠환, '새해 첫 기적' -
호들갑을 떨며 유쾌하게 새해를 맞는 이도 있고 덤덤하게 한 해 계획을 짜는 이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새로운 1년. 자기 방식대로 잘 꾸려가 보아야겠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반칠환, '새해 첫 기적' -
호들갑을 떨며 유쾌하게 새해를 맞는 이도 있고 덤덤하게 한 해 계획을 짜는 이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새로운 1년. 자기 방식대로 잘 꾸려가 보아야겠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준비된 인생길을 걷자
준비된 인생길을 걷자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이 가기 전에 근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목표를 위한 길, 뜻을 펼칠 준비가 되었습니까?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십시오.
그 길 구간 구간에 대한 기한을 정하십시오.
준비된 인생길을 걸읍시다.
- 보리스 폰슈메르체크의《지금이라도 네 삶을 흔들어라》에서-
치밀한 준비를 해도 쉽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하물며 아무런 준비없이 세상에 뛰어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준비를 잘 해야 마무리도 좋아집니다. 한 해 마무리를 잘 하는 것도 새해 준비를 잘 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이 가기 전에 근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목표를 위한 길, 뜻을 펼칠 준비가 되었습니까?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십시오.
그 길 구간 구간에 대한 기한을 정하십시오.
준비된 인생길을 걸읍시다.
- 보리스 폰슈메르체크의《지금이라도 네 삶을 흔들어라》에서-
치밀한 준비를 해도 쉽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하물며 아무런 준비없이 세상에 뛰어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준비를 잘 해야 마무리도 좋아집니다. 한 해 마무리를 잘 하는 것도 새해 준비를 잘 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Y^^K]: Is the computer only a fast idiot?
[Y^^K]: Is the computer only a fast idiot?
The computer is only a fast idiot; it has no imagination; it cannot originate action. It is, and will remain, only a tool of man.
American Library Association's 1964 statement about the Univac
컴퓨터는 민첩한 바보이다,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도 없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컴퓨터는 단지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미국도서관협회의 Univac[전자계산기 상품명]에 관한 1964년도 성명서
인공지능의 발달은 과연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 없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니 의문을 제기하는게 아니라 틀렸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블레이드 런너에 나오는 사이보그나, 공각기동대에서 처럼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실제로 등장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그러한 기술의 발달을 장밋빛으로 보았지만... 장밋빛이기만 할지는 의문이죠.
옮긴 글입니다.
빠르기만 한 바보라고 생각했던 컴퓨터의 진화. 때로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컴퓨터를 못따라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울한 SF영화처럼 종속되지 않으려면 더많은 따뜻한 생각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The computer is only a fast idiot; it has no imagination; it cannot originate action. It is, and will remain, only a tool of man.
American Library Association's 1964 statement about the Univac
컴퓨터는 민첩한 바보이다,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도 없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컴퓨터는 단지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미국도서관협회의 Univac[전자계산기 상품명]에 관한 1964년도 성명서
인공지능의 발달은 과연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 없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니 의문을 제기하는게 아니라 틀렸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블레이드 런너에 나오는 사이보그나, 공각기동대에서 처럼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실제로 등장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그러한 기술의 발달을 장밋빛으로 보았지만... 장밋빛이기만 할지는 의문이죠.
옮긴 글입니다.
빠르기만 한 바보라고 생각했던 컴퓨터의 진화. 때로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컴퓨터를 못따라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울한 SF영화처럼 종속되지 않으려면 더많은 따뜻한 생각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펄벅 어머니의 위기 탈출의 지혜와 용기
펄벅 어머니의 위기 탈출의 지혜와 용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해 어느 날 밤 사람들은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등의 무기가 될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거리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들은 구석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고 말했는데, 그 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었다.
-솔밭 제공-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1:5)
받은 글입니다.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해 어느 날 밤 사람들은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등의 무기가 될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거리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들은 구석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고 말했는데, 그 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었다.
-솔밭 제공-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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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부의 명언모음
사랑하는 부부의 명언모음
가장 과묵한 남편은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 남편이 너무 조용하면 아내는 사나워진다 / 디즈레일리
가정에서 아내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남편은 밖에서도 굽실거리며 쩔쩔매게 된다 / 워싱턴 어빙
그 얼마나 많은 부부가 결혼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게 되었던가 / 알프레드 카퓨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 토마스 풀러
남자에게 있어 최고의 재산은 마음씨 고운 아내이다 / 에우리피데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 탈무드
남편들이 보통 친구들에게 베푸는 것과 꼭 같은 정도의 예의만을 부인에게 베푼다면 결혼 생활의 파탄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 화브스타인
남편은 격렬한 형의 에로티시즘을 바라고 있지만 아내는 단순히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을 기다린다 권태기의 여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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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과묵한 남편은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 남편이 너무 조용하면 아내는 사나워진다 / 디즈레일리
가정에서 아내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남편은 밖에서도 굽실거리며 쩔쩔매게 된다 / 워싱턴 어빙
그 얼마나 많은 부부가 결혼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게 되었던가 / 알프레드 카퓨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 토마스 풀러
남자에게 있어 최고의 재산은 마음씨 고운 아내이다 / 에우리피데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 탈무드
남편들이 보통 친구들에게 베푸는 것과 꼭 같은 정도의 예의만을 부인에게 베푼다면 결혼 생활의 파탄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 화브스타인
남편은 격렬한 형의 에로티시즘을 바라고 있지만 아내는 단순히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을 기다린다 권태기의 여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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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晉州城)에서 ②
비록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김시민 장군을 중심으로 진주의 민관군은 혼연일체가 되어 비격진천뢰등 무기와 화살을 쏘아 왜군의 공격을 막았고, 백성들은 돌을 던지거나 물을 끼얹어 적을 물리쳤다. 왜적의 공격 5일동안 계속되었으며, 이때마다 진주의 민관군은 철통같은 대응으로 왜적을 물리쳤다.
김시민 장군은 전투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인 10월 9일 전투 지역을 순시하던 중 왜병의 저격에 의해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치료 받다가 며칠 후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주대첩은 왜적의 호남지역 침공을 좌절시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하여 결국은 임란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남강변에 자리한 진주 문화원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의암
촉석루 뒤편 루로 오르는 계단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다
논개사당인 의기사
가을에 열리는 개천예술제 행사시 등축제가 열리는 남강, 황포돛배가 상시로 떠 있다. 두 남녀는 모형임
남강대교인 진주교. 상판 가장자리에 달려있는 것은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것임
진주성안에 자리한 청계서원 후원, 앞쪽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음
서원옆의 잔디위에 내려 앉은 샛노란 은행닢, 남녘이어서 그런지 은행닢이 다 지지 않았다
반대편 강나루에서 바라 본 진주성과 촉석루, 강물은 아직도 강낭콩처럼 맑고 푸르다
받은 글과 사진입니다.
김시민 장군은 전투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인 10월 9일 전투 지역을 순시하던 중 왜병의 저격에 의해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치료 받다가 며칠 후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주대첩은 왜적의 호남지역 침공을 좌절시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하여 결국은 임란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남강변에 자리한 진주 문화원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의암
촉석루 뒤편 루로 오르는 계단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다
논개사당인 의기사
가을에 열리는 개천예술제 행사시 등축제가 열리는 남강, 황포돛배가 상시로 떠 있다. 두 남녀는 모형임
남강대교인 진주교. 상판 가장자리에 달려있는 것은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것임
진주성안에 자리한 청계서원 후원, 앞쪽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음
서원옆의 잔디위에 내려 앉은 샛노란 은행닢, 남녘이어서 그런지 은행닢이 다 지지 않았다
반대편 강나루에서 바라 본 진주성과 촉석루, 강물은 아직도 강낭콩처럼 맑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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