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어느 초원을 누비던 우공(牛公)인가. 제 살과 장기를 모두 내주고 무두질한 수많은 길을 이끌고 내게 찾아온 것들. 그들을 코뚜레에 꿰어 야전으로, 도시의 아스팔트로 끌고 다녔다. 우렁우렁 깊은 눈, 슬픔도 잠시 말뚝에 매어두고 주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려간 것들. 반항은 금물, 복종만이 그들이 살길이었다. 주인에게, 아니, 주인의 또 다른 상전에게 수없이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 최장순, 수필 '신발' 중에서 -
제 몸을 모두 내주고 무두질한 가죽으로 내게 온 신발, 구두. 그처럼 우직한 충신이 있을까요. 코뚜레에 꿰인 채 가는 길을 안내한 우공. 우렁우렁 깊은 눈은 복종만이 최고의 덕목. 낡았거나 유행에 뒤졌다는 이유로 헌신짝 취급한 그것들에게 잠시 미안한 시간입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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