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은 노래한다
조약돌이 웅덩이 속에 박혀 있는 모난 돌멩이에게 말하였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모난 돌멩이에는 잔뜩 푸른 이끼가 끼어 있었다.
“네 구르는 재주가 부럽구나. 나는 애초에 모나게 태어나 이처럼 모진 생을 살아가는구나.”
그러자 졸졸 흐르는 물이 선문선답 같은 소리를 하였다.
“물은 자고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내가 없다면 그대, 조약돌이 어찌 매끄러운 몸매를 간직할 수 있겠는가?”
졸졸 흐르는 물의 말에 조약돌은 심술이 났다. 그래서 모난 돌멩이 옆으로 가서 머리를 푹 박아버렸다.
“물아! 이래도 너 때문에 내가 구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내 의지로 구르는 것이다.”
조약돌의 말에 졸졸 흐르는 물이 쾌활하게 웃었다.
“어디 그럼 이제 다시 네 의지대로 굴러 보거라!”
조약돌은 몸을 움직이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모난 돌멩이의 틈에 끼어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앗! 이거 큰일이네! 어서 넓은 바닷가로 나가야 하는데…….”
“조약돌아! 이 세상에는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단다. 조금 있으면 소나기가 내릴 테니 그때 센 물살에게 부탁해 보렴!”
졸졸 흐르는 물은 조약돌과 모난 돌멩이를 남겨둔 채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얼마 후 정말 소나기가 내렸다. 그러자 산의 깊은 계곡에서부터 센 물살이 무서운 기세로 흘러내려왔다.
“모난 돌멩이야! 우리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으련?”
조약돌이 물었다.
“난 모가 나서 잘 구르지 못한단다.”
모난 돌멩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아냐!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 너도 열심히 구르면 조약돌이 될 수 있다구. 우리 센 물살에게 부탁해 보자!”
조약돌은 센 물살에게 자신들을 넓은 바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센 물살은 모래 속에 깊이 박힌 모난 돌멩이를 뽑아 올려 아래로 떠내려 보냈다. 조약돌도 모난 돌멩이와 함께 센 물살을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댐이 나타났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소나기지만 바짝 말라버린 댐에는 아직 물이 다 차지 않았다. 그래서 조약돌과 모난 돌멩이는 댐에 갇혀 버렸다.
댐 밑바닥은 온통 쓰레기들의 천국이었다. 악취가 진동하였다. 쓰레기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고여 있는 물이 썩어서 녹조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구르지 않는 돌에 이끼가 끼는 것처럼, 고여 있는 물도 이렇게 썩어가는구나? 물아! 너는 항상 깨끗한 척만 하더니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군!”
조약돌이 고여 있는 물을 비난하였다.
“물은 낮은 데로 임한다. 그러나 넘치면 또한 흐르는 것이 물이란다. 물은 웅덩이가 있으면 머물고, 차서 넘치면 흐르는 법이지.”
“너는 썩어가는 주제에 꼭 도통한 사람 같은 말만 하는군!”
조약돌은 고여 있는 물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곧 장마철이 되었다. 댐이 가득 차서 넘치자, 사람들은 강이 범람할 것을 염려하여 댐의 수문을 열어놓았다.
고여 있던 물들이 일제히 힘찬 물살이 되어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이때 힘찬 물살은 갈퀴 같은 손으로 강바닥에 쌓였던 쓰레기며, 모래, 자갈들까지 모두 파 올려 한꺼번에 데리고 떠내려갔다.
장마가 한 번 지고 나자 댐 밑바닥은 아주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힘찬 물살 위에 몸을 실은 조약돌은 신바람이 났다. 모난 돌멩이도 이젠 제법 몸매가 가다듬어져서 데굴데굴 잘도 굴러갔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다다르자 넓은 백사장이 나타났다. 삼각주였다. 같이 쓸려 내려가던 모래와 진흙이 삼각주에 머물면서 조약돌에게 말했다.
“바다까지 잘 가거라! 우린 여기 삼각주에서 기름진 땅이 되어 밀과 보리를 키울 것이다.”
이제 조약돌은, 사람들에게 농사지을 기름진 땅을 만들어주는 것도 흐르는 물이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역시 물은 마음이 너그러워! 모든 것을 베풀기만 하잖아!”
제법 동글동글해진 모난 돌멩이가 말했다. 아니, 이제 조약돌이라고 해야 옳았다.
이들 조약돌 형제는 곧 넓은 바다로 나왔다. 밀물이 들어오자 조약돌들은 바닷가로 쓸려갔다. 그 바닷가에는 검은 조약돌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았다.
조약돌 형제는 다른 조약돌들과 한 식구가 되어 밤낮으로 밀물과 썰물이 질 때마다 노래를 하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구르는 돌은 썩지 않는다!”
이러한 조약돌들의 노래 소리들 들으며,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밤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사람들은 조약돌 구르는 소리를 마치 자명종 소리로 여기며 깨어나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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