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르시시즘

또 다른 나르시시즘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들이 호숫가에 왔어요.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지요.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요정들이 묻자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어요.

'가장 가까이서 그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테니 그럴 수 있겠네요.'

요정들이 말하자 가만히 듣던 호수가 물었지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아니 그대만큼 그를 잘 아는 이가 어디 있어요?' 요정들이 반문하자 호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요.

'그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그가 제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릴 때 그의 눈 속에 비친 나를 봤지요. 그가 죽었으니 이제 그럴 수 없잖아요.'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과 다르지요?

나르키소스는 매일 호수에 자신을 비춰보며 아름다움에 도취되었고, 결국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호수에 빠져 죽어요. 그가 죽은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그 꽃을 수선화(나르키소스)라 불렀지요.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입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만, 타인에게 비친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해요. 그러나 나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지요. 나에 대한 단점내지는 부정적인 견해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이는 좀 더 익은 사람이겠죠?

- 최선옥 시인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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