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채로 도착한 바위

앉은 채로 도착한 바위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반칠환, '새해 첫 기적' -


호들갑을 떨며 유쾌하게 새해를 맞는 이도 있고 덤덤하게 한 해 계획을 짜는 이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새로운 1년. 자기 방식대로 잘 꾸려가 보아야겠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준비된 인생길을 걷자

준비된 인생길을 걷자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이 가기 전에 근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목표를 위한 길, 뜻을 펼칠 준비가 되었습니까?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십시오.
그 길 구간 구간에 대한 기한을 정하십시오.
준비된 인생길을 걸읍시다.

- 보리스 폰슈메르체크의《지금이라도 네 삶을 흔들어라》에서-


치밀한 준비를 해도 쉽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하물며 아무런 준비없이 세상에 뛰어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준비를 잘 해야 마무리도 좋아집니다. 한 해 마무리를 잘 하는 것도 새해 준비를 잘 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Y^^K]: Is the computer only a fast idiot?

[Y^^K]: Is the computer only a fast idiot?

The computer is only a fast idiot; it has no imagination; it cannot originate action. It is, and will remain, only a tool of man.

American Library Association's 1964 statement about the Univac


컴퓨터는 민첩한 바보이다,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도 없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컴퓨터는 단지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미국도서관협회의 Univac[전자계산기 상품명]에 관한 1964년도 성명서


인공지능의 발달은 과연 상상력도 없고, 스스로 행동할 수 없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니 의문을 제기하는게 아니라 틀렸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블레이드 런너에 나오는 사이보그나, 공각기동대에서 처럼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실제로 등장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그러한 기술의 발달을 장밋빛으로 보았지만... 장밋빛이기만 할지는 의문이죠.


옮긴 글입니다.

빠르기만 한 바보라고 생각했던 컴퓨터의 진화. 때로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컴퓨터를 못따라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울한 SF영화처럼 종속되지 않으려면 더많은 따뜻한 생각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펄벅 어머니의 위기 탈출의 지혜와 용기

펄벅 어머니의 위기 탈출의 지혜와 용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해 어느 날 밤 사람들은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등의 무기가 될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거리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열린 대문을 통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들은 구석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고 말했는데, 그 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었다.

-솔밭 제공-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1:5)


받은 글입니다.

사랑하는 부부의 명언모음

사랑하는 부부의 명언모음


가장 과묵한 남편은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 남편이 너무 조용하면 아내는 사나워진다 / 디즈레일리

가정에서 아내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남편은 밖에서도 굽실거리며 쩔쩔매게 된다 / 워싱턴 어빙

그 얼마나 많은 부부가 결혼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게 되었던가 / 알프레드 카퓨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 또는 최악의 재산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 토마스 풀러

남자에게 있어 최고의 재산은 마음씨 고운 아내이다 / 에우리피데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 / 탈무드

남편들이 보통 친구들에게 베푸는 것과 꼭 같은 정도의 예의만을 부인에게 베푼다면 결혼 생활의 파탄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 화브스타인

남편은 격렬한 형의 에로티시즘을 바라고 있지만 아내는 단순히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을 기다린다 권태기의 여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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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晉州城)에서 ②

비록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김시민 장군을 중심으로 진주의 민관군은 혼연일체가 되어 비격진천뢰등 무기와 화살을 쏘아 왜군의 공격을 막았고, 백성들은 돌을 던지거나 물을 끼얹어 적을 물리쳤다. 왜적의 공격 5일동안 계속되었으며, 이때마다 진주의 민관군은 철통같은 대응으로 왜적을 물리쳤다.


김시민 장군은 전투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인 10월 9일 전투 지역을 순시하던 중 왜병의 저격에 의해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치료 받다가 며칠 후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주대첩은 왜적의 호남지역 침공을 좌절시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기여하여 결국은 임란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남강변에 자리한 진주 문화원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의암


촉석루 뒤편 루로 오르는 계단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다


논개사당인 의기사


가을에 열리는 개천예술제 행사시 등축제가 열리는 남강, 황포돛배가 상시로 떠 있다. 두 남녀는 모형임


남강대교인 진주교. 상판 가장자리에 달려있는 것은 논개의 가락지를 형상화한것임


진주성안에 자리한 청계서원 후원, 앞쪽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음


서원옆의 잔디위에 내려 앉은 샛노란 은행닢, 남녘이어서 그런지 은행닢이 다 지지 않았다


반대편 강나루에서 바라 본 진주성과 촉석루, 강물은 아직도 강낭콩처럼 맑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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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晉州城)에서 ①

진주성(晉州城)에서

지난 일요일에 동창 자녀의 결혼식 참석차 진주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렀는지라 진주에 도착하니 오전 열한시경이었는데 예식시간까지는 두시간 넘게 여유가 있어서 진주성을 답사하기로 했다.

진주에 들리면 꼭 가보는, 촉석루가 자리하고 있는 진주성은 수도없이 가 보았지만 진주시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서 쉽게 들릴 수 있으므로 또 가게된다.

晉州城하면 보통 촉석루와 논개(論介)를 떠 올리지만 사실은 임진왜란때 왜적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진주대첩'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진주성의 본 모습임을 알아야 할것 같다.


김시민 장군과 진주성

사적 제118호인 진주성은 진주의 상징이다. 둘레 1,320미터인 이 성에는 진주의 역사와 긍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최초로 대대적 승리를 거둔 곳이 바로 이곳 진주성이다. 그리고 그 주역이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었다. 이때 왜적을 크게 물리친 진주성 대첩은 충무공의 한산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이라고 한다. ‘대첩(大捷)’은 크게 이긴 전투를 일컫는 것이다.


청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이루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느낌이 없지 않다. 진주의 긍지를 태동시킨 진주성 대첩의 주역들이 ‘의기 논개’의 명성에 밀려 흔적조차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실 진주성 입구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논개 시비’이다. 또 진주 성문을 지나 곧장 촉석루에 들어서도 의기사, 의암 등 역시 논개 흔적뿐이다. 이러다 보니 진주성을 찾은 사람들은 논개만 보고 돌아간다. 그리고 진주성 하면 너나없이 ‘촉석루’ ‘논개’만을 떠올린다.


한산도에 가서 이충무공을 생각하지 않고, 행주산성에 가서 권율 장군을 떠올리지 않고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진주에 와서는 김시민 장군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91년 진주판관으로 부임하고 부터이다. 부임한 지 1년 후 1592년(선조25년) 4월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진주목사 이경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초유사김성일의 명에 따라 진주목사 대행에 임명된 장군은 병기를 수리하고 성지를 구축하는 한편 수성군을 모집하여 진주성을 사수하고자 했다. 장군은 모집된 수성군에게 맹훈련을 시키고 병기와 자재를 정비하고 양곡을 비치하였다. 진주성은 지리적으로 호남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만약 이곳이 무너지면 왜적은 바로 호남 지역을휩쓸게 되는 상항이었다.


또한 장군은 의병장 김면의 요청에 따라 거창으로 나가 왜적을 크게무찔러 이 공로로 1592년 7월 26일 진주목사에 정식으로 임명되었다. 9월에는 진해에서 왜군장수 평소태를 생포하여 의주의 조정에 보내 경상우병사에 임명되었으며, 고성, 창원까지 진격하여 왜적을 무찌르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이때 왜적은 김해, 고성, 창원 등 경상도 남부지역에서 연패하자 경상우도의 조선군 주력부대가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다고 판단,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를 함락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왜적은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등원랑, 평조신 등을 주축으로 부산, 동래, 김해지역에 포진하고 있던 정예병 3만여명을 동원하여 1592년 10월 5일 진주성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


진주성에는 김시민 목사가 거느린 군사 3,700명과 곤양군수 이광악의 100명 등 도합 3,800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정예병이라기 보다는 새로 모집한 장정들이었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은 진주성민들의 필사적인 단결과 곽재우•최강•이달 등 각처 의병들의 열렬한 성원에 고무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진주성을 사수키로 결심한 후 화살하나 탄환 한발이라도 낭비하지 말 것을 지시하는 등 만반의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10월 5일 아침부터 왜군은 신식무기인 조총을 주무기로 3개 부대로 나누어 공격을 감행하였다. 김시민 장군은 적군의 화력을 최대한 소모시키고자 일정한 거리에 올 때까지 대적하지 않고 성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위장하는 한편, 직접 성내를 순회하면서 임전태세를 점검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자신도 병사와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솔선수범 하였다. 이같은 장군의 헌신적 노력에 감복한 군사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무릎쓰고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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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感謝일기

'오프라 윈프리'의 感謝일기

하루에 다섯가지 感謝 제목을 기록..
인생의 방향 깨닫게 해준 에너지...

지독하게 가난한 미혼모에게 태어나 어머니의 품이 아닌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였고,
14세에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 아이는 태어난지 2주만에 죽었고,
그 충격에 가출하여 마약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으며,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없는 107kg의 몸매를 가졌던 여인....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눈부신 존재로 우뚝 섰다.
전 세계의 1억 4000만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영화배우로, 자산 6억$의 부자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인생에서 가장 얻고싶다는 인기, 존경, 돈을 모두 가진 여성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중에 한 사람인 그녀,
하지만 밥먹는 일 외에 그녀가 하루도 빼먹지 않은 일이 있다.
날마다 감사의 일기를 쓰는 일이다.
그녀는 하루동안 일어난 일중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 기록한다.
감사의 내용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이다.

-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점심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감사의 일기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둘째는 삶의 촛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감사의 습관은 오늘의 오프라 윈프리를 만든 에너지가 된 셈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어느 주부의 감동글

어느 주부의 감동글

안녕하세요? 33살 먹은 주부에요..
32살때 시집와서 남편이랑 분가해서 살았구요
남편이 어머님 돌아가시고 혼자계신
아버님 모시자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느누가 좋다고 할수있겠어요..
그일로 남편이랑 많이 싸웠어요..
위에 형님도 있으신데 왜 우리가 모시냐고..
아주버님이 대기업 다니셔서 형편이 정말 좋아요...

그일로 남편과 싸우고 볶고 거의 매일을 싸웠어요..
하루는 남편이 술먹고 울면서 말을 하더군요...
뭐든 다른거는 하자는 대로 다 할테니까
제발 이번만은 부탁좀 들어 달라구..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남편이 어릴적 엄청 개구쟁이였데요..
매일 사고 치고 다니고 해서 아버님께서
매번 뒷 수습하로 다니셨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어릴때 골목에서 놀고 있는데
지나 가던 트럭에 (큰트럭 말고 중간크기트럭)받힐뻔
한걸 아버님이 보시고 남편 대신 부딪히셨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도 오른쪽 어깨를 잘못 쓰신데요..
그리고 아버님 하시던 일이 노가다 였는데
남편이 군 제대 하고도 26살때쯤 까지 놀고 먹었더랍니다..

아버님이 남편을 늦게 낳으셔서
지금 아버님 연세가 68세되세요..
남편은 33살이구요..
60세 넘으셨을 때도 노가다 (막노동) 하시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고생만 하셨다네요...

노가다를 오래 하면 시멘트 독이라고 하나...
하여튼 그거 때문에 손도 쩍쩍 갈라 지셔서
겨울만 되면 많이 아파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평생 모아 오신 재산으로 마련하셨던
조그만한 집도 아주버님이랑 남편 결혼 할때
집 장만 해 주신다고 팔으시고
지금 전세 사신다고 하구요...

그런데 어머님 까지 돌아 가시고 혼자 계신거 보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자주 난다고 하더라구요...
저희요...전 살림하고 남편 혼자 버는데
한달에 150정도 벌어 와요..

근데 그걸로 아버님 오시면 아무래도
반찬도 신경써야 하고 여러가지로 힘들거 같더라구요..
그때 임신도 해서 애가 3개월인데...
형님은 절대 못 모신다고 못 박으셨고
아주버님도 그럴 생각이 없다라고
남편이 말을 하더라구요..

어떡 합니까...저렇게 까지 남편이 말 하는데...
그래서 넉달전 부터 모시기로 하고
아버님 모셔 왔습니다..

첨에 아버님 오지 않으시려고
자꾸 거절 하시 더라구요..
늙은이 가 봐야 짐만 되고 눈치 보인 다면서요..

남편이 우겨서 모셔 왔습니다..
모셔온 첫날부터
여러 모로 정말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버님...
매번 반찬 신경써서 정성껏 차려 드리면...

그걸 드시면서도 엄청 미안해 하십니다...
가끔씩 고기반찬이나 맛있는 거 해 드리면
안 먹고 두셨다가 남편 오면 먹이더라구요...
그리고 저 먹으라고 일부로 드시지도 않구요..

거기다가 하루는 장보고 집에 왔는데
걸레질을 하고 있으신거 보고 놀라서
걸레 뺐으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다 청소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식사 하시면 바로 들고
가셔서 설겆이도 하십니다...

아버님께 하지 말라고 몇번 말씀 드리고
뺏어도 보지만 그게 편하시답니다...아버님은...
제가 왜 모르겠어요...
이못난 며느리 눈치 보이시니
그렇게 행동하시는거 압니다...저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남편이 몰래 아버님 용돈을 드려도
그거 안 쓰고 모아 두었다가
제 용돈하라고 주십니다...

어제는 정말 슬퍼서 펑펑 울었어요...
아버님께 죄인이라도 된듯해서 눈물이
왈칵 나오는데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한달전 쯤 부터 아버님께서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때 쯤 들어 오시더라구요..

어디 놀러라도 가시는 거 같아서
용돈을 드려도 받으시지도 않고 웃으면서
다녀 올게 하시면서 매일 나가셨습니다..

어제 아래층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오다가 이집 할아버지 봤는데
유모차에 박스 실어서 가던데~ "

이말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네..그래요..
아버님 아들집에 살면서 돈 한푼
못버시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불편한 몸 이끌고 하루 하루
그렇게 박스 주우 시면서 돈 버셨더라구요..
그 이야기 듣고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아버님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 다녀도
안 보이시더라구요...
너무 죄송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상황 말하니
남편도 아무 말이 없더군요..
저녁 5시조금 넘어서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 왔어요..

남편도 마음이 정말 안 좋은지
아버님 찾으로 나간다고 하곤 바로 나갔어요...
제가 바보였어요...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몇일 전 부터 아버님께서 저 먹으라고
봉지에 들려 주시던 과일과 과자들이
아버님께서 어떻게 일해서 사 오신 것인지를...
못난 며느리 눈치 안 보셔도 되는데
그게 불편 하셨던지 아들집 오셔서도
편하게 못 지내 시고 눈치만 보시 다가
불편하신 몸 이끌고 그렇게 일하고 있으셨다니...

친정에 우리 아빠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 가셨는데...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나고 해서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우리 아빠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 가셨는데...
그날 따라 아버님 웃으실때 얼굴에
많은 주름과 손목에서
갈라진 피부가 자꾸 생각나면서
너무 죄송해서 남편이 아버님이랑
들어올때까지 엉엉 울고있었습니다..

남편나가고 한시간 좀 넘어서
남편이 아버님이랑 들어 오더라구요...
아버님 오시면서도 제 눈치 보시면서
뒤에 끌고 오던 유모차를 숨기시는 모습이
왜 그리 마음이 아플까요...
오히려 죄송해야 할건 저인데요...

왜 그렇게 아버님의 그런 모습이
가슴에 남아서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달려 가서 아버님께 죄송 하다며
손 꼭잡고 또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매일 나 때문에
내가 미안 하다면서
제 얼굴을 보면서 말씀 하시는 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아버님 손 첨 만져 봤지만요...

심하게 갈라지신 손등과 굳은살 베인
손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방안에 모시고 가서도 죄송하다며
그렇게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님 식사 챙겨 드리려고 부엌에 와서도
눈물이 왜그리 그치지 않던지...
남편이 아버님께 그런일 하지 말라고..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니까

그런일 하지 말라고 아버님께 확답을 받아 낸후
세명 모여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먹는 데도 아버님 손을 보면서
자꾸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오늘 남편이 노는 날이라
아버님 모시고 시내 나가서
날이 좀 쌀쌀 해져서
아버님 잠바 하나랑 신발을 샀습니다..

한사코 괜찮다고 하시던 아버님께
제가 말씀 드렸어요..
"자꾸 그러시면
제가 아버님 눈치 보여서 힘 들어요!!"
이렇게 말씀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시며서 받으시더라구요..

그리고 집에 아버님 심심 하실 까봐
케이블TV도 신청 했구요...
아버님께서 스포츠를 좋아 하시는 데
오늘 야구방송이랑 낚시 방송 보시면서
너무 즐거워 하시더라구요...

조용히 다가가서 아버님
어깨를 만져 드리는데...
보기 보다 정말 왜소 하시더라구요...
제가 꽉 잡아도 부서 질것만 같은
그런 아버님의 어깨...

지금까지 고생만 하시고..
자식들 뒷 바라지 하시느라
평생 헌신 하시며서 살아 오셨던
아버님의 그런 자취들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또 아팠네요..

남편한테 말했어요..
저 평생 아버님 정말 친아버지
처럼 생각하고 모신 다구요...
비록 지금은 아버님께서 불편해 하시지만..

언젠가는 친딸 처럼 생각 하시면서
대해 주실 때까지 정말 잘 할거라구요..
마지막으로 아버님...
저 눈치 안 보셔도 되요...
제가 그렇게 나쁜 며느리 아니 잖아요 ㅠㅠ

아버님의 힘드신 희생이 없으셨다면
지금의 남편도 없잖아요..
그랬다면 지금의 저와 뱃속의
사랑스러운 손자도 없을거에요..

저 아버님 싫어 하지 않고 정말 사랑해요 아버님...
그러니 항상 건강 하시고 오래 오래 사셔야 되요..
그리고 두번 다시 그렇게 일 안 하셔 도되요...
저 허리띠 쫄라 매고
알뜰하게 살께요...

사랑해요 아버님 ...........


받은 글입니다.

마음 놓고 살아본 적 있어요?

"마음 놓고 살아본 적 있어요?"

"며칠,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걱정 없이, 몸 안에 티끌만한 긴장도 없이, 정말로 마음 푹 놓고 지내본 적이 있냐구요!"

노는 동안에도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걱정에 더 치열하게 놀았다.
잠을 잘 때에도 내일 아침엔 말짱해져야 하기 때문에
비장하게 램 수면에 빠져 들었다.
'마음 놓고 살아보기' 너무나
탐나는 물건 아닌가!

- 곽세라의《인생에 대한 예의》중에서 -


'주말'이라는 달콤한 시간속에도 항상 월요일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느라 마음껏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늘 마음 졸이며 긴장하고 살았던 나의 몸과 마음, 주말, 휴식시간만이라도 우리 마음놓고 조금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받은 글입니다.

카프리의 하얀 절벽을 배경으로 한 절경을 뒤로하고 ⑤



얼굴색도 모두 구릿빛 남부의 강한 햇살을 닮은듯~ 자유로운 그들의 삶처럼... 예쁜항구도시 소렌토에서




기차는 아니고 경전철 같은걸 타고 소렌토에서 나폴리까지 오는데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데 더위에 지친 나는 전철이 폼베이를 지나는 데도 무력하게 지나쳤다. 바다가 계속 보이고 오렌지 나무들과 포도나무들이 보이고 멀리 산 위에는 올리브나무도 보이는데.내눈에는 아무것두 들어오지않는다


나폴리역에 도착하니 에어컨이 있는 로마발 유로스타가 우릴 구해준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쏘렌토로 - 파파로티


받은 글과 사진입니다.

인생의 주춧돌

인생의 주춧돌

축구선수 박지성은
발과 생각의 훈련을 같이 했기 때문에
항상 공보다도 먼저 자리를 잡고
공을 기다리는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공의 흐름을 읽고
항상 공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으로
지능적인 플레이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 이철한의《생각의 선택》중에서 -


축구는 물론 씨름과 같은 몸으로 하는 운동도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사실은 '두뇌 게임'이라고 합니다. 운동뿐 아니라 삶의 핵심도 두뇌, 곧 '생각'에 있습니다. 오늘 나의 생각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춧돌이 됩니다.


받은 글입니다.

카프리의 하얀 절벽을 배경으로 한 절경을 뒤로하고 ④






이곳이 유명한 것은 그 아름다운 풍광도 풍광이지만 뭐니뭐니해도 그 유명한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 (Torna a Sorriento)"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소리엔토"라고 부르는 소렌토입니다.



소렌토는 절벽 위에 도시가 있다. 그 절벽 어디쯤 서서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래를 불렀을까요? 항구에서 시내로 가는 좁은 길이 참 예쁘고. 시내길은 좁고 복잡한 편이다.


쏘렌토를 그냥 지나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받은 사진입니다.

카프리의 하얀 절벽을 배경으로 한 절경을 뒤로하고 ③

쏘렌토는 고급스런 휴양지가 아니었지만 이상스레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소렌토의 항구. 깎아지른듯 서있는 절벽과 그 위의 마을이 묘한 느낌을 준다.


소렌토 항구에 도착~ 오솔레미오가 어디선가 들릴듯한 작은 항구도시 소렌토... 조용하고, 바람이 잔잔한 소렌토는 이태리 남부도시는 소박한 정취가 풍겨난다.



받은 글과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니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네요.

카프리의 하얀 절벽을 배경으로 한 절경을 뒤로하고 ②


"돌아오라 쏘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로 유명한 쏘렌토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항구에서 바라본 절벽과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한 것이 방어의 목적이었다고 친다면 굳이 길까지 절벽을 깎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소렌토의 항구. 깎아지른듯 서있는 절벽과 그 위의 마을이 묘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