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받은 사진입니다.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누군가는 말했죠. 봄과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짧기 때문이라고. 짧게 지나치는 계절.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눈과 마음에라도 담아두실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이클 조던이 부상을 안 입는 이유

마이클 조던이 부상을 안 입는 이유

인생이란 두려움으로 대하거나 방어적으로 다루면 아주 위험해질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은 자신이 부상을 잘 입지않는 이유는, 절대로 속도를 줄여서 경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인생은 전속력으로 부딪치는 사람에게만 아름다운 보상을 해준다. 전속력으로 부딪치며 사는 것이 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안전하다.

- 로저 로젠블라트의《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중에서 -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더라도 전속력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일입니다. 그러면 하늘도 돕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현재 상황이나 환경은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생각의 결과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현 상태를 바라보면서 "이게 나야"라고 말한다. 그건 당신이 아니다. 그건 과거의 당신이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현재 돈이 얼마 없거나, 원하는 배우자가 곁에 없거나, 원하는 만큼 건강하지 않다고 해보자. 그건 당신이 아니라, 과거의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 론다 번의《시크릿(The Secret)》중에서 -


이 이야기는, 지금의 생각과 행동이 미래의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는 마라톤의 반환점처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순간이 바로 터닝 포인트입니다. 생각과 행동을 바꾸면 그로부터 삶이 바뀌고 미래가 바뀝니다.


받은 글입니다.

정직의 힘

정직의 힘

미국에서 세탁소로 성공한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교사를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이민을 가서 마땅하게 할 일이 없어서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교사로 근무하던 한국 생활에 비해 세탁소 운영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는데 하루는 세탁물 주머니 속에서 2700$ 이라는 거금이 나왔다.

세탁소 주인은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시험이라."고 생각을 하고 돈을 따로 보관을 했다가 세탁물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같이 건네면서 "이런 것으로 나를 시험하려 하시면 되겠습니까?" 라고 농담을 하면서 세탁물과 함께 현금을 돌려주었다.

세탁물을 맡낀 부인은 "그러지 않아도 돈을 어디다 두었는지 찾다 찾다 못찾고 실망하고 있던 참이다" 라고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남기고 세탁물을 찾아가지고 갔다.

얼마 후 이 부인은 세탁소를 다시 찾아 와 "내가 세탁 공장을 운영하려 하는데 운영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 고
제안을 하였다.

2700 $ 을 세탁물 주머니 속에 넣고 맡긴 그 부인은 미국 유수의 항공사 부사장의 부인이었다. 세탁소 주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탁소를 열어 정직한 세탁소 주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들은 뒤 그 정직한 세탁소 주인은 세탁소 운영을 맡기로 하여 17 명의 직원을 고용한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 하였고 현재는 700 여명의 직원을 고용한 대형 세탁소 사장이 되었다.

- 생명의 삶 - 두란노 중에서-


받은 글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의 글 처럼 어떤 물질적인 댓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받았던 것은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기쁨을 같이 하고픈 사람들

기쁨을 같이 하고픈 사람들

오늘하루
당신이 계신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내면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먼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단 하나의 걸작품임을
스스로에게 일깨우세요.

그러면 마음이 여유러워 지고
얼굴에 자신감으로 인한
미소가 피어날 것입니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정다운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가슴을 열고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세요.

분명 마음이 닫혀 있던 사람들이
당신에게 호감 어린 시선과
뭔가 기대에 찬 얼굴로 마주설 것입니다.

이제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 보세요
상대의 단점 보다는 장점을 발견해
부드러운 칭찬을 해 보세요.

가능하면
당신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말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상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리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시간이 되신다면 따뜻한
차 한찬 나누면서
마음속 사랑담아 축복해 보세요.

어려울 것 같지만
우리가 인상 찌푸리고 푸념하는
시간이면 충분하답니다.

내가 밝고 주위가 밝아져야
근심이 없어집니다.

당장은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긴답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언어는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열어 줄 거예요.

이제 제가 당신께 고백드릴 차례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둘도 아닌 단 하나의 걸작이십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받은 글입니다.

아~! 세종대왕님

아~! 세종대왕님

중국인이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을 본다. 3만개가 넘는다는 한자를 어떻게 좁은 자판에서 칠까? 한자를 자판에 나열하는게 불가능해 중국어 발음을 먼저 영어로 묘사(한어병음)해 알파벳으로 입력한다음에 단어 마다 입력 키를 눌러야 화면에서 한자로 바뀐다.

불편한 건 더 있다. 같은 병음을 가진 글자가 20개 정도는 보통이다. 그 중에서 맞는 한자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중국을 앞선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타이핑을 많이 하는 전문직 중국인들은 한자의 획과 부수를 나열한 또 다른 자판을 이용한다. 자판을 최대 다섯번 눌러 글자 하나가 구성되므로 오필자형(五筆字型)이라고 한다. 속도가 빠르지만 익히기 어려워 일반인은 못한다.

일본인은 어떨까. 컴퓨터 자판을 보니 역시 알파벳이다. 일본인들은 '世'를 영어식 발음인 'se'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법을 쓴다. 각 단어가 영어 발음 표기에 맞게 입력돼야 화면에서 가나로 바뀐다. 게다가 문장마다 한자가 있어 쉼없이 한자 변환을 해줘야 하므로 속도가 더디다.

나아가 '추'로 발음되는 한자만 해도 '中'을 비롯해 20개 이상이니 골라줘야 한다. 일본어는 102개의 가나를 자판에 올려 가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워 이용도가 낮다.

이러니 인터넷 친화도가 한국보다 낮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

말레이시아처럼 언어가 여러 가지인 국가들은 컴퓨터 입력방식 개발부터 골칫덩어리다.


24개의 자음• 모음만으로 자판 내에서 모든 문자 입력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한글은 하늘의 축복이자 과학이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문장을 중국, 일본문자는 35초 걸린다는 비교가 있다.

한글의 입력 속도가 일곱배 정도 빠르다는 얘기다.

정보통신(IT)시대에 큰 경쟁력이다.

한국인의 부지런하고 급한 성격과 승부근성에, 한글이 '디지털 문자'로서 세계 정상의 경쟁력이 있는 덕에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글로 된 인터넷 문자 정보의 양은 세계 몇 번째는 된다.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한글날.

세종이 수백년 뒤를 내다본 정보통신대왕이 아니었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26개인 알파벳은 한글과 같은 소리문자이고 조합도 쉽지만 'a'라도 위치에 따라 발음이 다르고 나라별로 독음이 다른 단점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만 갖는다. 어휘 조합능력도 가장 다양하다. 소리 표현만도 8800여개여서 중국어의 400여개,일본어의 300여개와 비교가 안 된다.

세계적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어서 세계 문자 중 으뜸이라고 말한다. '알파벳의 꿈'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거의 0%인 세계 최저의 문맹률이 가능했고 이게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까지 반영한 음성 공학적 문자여서 세계의 언어를 다 표현해낸다.

맥도널드를 중국은 '마이딩로우', 일본은 '마쿠도나르도'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이것이 네팔 등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로 문자를 만들어 주는 운동이 추진되는 이유다.

외국인에게 5분만 설명하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할 수 있다.

한글은 기계적 친화력도 가장 좋아 정보통신 시대의 준비된 문자다. 세계화의 잠재력이 적지 않다.

아~~! 세종 IT 대왕님 !!!


받은 글입니다.

자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 언어라며 한글마저 자국 언어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한글 공정.

그렇지만 한글 협회는 계파에 따라 나뉘고, 연구기관과 산업현장은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표준화를 미루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가 사랑하자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가 사랑하자

혀가 입천장에 차지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짜장면보다는 입을 얌전하게 옆으로 늘리며 자장면이라고 발음해야 했다. 먹을거리냐 먹거리냐 논란 속에서도 먹거리라 쓰면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국립국어원은 국민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 대접을 받지 못한 '짜장면'과 '먹거리'를 비롯한 39개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이를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했다. 하긴 일상에서 워낙 많이 쓰는 말들이어서 새롭게 표준어가 되었다는 것에 놀라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표준어로 일상의 단어가 추가되는 것을 보면서 광화문 한복판에 계신 세종대왕님처럼 우리글과 말도 보다 일상으로 파고든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여전히 거북한 말들이 난무하는 것을 겪고 들으면서 이건 아니지, 싶기도 하다.
이럴 때 방송이 바른 말 쓰기에 앞장선다면 좋으련만 요즘 방송이 먼저 유행을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최선옥 시인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내일이면 한글날. 그 의미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웃음을 웃는 건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다.

눈물을 흘리는 건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참 모습을 들킬 위험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건
그것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희망을 갖는다는 건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니까...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움에 갇힌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자유는 갇힌 자유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좋은글 중에서-


받은 글입니다.

가족의 힘

가족의 힘

고맙고도 고마운 나의 사랑
너는 나의 삶을 계속해서 흔든다.
이 순간과 즐거움에 감사한다.
내 삶에 네가 들어온 것에 대해.

- 켈리 클라손 -


어느 순간 내 삶에 들어와 나와 함께 하는 고마운 사람들. 가족이 그런 사람들이겠지요. 가깝다는 이유로 때로 투정하고 함부로 대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있어 든든하고 따사롭습니다.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Steve Jobs Speech at Stanford Graduation

Steve Jobs Speech at Stanford Graduation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들 중 한 곳인 이 곳을 졸업하는 여러분과 오늘 함께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번이 제게는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 보는 것입니다. 오늘 전 여러분에게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뿐 입니다. 대단한 게 아니죠. 단지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점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을 6개월 만에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대학을 그만 두기 전에 약 18개월 정도를 청강생으로 있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모든 것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결혼하지 않은 대학원생이었는데, 그녀는 저를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대학을 졸업한 부모에게 입양되기를 매우 강력하게 희망했고, 그래서 제가 태어나면 한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죠. 하지만 제가 세상에 튀어나왔을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여자 아이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결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전화로 '우리가 예상치 않았던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혹시 이 아이를 원하는가?'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 부모님은 '물론이죠!'라고 하셨다지요. 저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제 어머니가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제 아버진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최종 입양 서류에 사인하길 거부하셨지요. 그녀는 제 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내겠노라고 약속한 몇 달 후에서야 비로소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답니다.

그리고 17년 후 저는 정말 대학엘 갔습니다. 하지만 전 순진하게도 거의 스탠포드 대학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제 노동자계급의 부모님이 모은 저축 모두가 저의 학비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전 대학에서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제가 그것을 펼쳐가는데 대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는 부모님들이 평생 일해서 모은 돈을 써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기로 했지요. 그 당시 그것은 무척 겁나는 일이었지만 뒤 돌아 보면 그 결정은 제가 이제껏 제 인생에서 내린 결정들 중 가장 잘 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대학을 그만두자 제가 흥미 없어 하던 필수 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고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전 기숙사 방도 없어서 친구들의 방에 끼어 바닥에서 잤습니다. 그리고 콜라 병을 수집해서 병당 5 센트씩 환불 받아 먹을 것을 마련했습니다. 일요일 저녁마다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10킬로미터)을 걸어서 하리 크리슈나 사원에 가서 일주일에 한번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전 이걸 정말 좋아했어요. 이렇게 제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써 우연히 마주치게 된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을 매길 수 없을 큼 귀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리드 대학은 그 당시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로 습자법을 잘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교내에 있는 모든 포스터나 모든 서랍의 색인은 아름답게 수작업으로 쓰여져 있었답니다. 전 대학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일반 과목들은 들을 필요가 없었지만 이 것을 어떻게 하는 건 지 배워보려고 습자법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지요. 저는 활자체에 장식선을 붙이는 방법, 서로 다른 글자들의 조합에서 간격을 조절하는 법, 그리고 무엇이 멋진 글자들을 정말로 멋지게 하는 지에 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미묘해서 과학이 잡아낼 수 없는 방식의 것이었고 전 이게 아주 매혹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 중 그 어떤 것도 제 인생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란 희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십 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있었을 때, 그 모든 것이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맥 속에다 그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지요. 그것은 멋진 활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죠.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다양한 서체도 결코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진 폰트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즈는 맥의 복사품이니 컴퓨터에서 이런 것들이 없었을 수도 있겠죠. 제가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다면 전 습자법을 청강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컴퓨터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멋진 글자체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학시절에 점들을 미래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을 되돌아 보면 이건 매우 분명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점을 미래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과거로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믿어야 합니다. 점들은 미래로 어떻게든 연결 된다는 것을 말이죠.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심지, 운명, 인생, 전생 그 무엇이든지요. 이런 접근법을 이용해서 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었죠.

제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패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전 운이 좋았답니다.- 인생 초반기에 제가 사랑하는 일을 찾았으니까요. 워즈와 저는 제가 스무 살 되던 때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답니다. 우린 열심히 일했고 차고에서 둘이 하던 애플은 10년 내에 4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20억달러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최대의 역작인 맥킨토시를 일년 전에 출시했고 저는 30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전 해고 당했어요. 어떻게 제가 창업한 회사에서 제가 해고 당하죠? 애플이 성장하자 우린 저와 함께 회사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고용했어요. 그리고 처음 얼마간은 회사도 잘 됐지요. 그러나 곧 우리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젼은 멀어져만 갔고 결국은 분쟁이 일어났어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죠. 그래서 서른 살에 저는 쫓겨났어요. 아주 공개적으로 쫓겨났어요. 성인이 된 후 제가 집중하던 일은 사라져버렸고 전 참담했답니다.

몇 달 동안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제 느낌엔 제가 이전 세대의 기업가를 망하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았어요.- 제게 넘겨준 바톤을 떨어트렸던 거죠. 전 데이빗 팩커드(HP 창업자)도 만나고 밥 노이스(인텔 창업자)도 만났고 사업을 망친 일을 사과하려 했어요. 전 아주 널리 알려진 실패자여서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려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제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전 아직도 제가 한 일을 사랑하고 있었죠. 애플에서 일어난 사건이 절 조금도 바꾸지 못했어요. 전 거부당했지만 아직도 사랑했던 거죠.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애플로부터 해고당한 것은 제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을 하고 있다는 무거운 부담은 초심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죠. 이런 상황이 절 자유롭게 해 주어서 제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맞게 됩니다.

그 후 오년동안 넥스트와 픽사를 창업하고 제 아내가 된 멋진 여자와 사랑하게 됩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창조하게 되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됐습니다. 더 기가막힌 결말은 애플이 넥스트를 샀고 전 애플로 복귀했고, 넥스트에서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최근 성공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전 멋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확언하건데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약의 맛은 지독했지만 제 생각엔 이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었죠. 가끔 인생이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을 잃지는 마십시오. 확언하지만 제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은 제가 하고있는 일을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는 것을 찾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일도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일은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요. 진정으로 만족하는 방법은 멋진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멋진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가슴으로 느껴지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것을 발견하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멋진 관계가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 찾을 때까지 계속 살펴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제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겁니다.

제가 열 일곱 살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었는데 '만약 매일같이 이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어느날엔 가는 네가 확실히 맞는 날이 있을 것이다.' 전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 후 삼십 삼 년간 매일아침 거울을 바라다보며 내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며칠동안 그 답이 '아니다.'로 나오게 되면 제가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기억은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만나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것을 - 모든 외부적인 기대, 자존심, 황망함이나 실패에 대한 공포 - 이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사라져버리고 단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만 남게 되기 때문이지요. 죽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책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빨가벗었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바라는 바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일년 전쯤 저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곱시 삼십분에 스캔을 했는데 제 췌장에 종양이 있더군요.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가 제게 말하길 이 종류의 암은 거의 대부분 치료가 불가능하고 삼개월에서 육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요. 제 의사가 제게 조언하길 집으로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하는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이야기였어요. 즉 향후 십년 동안 애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몇 달 안에 다 하란 말이었죠. 모든 일들을 용의주도하게 해 놓아서 가족들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해주라는 거였죠. 즉 작별인사를 하라는 거였죠.

저는 하루종일 그 진단과 살았습니다. 그날 저녁 생체검사를 했는데 내시경을 내 목으로 밀어 넣어서 위를 거쳐 소장까지 넣고 췌장에 바늘을 꼽아 종양에서 몇 개의 세포를 떼어냈습니다. 저는 차분했고, 같이 있던 제 아내가 이야기 하길 현미경으로 조직을 보던 의사가 제 종양은 아주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수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곤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고요. 전 수술을 받았고 이젠 멀쩡합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을 가장 근접해서 대면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향후 수 십 년간 이것이 가장 근접한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인생 경험을 하면서 여러분께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죽음을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 이는 죽음이 유용하지만 순수하게 지적인 개념이라는 것 이상일 겁니다.

그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은 사람 조차도 거기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종착역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꼭 그래야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삶이 만들어 낸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삶을 변화시키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들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멀지않은 미래에 여러분은 서서히 낡은 것이 되고 폐기될 겁니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죄송합니다만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잡음 같은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자기 내부의 목소리가 매몰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용기를 내서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십시오. 이것들은 당신들이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이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죠.

제가 젊은 시절에 '전 지구 카탈로그'란 멋진 출판물이 있었는데, 이건 우리 세대의 일종의 바이블이었죠. 이것은 만든 이는 스튜어트 브랜드이고 이 곳 멘로 팍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시적인 감각으로 이 잡지에 생명을 불어넣었답니다. 1960년대 후반이니 컴퓨터라든지 데스크탑 인쇄 같은 게 없던 시절이죠. 그래서 이 잡지는 타자기와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졌어요. 이건 일종에 종이로 된 구글 같은 거였죠.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에 말이죠. 이상적이었고 참신한 도구와 멋진 말들로 넘쳐 났었죠.

스튜어트와 그 팀은 여러 호의 전 지구 카탈로그를 냈는데 주어진 호를 다 내고 나서 마지막 호를 냈어요. 이때가 1970년대 중반이니 제가 여러분 나이 때죠. 마지막 호의 뒷면은 이른 아침 시골 길의 사진이었는데 여러분들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히치하이킹을 해봄 직한 그런 도로 였죠. 그 아래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이것이 그들이 사라져가며 남긴 이별의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그리고 저는 항상 제 자신이 그러길 바랐습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시작하려는 여러분께 축원하노니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 같이 살아라.

감사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텐포드대학에서 한 유명한 졸업 축사문입니다. 그의 죽음때문인지 더 와닿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그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은 사람 조차도 거기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