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생일을 맞이하여
할아버지, 부라보!!
95세에 시작하는 어학공부, 그 용기 우리도 배우렵니다.
존경합니다.
나는 65세에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30년 전이지요.. 내 분야는 특수한 전문직이어서 남들보다는 더 오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기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니,구조조정이니 하는 퇴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내가 65세까지 끄떡없이 버티며 정해진 정년에 명예롭게 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젊어서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을 받는 실력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끝없이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아무도 그 분야에서 내 실력을 능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도 나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 명예스럽게 퇴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년이 되자 직장에서는 내게 좀 더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어요. 65세의 나이쯤 되고 보니, 나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즐기다가 남은 인생을 마감하고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기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자식들에게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순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그 이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가 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이 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하는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했던 것입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지금의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생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입니다.
내가 95년의 생일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 년이라는 소중한 인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다른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997년에 받은 글입니다.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100세가 되셨을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지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95세에 시작하는 어학공부, 그 용기 우리도 배우렵니다.
존경합니다.
나는 65세에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30년 전이지요.. 내 분야는 특수한 전문직이어서 남들보다는 더 오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기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니,구조조정이니 하는 퇴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내가 65세까지 끄떡없이 버티며 정해진 정년에 명예롭게 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젊어서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을 받는 실력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끝없이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아무도 그 분야에서 내 실력을 능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도 나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 명예스럽게 퇴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년이 되자 직장에서는 내게 좀 더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어요. 65세의 나이쯤 되고 보니, 나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즐기다가 남은 인생을 마감하고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기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자식들에게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순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그 이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가 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이 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하는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했던 것입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지금의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생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입니다.
내가 95년의 생일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 년이라는 소중한 인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다른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997년에 받은 글입니다.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100세가 되셨을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지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Friend·Friendship, Confucius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孔子
Isn't it great when friends visit from afar?
― Confucius (551BC–479BC)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공자 (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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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
미국 백만장자들의 특징
미국 백만장자들의 특징
‘토머스 스탠리(Thomas J. Stanley)가 1996년 발행한 에 나온 미국 백만장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의 3.4%에 해당하는 백만장자 중 1,000명을 대상으로 20여 년간 연구한 결과)
- 거액의 유산을 받아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 80퍼센트는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 저축을 생활화하고 지출을 줄이고, 검소하게 입고 소박하게 음식을 먹었다.
- 대부분 평범한 업종, 구체적으로 용접공, 경매인, 고물상인, 이동식 화장실 임대인, 세탁소, 디젤 엔진 수리공, 도로 포장과 같은 평범한 분야에서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경제적 소득을 실현한 사람이었다.
백만장자들은 사소해 보이는 일속에서 용기와 신념으로 기회를 일구어낸 것이다. ‘톰 피터스, ‘리틀 빅씽’에서 옮겼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조영탁 Dream
받은 글입니다.
‘토머스 스탠리(Thomas J. Stanley)가 1996년 발행한 에 나온 미국 백만장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의 3.4%에 해당하는 백만장자 중 1,000명을 대상으로 20여 년간 연구한 결과)
- 거액의 유산을 받아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 80퍼센트는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 저축을 생활화하고 지출을 줄이고, 검소하게 입고 소박하게 음식을 먹었다.
- 대부분 평범한 업종, 구체적으로 용접공, 경매인, 고물상인, 이동식 화장실 임대인, 세탁소, 디젤 엔진 수리공, 도로 포장과 같은 평범한 분야에서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경제적 소득을 실현한 사람이었다.
백만장자들은 사소해 보이는 일속에서 용기와 신념으로 기회를 일구어낸 것이다. ‘톰 피터스, ‘리틀 빅씽’에서 옮겼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조영탁 Dream
받은 글입니다.
Time, Marilyn Monroe
I've been on a calendar, but never on time.
- Marilyn Monroe (1926-1962)
나는 달력모델은 했어도 제 시간에 온적은 없어요.
- 마를린 먼로 (Marilyn Monroe)
이까짓 감기쯤이야
'이까짓 감기쯤이야'
"마음은 힘의 원천이야. 마음에 따라서 몸도 달라져.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까짓 감기쯤이야' 하면 감기가 쑥 물러가. 그러나 몸을 움츠리고 감기에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면서 감기에 걸린단 말이야. 마음이 병을 만드는 거야."
- 장병두의《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중에서 -
맞습니다. 마음이 병을 만듭니다. 그러나 몸도 중요합니다. 몸이 허약해 골골한 터에 '이까짓 감기쯤이야' 하면 된통 혼이 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함께 가야 합니다. 마음이 몸을 다스리고, 몸이 마음을 다스립니다. 휴식과 운동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받은 글입니다.
"마음은 힘의 원천이야. 마음에 따라서 몸도 달라져.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까짓 감기쯤이야' 하면 감기가 쑥 물러가. 그러나 몸을 움츠리고 감기에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면서 감기에 걸린단 말이야. 마음이 병을 만드는 거야."
- 장병두의《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중에서 -
맞습니다. 마음이 병을 만듭니다. 그러나 몸도 중요합니다. 몸이 허약해 골골한 터에 '이까짓 감기쯤이야' 하면 된통 혼이 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함께 가야 합니다. 마음이 몸을 다스리고, 몸이 마음을 다스립니다. 휴식과 운동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받은 글입니다.
Beauty, Marilyn Monroe
We are all born sexual creatures,thank God, but it's a pity so many people despise and crush this natural gift.
- Marilyn Monroe (1926-1962)
우리 인간들이 성(性)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은 신께 감사할 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혐오하고 뭉개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 마를린 먼로 (Marilyn Mon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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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내가 하루도 쉬지 않는 이유
내가 하루도 쉬지 않는 이유
훈련이 계속되고 몸이 피곤해지면 ‘하루쯤 쉬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하루를 쉬면 그만큼 다음 날 해야 하는 훈련 양이 많아진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내가 하루도 쉴 수 없는 이유다.
- 박지성, ‘멈추지 않는 도전’ 중에서
위대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밤에 단잠을 잘 적에 일어나서 괴로움을 이기고 일에 몰두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어지는 박지성의 글입니다. “언젠가는 그들도 한번쯤 쉴 것이고 그때 내가 쉬지 않고 나아간다면 차이는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쉬지 않고 뛰고 있다는 것이지 그들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받은 글입니다.
훈련이 계속되고 몸이 피곤해지면 ‘하루쯤 쉬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하루를 쉬면 그만큼 다음 날 해야 하는 훈련 양이 많아진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내가 하루도 쉴 수 없는 이유다.
- 박지성, ‘멈추지 않는 도전’ 중에서
위대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밤에 단잠을 잘 적에 일어나서 괴로움을 이기고 일에 몰두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어지는 박지성의 글입니다. “언젠가는 그들도 한번쯤 쉴 것이고 그때 내가 쉬지 않고 나아간다면 차이는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쉬지 않고 뛰고 있다는 것이지 그들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받은 글입니다.
Smile, Marilyn Monroe
Keep smiling, because life is a beautiful thing and there's so much to smile about.
- Marilyn Monroe (1926-1962)
계속 웃어요,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고 웃을 일도 많아요.
- 마를린 먼로 (Marilyn Monroe)
뒤집어야 산다 !
뒤집어야 산다 !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
# 바야흐로 본격적인 꼬막 철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남도의 밥상에는 어김없이 꼬막이 오른다. 전남 보성군 벌교 앞 바다를 여자만(汝自灣)이라 부르는데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이 만의 갯벌은 모래나 황토가 거의 섞이지 않아 예부터 꼬막 서식에 최적지로 꼽힌다.
우리나라 꼬막의 93%는 전남, 그중에서도 여자만에 접한 벌교가 주 생산지다. 그냥 삶기만 해도 그 특유의 짭짜름한 맛과 쫄깃한 육질을 내는 꼬막. 특히 차지고 차진 벌교 갯벌에서 캐낸 꼬막은 유독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깊은 맛이 나기로 유명하다.
#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엔 심심치 않게 꼬막 얘기가 등장한다. 박노해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도 ‘꼬막’이란 시가 실려 있다.
#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오셨다는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 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어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 꼬막 특유의 쫄깃한 육질의 비밀은 썩은 것들을 갈아엎는 태풍 덕이 8할이다.
뒤집고 엎어야 맛이 나고 소출도 많아지는 것이 꼬막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꼬막뿐이랴.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평탄하게 고이면 썩는다. 때로 깨끗하게 한 판 뒤집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쪼잔해지지 않고 쫀득해지고 널브러지지 않고 팽팽해진다.
사회혁명이니 국가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작은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진행 중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뒤집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썩는다.
꼬막의 쫄깃한 육질과 삶의 쫄깃한 긴장은 모두가 건강함의 다른 표현이다. 육질이든 삶이든 쫄깃해지려면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를 뒤집어야 한다. 내 안에 스스로 태풍을 일으켜야 한다.
# 우리는 태풍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태풍이 없으면 바다가 썩는다. 바다가 썩으면 그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결국 죽고 만다. 분명 태풍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태풍이 없으면 삶의 기반이 되는 바다가 바닥부터 썩는 것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태풍은 피하곤 싶지만 또 없어선 안 될 바다의 정화제다.
사람의 힘만으로 바다를 깨끗이 할 수 있을까? 없다! 하지만 태풍은 일순간에 바다를 한번 뒤집어 바다의 건강함을 회복하게 만든다.
# 대란대치(大亂大治)란 말이 있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꼬막도 뒤집어야 산다는데 산 우리가 뒤집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능겨?
받은 글입니다.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
# 바야흐로 본격적인 꼬막 철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남도의 밥상에는 어김없이 꼬막이 오른다. 전남 보성군 벌교 앞 바다를 여자만(汝自灣)이라 부르는데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이 만의 갯벌은 모래나 황토가 거의 섞이지 않아 예부터 꼬막 서식에 최적지로 꼽힌다.
우리나라 꼬막의 93%는 전남, 그중에서도 여자만에 접한 벌교가 주 생산지다. 그냥 삶기만 해도 그 특유의 짭짜름한 맛과 쫄깃한 육질을 내는 꼬막. 특히 차지고 차진 벌교 갯벌에서 캐낸 꼬막은 유독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깊은 맛이 나기로 유명하다.
#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엔 심심치 않게 꼬막 얘기가 등장한다. 박노해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도 ‘꼬막’이란 시가 실려 있다.
#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오셨다는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 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어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 꼬막 특유의 쫄깃한 육질의 비밀은 썩은 것들을 갈아엎는 태풍 덕이 8할이다.
뒤집고 엎어야 맛이 나고 소출도 많아지는 것이 꼬막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꼬막뿐이랴.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평탄하게 고이면 썩는다. 때로 깨끗하게 한 판 뒤집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쪼잔해지지 않고 쫀득해지고 널브러지지 않고 팽팽해진다.
사회혁명이니 국가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작은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진행 중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뒤집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썩는다.
꼬막의 쫄깃한 육질과 삶의 쫄깃한 긴장은 모두가 건강함의 다른 표현이다. 육질이든 삶이든 쫄깃해지려면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를 뒤집어야 한다. 내 안에 스스로 태풍을 일으켜야 한다.
# 우리는 태풍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태풍이 없으면 바다가 썩는다. 바다가 썩으면 그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결국 죽고 만다. 분명 태풍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태풍이 없으면 삶의 기반이 되는 바다가 바닥부터 썩는 것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태풍은 피하곤 싶지만 또 없어선 안 될 바다의 정화제다.
사람의 힘만으로 바다를 깨끗이 할 수 있을까? 없다! 하지만 태풍은 일순간에 바다를 한번 뒤집어 바다의 건강함을 회복하게 만든다.
# 대란대치(大亂大治)란 말이 있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꼬막도 뒤집어야 산다는데 산 우리가 뒤집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능겨?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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