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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To know is nothing at all (Anatole France)

To know is nothing at all; to imagine is everything.
- Anatole France (French Writer, 1844-1924)

안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아나톨 프랑스 (佛작가, 1844-1924)


삼성전자를 깎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애플이나 구글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뛰어난 기술력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앞서가는 이미지나 창조적 이미지는 부족합니다.

그동안 많이 아는데 힘써왔다면 앞으로는 상상할 수 있는 인재들이, 그리고 그런 인재들이 이끌어가는 기업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Y^^]K: To know is nothing at all (Anatole France)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Y^^]K: 고집 센 며느리

[Y^^]K: 고집 센 며느리

갓 시집 온 고집센 며느리가 생선을 굽고 있었다. 한쪽만 계속 태우는걸 보다 못한 시아버지,

"얘야, 뒤집어 굽지 않고 한쪽만 그렇게 태우느냐?"

그러자 며느리 曰,

" 아버님, 걍 냅두세요~ 흥~ ..제깐놈이 뜨거우면 돌아 눕겠죠~..."

그냥 웃자고 보내온 글.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딫히기를 기다리는 것[守株待兎] 보다 더한 어리석음이 그냥 단지 웃음으로만 남지는 않는 건 알게 모르게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옮겨온 글입니다.

[Y^^]K: 신과 악마

[Y^^]K: 신과 악마

사람들은 신을 더 좋아할까요 아니면 악마를 더 좋아할까요? 당연히 신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은 신보다 악마를 더 좋아한다

어느 사람의 말입니다. 신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할지 몰라도 잘못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잘못을 뉘우쳐야 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안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존재는 꽤나 인간을 편하게 합니다. 다른 건 필요없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지독하게 나쁜 악마에게 걸렸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나쁜 건 악마고 그 악마가 자신을 괴롭히는걸 지켜보고 있던 신도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저 또하나의 피해자일뿐입니다. 악마의 힘이 너무도 강했기에 어쩔 수 없었던.

이러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기에 사람들은 악마를 더 좋아하고 믿는다는 이야기.

창세기에 나오는 뱀은 하느님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만들었고 인간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악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주장.

그 주장을 믿든 안 믿든 문득 책임이란 걸 생각해 봅니다. 난 내 인생에 얼마나 책임있게 살고 있는가...


[Y^^]K: 신과 악마에서 옮긴 글입니다. 신과 악마. 그리고 삶에 대한 책임. 무거운 주제 같기도 하지만... 무겁지 않은 글.

나도 한번 내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Y^^]K: 와각지쟁 (蝸角之爭)

[Y^^]K: 와각지쟁 (蝸角之爭)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터전. 그렇게도 중요한 것들이 하나의 점으로 보일때 달팽이 뿔 위의 다툼이라는 와각지쟁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순간 당사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듯 하지만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 중요한게 무엇인지조차 잊고 아웅다웅 사는 삶이 달팽이 뿔 위의 다툼과 다른게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땅에 내리고 눈 앞의 일들에 치이며 결국 다시 그 작고 하찮은 일들에 파묻혀 갑니다. 또 다시.


[Y^^]K: 와각지쟁 (蝸角之爭)에서 옮긴 글입니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달팽이 촉각 위의 다툼과 다를 바 없지만, 그러면서도 벗어나기 힘들어 합니다.

언제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이라도 벗어나 바라보며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빕니다.

[Y^^]K: 陽火出於氷水 (양화출어빙수)

[Y^^]K: 陽火出於氷水 (양화출어빙수)

양기를 지닌 불이 얼음에서 나오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나오는 말입니다. 불이 어떻게 얼음에서 나올까 생각하실 수 있을텐데, 이는 얼음을 볼록렌즈처럼 깎아서 불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전혀 아닐 것 같은 데에서 생겨나는 어떤 것. 사람들 하나하나가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긍정적 방향일 땐 희망과 가능성, 무한한 잠재력이 되고, 부정적 방향일 땐 인간에 대한 무서움이 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희망의 놀라움을 만드시기를...

[Y^^]K: 다른 것 보기

[Y^^]K: 다른 것 보기

Television has proved that people will look at anything rather than each other.

Ann Landers (1918-)

TV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느니 기꺼이 다른 것을 보려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앤 랜더스 (1918-) 미국 칼럼니스트

친구의 자리를 스마트 폰이 대체하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간관계가 소원해 진다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진정한 친구는 스마트 폰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친구의 친구가 되어 버렸다는.

그러한 이야기는 앤 랜더스의 말처럼 TV가 문화를 바꾸던 1910년 대에도 나오던 이야기였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기가 문화를 바꿀 때마다 나오는 말들은 문화의 변화에 대해 적응하지 못해서 나오는 우려일까요 아니면 정말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며 또 거기에 무디어져가는 과정일까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싸이월드,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인기. 그러나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쨋든 달려가는 우리들입니다.

좋든 싫든 돌릴 수 없는 길이라면 그 끝은 어디일까요? 절벽을 향해 달리든 이리저리 헤매다 굶어죽든 목적없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레밍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영양가 없는 생각인 걸 알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옮긴 글입니다.

[Y^^]K: 自愛不自貴 (자애부자귀)

[Y^^]K: 自愛不自貴 (자애부자귀)

예수님의 첫번째 계명 사랑. 노자 역시 자신의 세가지 보물[我有三寶 持而保之] 중 첫번째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一曰慈]. 의미하는 바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사랑을 함에 있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몰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희생적인 사랑도 그 바닥에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자기에 대한 사랑은 자만감이나 무뢰함 또는 이기심과 같은 부정적인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사랑하나 높이지 않는다[自愛不自貴]는 노자의 말이 떠올려집니다.

[Y^^]K: 천리길도 한걸음에?

[Y^^]K: 천리길도 한걸음에?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이란 글에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에 어느 분이 그러십니다. 그건 옛날 말이고 아무리 먼 길도 한꺼번에 가고자하는 요즘은 천리길도 한걸음에가 맞지 않냐고.

뭐든지 빨리 하려고 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 그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게 아니냐고 자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리길을 '한걸음'도 아닌 '한 걸음'에 가려다가 스스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빠르게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Y^^]K: 愼終如始 則無敗事 (신종여시 즉무패사)

[Y^^]K: 愼終如始 則無敗事 (신종여시 즉무패사)

시작은 반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만큼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작이 중요하긴 하더라도 전부는 아닙니다. 시작하고 나서 마무리가 안좋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과 같이...

용두사미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종여시 즉무패사(愼終如始 則無敗事), 시작부터 끝까지 신중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Y^^]K: 千里之行 始於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

[Y^^]K: 千里之行 始於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

앞서 쓴 글 '若烹小鮮(약팽소선)'과 관련하여 세세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도덕경에도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생겨나고 세상의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생겨난다. 그만큼 작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조차 신경을 써야합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하느냐 역시 중요합니다.


옮긴 글입니다.

[Y^^]K: 天下大事必作於細 (천하대사필작어세)

[Y^^]K: 天下大事必作於細 (천하대사필작어세)

앞서 쓴 글 '若烹小鮮(약팽소선)'과 관련하여 세세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도덕경에도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생겨나고 세상의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생겨난다. 그만큼 작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조차 신경을 써야합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하느냐 역시 중요합니다.


옮긴 글입니다.

[Y^^]K: 若烹小鮮 (약팽소선)

[Y^^]K: 若烹小鮮 (약팽소선)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뒤집듯이 해야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무릇 그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너무 작은 것까지 생각하고 관여한다면 정책이 왔다갔다 하다가 정말 크고 중요한 것은 놓칠 수 있습니다. 작은 생선을 구우면서 자꾸만 업치락 뒤치락하면 생선이 부숴져서 먹을게 없어지듯이.

세세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도 못 막는다는 옛말처럼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되고는 하기에.

실무자들은 그런 세세한 부분을 신경써야겠지만 큰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그런 부분은 믿고 맡겨야 합니다. 리더나 실무자나 똑같이 세세한 것만 신경쓰다가는 정작 큰 그림은 아무도 안 보기때문입니다.

모두가 능력도 있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망하는 조직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장 망하지는 않더라도 쇠퇴하는 조직도 보입니다. 조직원들의 잘못이 아니면 하늘을 탓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는 대부분 리더가 큰 그림을 못보고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꾸준히 혁신도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면 가야하는 곳과는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쓰고 작은 생선 뒤집듯 조직을 관리하는 것. 지금도 중요한 옛 성현들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Y^^]K: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

[Y^^]K: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으며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노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욕심이 욕심을 낳다보니 풍요롭지만 부족함이 많은 세상에서 필요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Y^^]K: 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소소 아독혼혼)

[Y^^]K: 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소소 아독혼혼)

세상 사람들 모두 똑똑한데 나만 홀로 어리석다. 노자의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살면서 가끔씩 들어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업무상 어려운 문제에 처할 때나 개인적 대소사를 겪을 때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는 위안(?)을 삼아봅니다. 비록 노자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Y^^]K: 絶聖棄智 民利百倍 (절성기지 민리백배)

[Y^^]K: 絶聖棄智 民利百倍 (절성기지 민리백배)

성인이 되기를 끊고 지혜롭기를 버려라. 그러면 백성들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9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을 보면 스스로를 내세우고, 높이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리더가 너무 자신을 앞세우면 그 집단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인이 되려 하거나 자신의 지혜를 쌓기 보다 조직을 위해 진정 필요한게 무엇인지 찾고 행해 나가야 할 겁니다.

[Y^^]K: 越陳越香 (월진월향)

[Y^^]K: 越陳越香 (월진월향)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가 더한다. 오래 묵힐 수록 더좋은 향기와 맛이 난다는 보이차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첫인상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론을 다루는 많은 책들이 첫인상을 좋게 하는 방법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사람간의 만남도 월진월향(越陳越香)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Y^^]K: 難得糊塗 (난득호도)

[Y^^]K: 難得糊塗 (난득호도)

聰明難,糊塗難,(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轉入 糊塗更難。(유총명전입 호도갱난)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총명한데 어리석어 보이기 힘들다. 중국 청나라 시대 정판교가 썼다는 위 사자성어는 자신을 본 모습을 숨기고 일을 도모하는 겉과 속이 다른 중국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합니다.

총명하지 못하여 난득호도(難得糊塗)까지는 아직 모르지만...

문득 난득총명(難得聰明)을 생각해 봅니다. 잘난 듯 보이려 하지만 한참 부족한 그런 모습은 아닌지.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해 봅니다.


옮긴 글입니다.

[Y^^]K: Love looks through a telescope (Josh Billings)

[Y^^]K: Love looks through a telescope (Josh Billings)

사랑은 마음으로 본다. 그러면 마음으로 어떻게 볼까요?

Love looks through a telescope; envy, through a microscope.
사랑은 망원경을 통해 보고, 시기(猜忌)는 현미경을 통해 본다.
- Josh Billings (조쉬 빌링스, 1918-1885) American humorist

조쉬 빌링스의 말 또한 재미있는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체 원문을 보지 못해서 어떤 상황에서 나왔던 글인지는 모르지만, 위에 언급한 문장 하나를 보고 있으며, 사랑이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시가가 무언가 찾아내기 위해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려집니다.

사랑은 멀리 있어도 그리워하고 바라보게 만들고, 시기는 흠을 잡기 위해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는 것인가요?


받은 글입니다.

[Y^^]K: 시간이 없어서…

변명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 에디슨 -


언젠가 부터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해놓은 일은 없고, 해야할 일은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시간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니 위의 말이 더 와닿습니다. 시간이 없다...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이겠죠.


[Y^^]K에서 옮긴 글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 참 당연하면서도 말이 안되는 말 같습니다.

[Y^^]K: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Y^^]K: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Love looks with the mind (William Shakespeare)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And therefore is winged Cupid painted blind.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그러므로 날개 달린 큐피트는 눈이 먼 것으로 표현된다.
- William Shakespeare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A Midsummer Night's Dream (한 여름 밤의 꿈), Act i. Sc. 1.


마음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외모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것은 모두 갖게 해줄 것 같은 부(富)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가 우러러 보는 것 같은 권력이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봐야 한다'라는 핑계로 그런 잣대를 적용합니다. 모두 육체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성인군자일 수 없고,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각자가 선택할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잣대도 바라보는 눈도 모두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채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만 붙인 사적인 계약입니다. 그런 계약은 공허할 수 밖에 없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후회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죠.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사랑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 마음으로 보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옮긴 글입니다.

http://nowgnoy3.blogspot.com/2011/01/love-looks-with-mind-william.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