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은 재처 (人命在妻)

운명은 재천((運命在天)인명은 재처(人命在妻)세상이니라

요즘 온라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머는 '아내 시리즈'다. 하늘 천(天)자를 아내 처(妻)자로 바꾼 한자성어들인데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명재처(人命在妻)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명령을 기다려라
지성이면 감처(至誠感妻) 정성을 다하면 아내도 감동한다
처하태평(妻下泰平) 아내 밑에 있을 때 모든 것이 평안하다
순처자는 흥하고 역처자는 망한다, 순처자흥여처자망(順妻者興 逆妻者亡) 아내에게 순종하면 삶이 즐겁고,거스르면 칼 맞는다)

참, 머리들도 좋다. 요즘 남편들의 눈물겨운 생존법을 어쩌면 이렇게 잘도 표현했을까. 하지만 씁쓸하다. 웃자고 만든 말이겠지만 속없이 웃을 수만은 없는 서글픈 유머. 남편들의 위상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쪼그라들었을까.

예전에도 공처가(恐妻家-아내에게 쥐어 사는 남자)니 엄처시하(嚴妻侍下-엄한 아내 밑에서 꼼짝 못하고사는 남편)니 하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였다.

여필종부(女必從夫)남존여비(男尊女卑)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안제미(擧案齊眉:밥상을 눈썹에 맞추어 높이 들고들어간다는 뜻으로 아내가 남편을 정성껏 받드는 모양을 말함), 일부종사(一夫從事:평생 한 남편만 섬김), 삼종지도(三從之道-여자가 따라야 할 세가지 도리, 즉 어릴 때는 부모를, 출가해서는 남편을,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말)의 가르침도 당연시 되었다.

그러나 이젠 모두 국어책에나 나오는 옛말이 됐다. 그러니 아직도 이런 한자성어에 박수 치는 '간 큰 남편'이 있기나 할까. 70대 이상 노인들에게 노후를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에 대해 물었다. 대답이 기가 막혔다. 남자는 69%가 반드시 아내와 함께 보내겠다고 한 반면 여성은 66%가 절대로 지금 남편과는 안 보내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일본 얘기다.

우리는 어떨까. 미국 사는 한인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도 장난은 아닌 것 같다. 50대 이후 부부들이 특히 더 그렇다. 바깥으로 돌던 남편들은 점점 집안으로 깃들고 거꾸로 아내들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퇴직이라도 하고 나면 남편은 그야말로 아내만 찾는 '노인 아기'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식이(하루 세끼 꼬박 집에서 밥 먹는 보기 싫은 남편)'다.

남자가 늙어서 필요한 5가지는 마누라, 아내, 집사람, 와이프, 애들 엄마라는 우스개도 있다. (여자가 늙어서 필요한 것 5가지는 돈, 딸, 건강, 친구, 찜질방이란다) 그야말로 남성 몰락 시대다. 이런 조롱섞인 말장난 소재로까지 떨어진 남편들의 위상이라니. 바람직한 부부 사이란 어떤 것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부부 황금률'은 있다. 상호 신뢰와 존중과 책임이다. 운명공동체여야 한다는 자각도 빼놓을 수 없다.

부부란 험난한 인생행로를 함께 걸어갈, 혹은 함께 헤쳐 나온 친구요 동지며 후원자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의 사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자꾸만 둘 사이를 경쟁관계로 만들려 한다. 이혼은 더 이상 '흠'이 아니라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며, 왜 그렇게 참고 사느냐며 서로를 이간질시킨다. 매년 3쌍이 결혼할 때 1쌍은 갈라서는, OECD 최고 이혼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세태는 이런 부추김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부족할 수 있다. 못났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남편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아내들은 여전히 많다. 무능하지만,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손잡아 주고 어깨 세워 주는 아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여자더러 어리석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헛똑똑이들이 알 리가 없다. 그런 아내야말로 인생 행복의 비밀을 제대로 아는, 진정 현명한 여자라는 것을.


떠나는 이유

떠나는 이유

우리가 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 법정스님의「인연이야기」중에서 -

가진 것이 참 많습니다

가진 것이 참 많습니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 괴테 -

가난하다고, 가진 것이 적어서 마음껏 누릴 수 없다고 때론 푸념하지만 둘러보면 가진 것이 참 많습니다.

건강한 신체가 있고, 밝은 웃음이 있고,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있으니까요.

어깨 펴고 당당히 살라고 넓은 세상도 있습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인생, 사소한 결정

인생, 사소한 결정

사람의 운명이란 때로는 사소한 사건, 우연한 만남에 의해 결정되는 미묘한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삶의 길, 그 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길 저쪽에서 반짝이는 이파리 하나, 혹은 희미하게 들리는 휘파람 소리일지도 모른다.

- 홍정욱의「7막 7장」중에서 -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안녕하세요?

모두 행복하시고 즐거운 일들만 생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조영탁님의 글 중에서 ‘현실에 안주하면 망한다,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진취적이어야 한다.’는 글을 소개드립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돌궐제국 명장 톤유쿠크(Tonyuquq) 비문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내 후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 때 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라 했던 칭기즈칸의 경구를 떠올렸다.

- 이석연 저, ‘책, 인생을 사로잡다’에서

맹자는 “지금 어렵고 근심스러운 것이 나를 살리는 길로 인도할 것이요, 지금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라고 생어우환(生於憂患) 사어안락(死於安樂)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안전지대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새롭게 도전하는 멋진 삶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중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지인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바둑과 인생

바둑과 인생

한 수 한 수는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발걸음이다. 나는 그 미로들 때문에 바둑을 사랑했다. 돌 하나의 위치는 다른 돌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돌들 사이의 관계는 속속 변모해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법이 거의 없다.

- 샨사의「바둑 두는 여자」중에서 -

Sundries: 소말리아에 가서

Sundries: 소말리아에 가서

너희들의 자본주의를 보아라
너희들의 사회주의를 보아라
주린 아이들의 눈을 보아라

- 고은 저/'순간의 꽃'중에서

안녕하세요!! 희망찬 한주 되세요.


'Sundries: 소말리아에 가서'에서 옮긴 글입니다.

나무가 나에게 한 말

나무가 나에게 한 말

"나도 사는데, 넌 왜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죽음의 문턱에서 나무가 나를 부른 거였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가 말이다. 순간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우종영의「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중

[Y^^]N: Here and Now

[Y^^]N: Here and Now

We call an ideal world as Utopia. It means nowhere literally. Nowhere consosts of now and here. It means a perfect world is the here and now.


From '[Y^^]N: Here and Now'

Sundries: 한발짝 멀리

Sundries: 한발짝 멀리

우리는 곧잘 자신의 문제에는 유치원생처럼 굴다가도 남의 문제에는 주지스님처럼 말한다. 자신의 문제는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남의 문제는 산맥이라 할지라도 거뜬히 넘는다. 남의 일이라서 쉽게 얘기하는 것일까? 아니다. 한 발짝 물러서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사람들의 물음에 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질 수록 잘 보이는 법이다.

- 김미경 저/'살아 있는 뜨거움' 중에서


'Sundries: 한발짝 멀리'에서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