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그대로
온전한 그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로 살고 망초는 망초로 삽니다. 질경이는 질경이로 살지요. 거친 땅, 길에서 사는 질경이는 모질게 클 수밖에 없지만 기름진 땅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기품 있고 의젓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제 모습 잃지 않고 온전한 질경이로 살아갑니다.
- 이철수의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중에서 -
European Rhinoceros Beetle
European Rhinoceros Beetle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Description | English: European Rhinoceros Beetle male. Ukraine. 유럽코뿔소장수풍뎅이 |
Date | 10 June 2012 |
Source | http://commons.wikimedia.org/ |
Author | George Chernilevsky |
Camera location | 49° 14′ 05.51″ N, 28° 31′ 19.13″ E |
Permission | Public Domain |
Licensing | This work has been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by its author. |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맹자의 마음론, 우산지목(牛山之木)
맹자의 마음론, 우산지목(牛山之木)
박재희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이해 못할 사람들의 이해 못할 행동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럴 수가 없는데...’라며 인간에 대한 불신과 함께 허탈한 쓴 웃음을 지어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인간은 정말 원래부터 악한 존재였을까요? 아니면 이 풍진 세상이 그토록 악하게 만든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춘추전국시대 맹자가 살던 시대에도 맹렬하게 벌어졌던 논쟁 중에 하나였습니다.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 뭐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맹자의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논리를 한 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믿음이야 말로 어떤 사람을 끝까지 신뢰하고 포기 하지 않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은 원래 착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모진 풍파와 세월이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악하게 만들었다.
박재희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이해 못할 사람들의 이해 못할 행동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럴 수가 없는데...’라며 인간에 대한 불신과 함께 허탈한 쓴 웃음을 지어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인간은 정말 원래부터 악한 존재였을까요? 아니면 이 풍진 세상이 그토록 악하게 만든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춘추전국시대 맹자가 살던 시대에도 맹렬하게 벌어졌던 논쟁 중에 하나였습니다.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 뭐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맹자의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논리를 한 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믿음이야 말로 어떤 사람을 끝까지 신뢰하고 포기 하지 않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은 원래 착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모진 풍파와 세월이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악하게 만들었다.
행복이 말을 걸어올 때
행복이 말을 걸어올 때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
성장의 뒷면
성장의 뒷면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어느 한 사람의 더욱 진보된 발전을 보살피겠다는 언약이 이행되기만 하면, 두 사람 영혼의 활기찬 성장이 보장될 것이다.
- 카렌 케이시 -
가슴 벅찬 성취는 자신의 노력과 특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고 공헌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손길은, 부모일수도 있고 배우자일수도 있고 스승이나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특기와 능력을 알아보는 그들의 안목과 그것을 키워가도록 하는 도움과 배려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점입니다.
From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어느 한 사람의 더욱 진보된 발전을 보살피겠다는 언약이 이행되기만 하면, 두 사람 영혼의 활기찬 성장이 보장될 것이다.
- 카렌 케이시 -
가슴 벅찬 성취는 자신의 노력과 특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고 공헌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손길은, 부모일수도 있고 배우자일수도 있고 스승이나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특기와 능력을 알아보는 그들의 안목과 그것을 키워가도록 하는 도움과 배려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점입니다.
From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
간격을 유지하라
간격을 유지하라
나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서로 간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 절실하다. 나무 두 그루가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며 위로만 치닫게 된다. 조금이라도 높이 자라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결국 서로를 망치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
나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서로 간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너무나 절실하다. 나무 두 그루가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며 위로만 치닫게 된다. 조금이라도 높이 자라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결국 서로를 망치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
여수 밤바다 (돌산대교)
여수 밤바다 (돌산대교)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Description | Night View of Dolsan Bridge, Yeosu, Korea 여수 밤바다 (돌산대교) |
Date | 8 June 2004 |
Source | Dolsan Bridge http://commons.wikimedia.org/ |
Author | Doo-ho Kim from Seoul, Republic of Korea |
Camera location | . |
Permission |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as published it under the following license: |
Licensing |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to adapt the work Under the following conditions: attribution – You must attribute the work in the manner specified by the author or licensor (but not in any way that suggests that they endorse you or your use of the work). share alike – If you alter, transform, or build upon this work, you may distribute the resulting work only under the same or similar license to this one. |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오신 것은 결혼초 한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어머니는 아들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일을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 고 한다.
평생 그렇게 일만하시던 시어머니는 아들 둘다 대학졸업 시키신 후에야 일을 줄이셨다고 한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 셨었다.
"고생도 안해본 서울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가진거 없는 우리 아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등록금을 보태고 용돈을 썼다고 했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연애는 커녕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늘 좋다는 친구들 후배들이 줄줄 따른다.
둘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이 좋았다 .
건강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내가 먼저 고백했다. 그는 망설였다. 자기는 가진거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였고, 삼고초려끝에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를 우리집에 데려갔다.
그의 외모와 직업에 우리 부모님은 그를 반겨주었다.
집이 지방이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을때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진거라고는 월세 원룸보증금과 얼마간의 저축이 전부다 했을때 아빠가 담배를 피우셨다.
그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한번 못펴시고 우리 형제 위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가서도 영은이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만, 그래도 영은이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각 오가 되어있는 제 결심 이것만 높이 사주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주신 돈과 회사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와 내가 모은 얼마간의 저축으로 혼수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버이날과 어머니 생신이 겹쳤다.
일부러 주말을 잡아 내려갔다.
시동생도 오고 어머니와 마당평상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먹는데 그맛이 세상에서 제일 맛 있는 삼겹살이었다.
그날 밤 작은 방에 예단으로 보내드렸던 이불이 깔려있었다.
어머니는 한번도 그 이불을 쓰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우리더러 그방에 자라고 하신다.
싫다고 뿌리치는 어머니 손목을 끌어 작은방으로 모셨다.
"어머니하고 자고 싶어요. 신랑은 도련님하고 넓은 안방에서 자라고 할거에요. 어머니랑 자고 싶어요."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도 못갈아입었다고 이불 더럽혀 지고 니가 불편해서 안된다. 냄새나 안된다고 자꾸 도망가려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소주마시고 싶다고 함께 소주를 먹었다.
어머니가 찢어주시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소주를 홀랑 홀랑 비우고 취해 잠들어버렸다.
자다 목이 말라 깨어보니 나는 이불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고 어머니는 겨우 머리만 요에 얹으신 채로 방바닥에 쪼그리고 주무시고 계셨다.
슬쩍 팔을 잡아 요위에 끌어드렸다.
"야야~ 고운 이불 더럽혀 진다. 냄새밴대이..."
어머니에겐 냄새가 났다 정말.
울엄마에게 나던 화장품 냄새를 닮은 엄마냄새가 아닌, 뭐라 말할수 없는 부뚜막 냄새 흙냄새 같은..
그 냄새가 좋아서 나는 내려갈때마다 어머니와 잔다.
이제는 손주와 주무시고 싶다며 나를 밀쳐 내시지만 악착같이 어머니 한쪽 옆자리는 나다.
어떤 밤이던가 어머니 옆에 누워 조잘거리던 내게 니는 꼭 딸 낳아라.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좋다하는갑다. 니가 이래해주니 니가 꼭 내 딸같다~
뒷집이고 옆집이고 도시 며느리본 할망구들 다 나 완젼 부러워 한다. 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서 와도 눈치보기 바쁘다 하드라.
뭐 당연하다. 내도 니가 첨 인사왔을때 어찌나 니가 불편 하진 않을까고 싫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지... 말도 못해. 근데 당연한거 아이가... 그러니 딸이 좋다 카는거지... 나는 니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뭐 딸없어도 되지만 니는 꼭 딸 낳아라...
진즉부터 혼자계시던 어머니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단 이 났다.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시다 넘어지셔서 가뜩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 다리가 아예 부러지셨다 했다.
도련님이 있는 대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노인이라 뼈도 잘 안붙는다고 철심도 박고 수술하고 3개 월을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퇴원을 하셨다. 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나는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우리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오신다고 신이나있고, 표현할줄 모르는 남편은 슬쩍슬쩍 그방을 한번씩 들여다 보며 웃는 것을 나도 안다.
당연히 우리집에 곱게 오실리가 없다.
어머니! 저 둘째 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허구헌 날 노래교실에 뭐에 승민이도 잘 안봐주시고, 제가 회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땡겨 죽겠단말이에요! 어머니 김치 담아주세요~
그말에 못이기는 척 어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이 말했다. 니가 모시고 살아봐야 힘든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래 맞다. 내가 안해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 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증인이니, 혹여나 어머니가 미워지고 싫어져도 나는 이제 어쩔수 없다.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같이 사는 수밖에~
승민 아빠 사랑해!
~ 자료:호랑나비 ~
마음 먹기에 따라
받은 글입니다.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오신 것은 결혼초 한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어머니는 아들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일을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 고 한다.
평생 그렇게 일만하시던 시어머니는 아들 둘다 대학졸업 시키신 후에야 일을 줄이셨다고 한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 셨었다.
"고생도 안해본 서울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가진거 없는 우리 아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등록금을 보태고 용돈을 썼다고 했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연애는 커녕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늘 좋다는 친구들 후배들이 줄줄 따른다.
둘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이 좋았다 .
건강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내가 먼저 고백했다. 그는 망설였다. 자기는 가진거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였고, 삼고초려끝에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를 우리집에 데려갔다.
그의 외모와 직업에 우리 부모님은 그를 반겨주었다.
집이 지방이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을때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진거라고는 월세 원룸보증금과 얼마간의 저축이 전부다 했을때 아빠가 담배를 피우셨다.
그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한번 못펴시고 우리 형제 위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가서도 영은이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만, 그래도 영은이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각 오가 되어있는 제 결심 이것만 높이 사주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주신 돈과 회사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와 내가 모은 얼마간의 저축으로 혼수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버이날과 어머니 생신이 겹쳤다.
일부러 주말을 잡아 내려갔다.
시동생도 오고 어머니와 마당평상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먹는데 그맛이 세상에서 제일 맛 있는 삼겹살이었다.
그날 밤 작은 방에 예단으로 보내드렸던 이불이 깔려있었다.
어머니는 한번도 그 이불을 쓰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우리더러 그방에 자라고 하신다.
싫다고 뿌리치는 어머니 손목을 끌어 작은방으로 모셨다.
"어머니하고 자고 싶어요. 신랑은 도련님하고 넓은 안방에서 자라고 할거에요. 어머니랑 자고 싶어요."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도 못갈아입었다고 이불 더럽혀 지고 니가 불편해서 안된다. 냄새나 안된다고 자꾸 도망가려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소주마시고 싶다고 함께 소주를 먹었다.
어머니가 찢어주시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소주를 홀랑 홀랑 비우고 취해 잠들어버렸다.
자다 목이 말라 깨어보니 나는 이불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고 어머니는 겨우 머리만 요에 얹으신 채로 방바닥에 쪼그리고 주무시고 계셨다.
슬쩍 팔을 잡아 요위에 끌어드렸다.
"야야~ 고운 이불 더럽혀 진다. 냄새밴대이..."
어머니에겐 냄새가 났다 정말.
울엄마에게 나던 화장품 냄새를 닮은 엄마냄새가 아닌, 뭐라 말할수 없는 부뚜막 냄새 흙냄새 같은..
그 냄새가 좋아서 나는 내려갈때마다 어머니와 잔다.
이제는 손주와 주무시고 싶다며 나를 밀쳐 내시지만 악착같이 어머니 한쪽 옆자리는 나다.
어떤 밤이던가 어머니 옆에 누워 조잘거리던 내게 니는 꼭 딸 낳아라.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좋다하는갑다. 니가 이래해주니 니가 꼭 내 딸같다~
뒷집이고 옆집이고 도시 며느리본 할망구들 다 나 완젼 부러워 한다. 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서 와도 눈치보기 바쁘다 하드라.
뭐 당연하다. 내도 니가 첨 인사왔을때 어찌나 니가 불편 하진 않을까고 싫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지... 말도 못해. 근데 당연한거 아이가... 그러니 딸이 좋다 카는거지... 나는 니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뭐 딸없어도 되지만 니는 꼭 딸 낳아라...
진즉부터 혼자계시던 어머니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단 이 났다.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시다 넘어지셔서 가뜩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 다리가 아예 부러지셨다 했다.
도련님이 있는 대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노인이라 뼈도 잘 안붙는다고 철심도 박고 수술하고 3개 월을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퇴원을 하셨다. 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나는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우리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오신다고 신이나있고, 표현할줄 모르는 남편은 슬쩍슬쩍 그방을 한번씩 들여다 보며 웃는 것을 나도 안다.
당연히 우리집에 곱게 오실리가 없다.
어머니! 저 둘째 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허구헌 날 노래교실에 뭐에 승민이도 잘 안봐주시고, 제가 회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땡겨 죽겠단말이에요! 어머니 김치 담아주세요~
그말에 못이기는 척 어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이 말했다. 니가 모시고 살아봐야 힘든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래 맞다. 내가 안해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 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증인이니, 혹여나 어머니가 미워지고 싫어져도 나는 이제 어쩔수 없다.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같이 사는 수밖에~
승민 아빠 사랑해!
~ 자료:호랑나비 ~
마음 먹기에 따라
받은 글입니다.
Sundries: 우리 사는 동안에
안녕하세요 현충일은 경건하게 잘보내셨는지요,,,오늘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결코 쉬운 길은 아닌 인생이지만 오늘은 단 하루뿐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하루하루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매끼 밥을 먹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도록 다시 마음먹는 방법 밖에는요.
Sundries: 우리 사는 동안에
인생은 왕복표는 발행하지 않습니다. 한 번 출발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생 지금부터라도 좀 더 소중히 살아야겠습니다.
- 이정하의《우리 사는 동안에》중에서 -
'Sundries: 우리 사는 동안에'에서 옮긴 글입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닌 인생이지만 오늘은 단 하루뿐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하루하루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매끼 밥을 먹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도록 다시 마음먹는 방법 밖에는요.
Sundries: 우리 사는 동안에
인생은 왕복표는 발행하지 않습니다. 한 번 출발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생 지금부터라도 좀 더 소중히 살아야겠습니다.
- 이정하의《우리 사는 동안에》중에서 -
'Sundries: 우리 사는 동안에'에서 옮긴 글입니다.
Surfrider Beach, California
Surfrider Beach, California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Description | English: Adaptive recreation.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s learn to surf with the assistance of trained surfers. 2010 Surfer's Healing Malibu event, Surfrider Beach, California. |
Date | 5 June 2010 |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spicuzza/4710102304/sizes/l/ Wikimedia Commons |
Author | Christina Spicuzza |
Camera location | . |
Permission | CC-BY-SA-2.0 |
Licensing |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as published it under the following licenses: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to adapt the work Under the following conditions: attribution – You must attribute the work in the manner specified by the author or licensor (but not in any way that suggests that they endorse you or your use of the work). share alike – If you alter, transform, or build upon this work, you may distribute the resulting work only under the same or similar license to this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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