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심호흡

세 번의 심호흡

꽉 막힌 도로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세 번의 심호흡'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화가 치밀고 당황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첫 번째 호흡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킨다. 두 번째 호흡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준다. 세 번째 호흡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우리 자신과 영혼을 결합시켜 준다.

- 토머스 크럼의《세 번의 심호흡》중에서 -


길이 막혔을 때 뿐만이 아닙니다. 삶의 길이 막혔을 때도 심호흡 세 번이면 풀립니다. '심호흡 세 번이면 살인도 막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심호흡은 가슴이 아닌 배로 숨쉬는 것입니다. 배로 숨쉬기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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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묘약

◈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묘약 ◈

이 약은 신약도 아닙니다. 이 약은 한약도 아닙니다. 이 약을 만드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도 아닙니다. 이 약은 먹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약은 바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팔만 벌리면 됩니다. 그리고는 살짝 안아만 주면 됩니다.

이 약은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약은 땀흘려 수고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약은 아무리 주어도 밑천이 안 듭니다. 이 약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도 않습니다. 이 약은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가장 많은 약효가 나타납니다.

이 약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행복감을 키워줍니다. 이 약은 특히 가슴에 난 상처에 특효약입니다. 이 약은 전혀 부작용이 없으며 오히려 혈액순환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약입니다.

처방은 이것입니다.

최소한 하루에 한번씩 안아주는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랑의 묘약으로 오늘하루도 행복가득...사랑가득한 건강하고 좋은하루 열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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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독일계 한국인 李參의 '재미 있는 한국인論'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李參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는 한국이 원래부터 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해석하였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 세 집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진돗개를 멧돼지 사냥에 이용하는 거예요. 멧돼지를 진돗개가 1대 1로 상대하여선 다 죽습니다. 그러니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입니다. 강한 敵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 좋게 지냅니다. 한국인들도 공동의 敵,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이지요."

(이 대목에서 첨언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렇다. 어디 한강의 기적뿐인가.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내 가족, 내 친족, 내 동네, 내 동문, 내 파당 등등으로 갈라져서 제편만 옳고 잘났다며 지역싸움, 당파싸움을 일삼고... 불안한 장래에 대하여도 각자가 다 다르게 개인적으로 혼자의 방식과 비책으로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번 뒤돌아 보자. 나라에 매우 큰 환란이 닥쳐올 때에는, 참 신기하게도국민 대다수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일치된 공감대(共感帶 consensus)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면서, 초당적으로 단결, 각자의 비책을 교환하며 너나없이 국난타개에 앞장서 몸바쳐 왔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동안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셔 대던 20만대군(지금같으면 2백만정도의 대군)의 왜구가 종국엔 거의 다 죽고 패퇴하였는데...그것은 이순신장군 혼자서 이룩한 승전이 아니라, 각처에서 온 백성이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용장으로서 6.25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한 장성(밴플리트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오랜동안 크고 작은 전쟁터를 다 다녀 보았는데, 한국군 같은 독종(?)은 보지 못했어요. 38선에서 밀리기 시작해서 한강, 수원, 대전, 낙동강 등 전선마다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군 패잔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거 같은데, 항상 저희들 끼리 새 부대를 편성하여 <일선에 다시 보내달라! 무기를 달라! >고 절규하는거야... 당시엔 탱크도 없어서, 나가면 죽는게 뻔한데... 유럽 전선에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패잔병은 도망쳐 초야에 흐터지면 그만이었지." ㅡ hweenam)

이찬씨는, 독일에서도 16세기 초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위대한 성취나 인물이 적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이 교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개인의 소중함이 인정되면서 위대한 국민, 위대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아직도 획일적인 생각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골프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여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국인의 성격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에너지는 세계적이란 것이다.

그는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철학자 헤겔이 지적한대로 독일인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情이 깊다, 애국심이 강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편감, 신부감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두 약사가 된 것처럼 각자 좋은 약을 추천하는 한국인,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자신감의 예로 들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李參씨는 비판하였다. 너무 "우리끼리 경쟁"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동양예의지국이 아니라 동양무례지국처럼 된 것도 교육의 실패이다.

李參씨는 한국인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멧돼지 같은 사냥감, 즉 국가적 목표와 비전, 또는 大義를 국가지도부가 만들어 내야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받은 글입니다.

실패한 고통

실패한 고통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이 몇 배 더 고통스럽다.

- 앤드류 매튜스 -


아쉬움. 후회.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 남는 감정의 앙금들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리기 전 사람이 할 일을 다한다면,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깨닫는 고통은 없을 겁니다.

깨달음과 게으름

깨달음과 게으름

한고조(寒苦鳥)는 불경 속에 나오는 상상의 새다.
히말라야의 설산(雪山)에 산다고 해서
설산조(雪山鳥)라고도 부르는데
둥지를 틀지 않기 때문에
밤이면 사나운 눈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온몸이 얼어붙는 괴로움을 겪는다.
밤이면 '날이 밝으면 꼭 아늑한 둥지를 짓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밤이 가고 날이 밝으면
꽁꽁 얼어붙은 몸을 햇볕에 녹이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또 다시 밤이 오면 뼈마디가 얼어붙는 고통을 당하곤 한다.

깨달음을 얻어도 게으름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나라의 지진 피해를 보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우리는 정작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걱정스러워진다.


받은 글입니다. 설산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모습. 실행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실패란 나침반

실패란 성공이란 진로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 데니스 윌트리 -


누구나 겪게 되는 실패입니다. 그런 실패가 인생의 끝이 되느냐, 성공의 남침반이 되느냐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있을 겁니다.

북한산 둘레길 산책이 최고

북한산 둘레길 산책이 최고 (山정상 등반은 옛날 방식)

북한산둘레길 44㎞가 마침내 개통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직접 만든 전국 국립공원의 첫 둘레길이다. 정상 지향형에서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찾는 둘레 지향형으로 등산형태를 바꾸기 위해 공단에서 1년여 작업 끝에 이번에 내놓은 것이다. 이미 개통된 지리산숲길은 산림청이 사단법인 숲길에 의뢰해서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서 만든 길이라, 공단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북한산둘레길은 항상 정상 백운대로만 걷다 옆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북한산둘레길의 총 길이는 약 70㎞에 이르지만 이번에 개통된 구간은 도봉산 구간 26㎞를 뺀 순수한 북한산 구간이다. 도봉산 구간은 올 연말부터 작업에 들어가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지난 8월 6일과 10일 두 차례 공단시설팀 박기연 팀장과 윤대원 차장, 이진범 과장, 김준석 계장 등과 함께 9월 7일 북한산둘레길 개통식을 하기 전 미리 둘레길 전 코스를 처음으로 한 바퀴 둘러봤다. 북한산을 수십 번 올랐지만 “북한산에 이런 길이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생전 처음 보는 아늑하고 걷기 좋은 길이 많아, 걷기문화와 등산문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은평구엔 나무데크를 놓은 길이 많아 일명 스카이로드라 부른다.

북한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이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고려시대 때는 한반도의 5악 중의 하나로 꼽혀 국가에서 주요 행사를 지내기도 했다. 5악은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백두산), 금강산 등이다. 산 숭배사상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중종실록'은 동악 금강산, 서악 묘향산, 남악 지리산, 중악 삼각산, 북악 백두산 등으로 5악을 정해 국가 주요 제사를 산에서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북한산에 올라 한양의 지세를 찬양하기도 했다.

스카이로드 위로 벌써 탐방객이 걷고 있다.

조선시대 김종길은 ‘孤高(고고)’란 시로 북한산을 노래했으며, 홍양호는 '우이동구곡기', 이덕무는 '북한산 유람기'란 글을 남겼다. 이들이 주로 찾은 곳은 지금은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민지암’ ‘칠류암’ ‘산영루’ ‘우이동계곡’ 등이었다. 특히 산영루는 북한산의 무릉도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워 내로라하는 시인묵객들이 시와 노래를 읊은 곳으로 유명하다.

중간중간에 쉼터도 마련해 힘들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북한산에는 모두 14개의 성문이 있다. 수문 1개와 북문, 대동문, 보국문(소동문), 대서문, 대동문, 대남문(소남문) 등 성문 6개소, 서암문, 백운봉암문(위문), 용암봉암문, 가사동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국녕문) 등 암문 6개소와 중성문 등 모두 14개의 성문이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역할뿐 아니라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북한산의 사찰은 고려시대부터 국가의 군사목적으로 사용했다. 승려는 전시 승군으로, 사찰은 병영으로 활용하며 유사시를 대비했던 것이다. 당시 병영으로 사용했던 사찰이 지금 북한산에 있는 그 절들이다. 승군대장이 머물던 중흥사를 비롯하여 태고사, 서암사,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원각사, 국녕사, 진국사, 상운사 등 11개 사찰이 주로 그 역할을 했으며, 원효암과 봉성암 등 2개의 암자도 활용했다. 이들 사찰은 대부분 성문 가까운 곳에 위치함으로써 산성 수비를 도맡았다.

북한산엔 32개 봉우리, 15개 능선, 14개 성문 있어

북한산은 또 모두 3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 백운대(836m)를 비롯하여 동북쪽에 우뚝 솟은 인수봉, 동남쪽으로 만경봉(일명 국망봉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올라서면 산하의 만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해서 붙여졌다), 만경봉 서남쪽으로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노적더미로 의심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노적봉이 우뚝 솟아 북한산의 절경을 이룬다.

북한산둘레길은 여름에 걸어도 울창한 나무가 드리워져 있어 시원하게 해준다.

북한산 세 봉우리 북쪽으로 영봉과 상장봉, 남쪽으로는 석가봉, 용암봉, 시단봉, 보현봉, 문수봉 등이 솟아 있다. 문수봉 북서쪽으로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증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등의 줄기가 백운대 서쪽 줄기인 영취봉(일명 염초봉), 원효봉 줄기와 대서문의 수구에서 만난다. 승가봉, 비봉, 향로봉은 문수봉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곁줄기다. 그 중 보현봉은 남쪽으로 두 줄기를 뻗어 내려, 남서쪽으로는 사자능선이, 남동쪽으로는 형제봉이 있는 형제봉능선이 솟아있다.

일정 구간마다 아치형의 문을 만들어 각 구간을 나눴다.

이들 봉우리들이 이루는 능선은 상장봉이 있는 상장능선, 영봉이 있는 영봉능선, 원효봉과 염초봉을 연결하는 원효봉능선, 산성주능선, 백운대에서 북서쪽에 있는 숨은벽능선, 강북구 수유리로 뻗어나간 진달래능선, 도봉산 우이암과 연결하는 우이능선, 정릉으로 연결되는 칼바위능선, 나한봉~나월봉~용혈봉~의상봉을 하나로 잇는 의상봉능선, 보현봉의 사자능선과 형제봉능선, 대성능선, 승가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수리봉)을 잇는 비봉능선, 응봉이 있는 응봉능선, 탕춘대가 있는 탕춘대능선 등 15개가 있다.

각 능선 사이로 흐르는 대표적인 계곡으로는 정릉계곡, 구천계곡, 소귀천계곡, 육모정계곡, 효자리계곡, 삼천사계곡, 세검정계곡, 진관사계곡, 구기계곡, 평창계곡, 산성계곡 등이다. 이들 북한산에서 발원한 계곡은 중랑천, 창릉천, 모래내, 불광천 등으로 흘러 한강으로 합류한다.

북한산의 개략적 특징과 간단한 역사에 대한 일부분이다. 이 개념을 머리에 새기고 공단 박 팀장 등 직원 4명을 불광역에서 만나 불광사를 첫 출발지로 삼기로 하고 출발했다.

불광사 주변은 주민근린공원으로 잘 단장돼 있다. 북한산성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거칠고 투박한 길은 복토나 사다리를 깔아 정돈했고, 위험한 길은 나무데크를 깔아 편안하게 걷도록 했다.

공단 박 팀장은 “새로 조성한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기존에 사용하다 버려진 길을 찾아 둘레길로 연결시켰습니다”라고 밝히며 “둘레길의 또 다른 목적은 1000만 명이 이용하는 북한산을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 북한산의 주요 훼손 원인인 샛길을 10개 중 1개를 제대로 정비해서 사용하고 9개는 줄여보자는 데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샛길 등산객들을 공식 등산로나 둘레길로 흡수함으로써 자연 보존효과의 극대화를 거두겠다는 의도였다.

실제 위가 아닌 옆으로 걷는 둘레길은 모두 생전 처음 보는 길들 같았다. 산에 가면 으레 위로만 올랐지 옆으로 간적이 없으니 더더욱 길이 새롭게 보였다. 나무데크와 잘 정돈된 편안한 평지위로 걷는 수평의 길, 그것이 바로 북한산둘레길이다.

전망대가 나왔다. 서울 서쪽 도심의 빌딩 숲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아파트들은 전부 성냥갑 같다. ‘저 성냥갑을 하나 얻으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새로 조성한 길은 없고 버려진 길 찾아 연결

박 팀장은 “은평구간이 길이 안 좋고 위험한 구간이 많아 나무데크를 깔고 길을 정비하느라 공사비가 제일 많이 들었다”고 했다. 40㎞ 개통에 총 공사비가 약 30억원 가량 소요됐는데, 그 중 절반가량이 이 구간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쉬어가라고 의자도 여러 곳에 비치했다. 호젓한 노송 옆에 비치한 의자는 분위기를 더했다. 키 큰 노송들이 쉼터 주변을 둘러싸고 그늘을 드리워 가만 앉으면 상쾌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길은 공원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총 44㎞ 중에 약 42% 정도 공원바깥구간이라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와 둘레길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단 외부의 국유지나 공유지는 아무 애로사항 없이 일사천리로 길 조성 작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유지는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지주가 반대하면 제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바로 그런 구간이 나왔다. 길 한쪽 옆으로 살벌한 철조망이 둥근 모양으로 길게 쳐져 있다. 박 팀장은 “철조망 안쪽으로 농장을 하는 지 몇 번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철조망을 걷어내고 공단에서 예쁘게 망을 쳐줄 수도 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걷는 길은 부드러웠다. 조금 전까지는 마사토였지만 지금은 황토로 변했다. 맨발로 걸어도 전혀 다칠 우려가 없다. 지나는 길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나무가 가로수로 널려 있다. 대추나무였다. “야, 대추나무가 가로수로 있다니!” 모두 감탄했다. 다들 “가을에 이 길을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널찍한 공간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사방이 확 트여 북한산 서남 방향으로 조망이 가능했다. 족두리봉, 비봉 등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는 사모바위가 보일 듯 말듯 가물거렸다.

공단 박 팀장은 이곳을 ‘장애인 산책로’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무데크와 휄체어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도 조금 더 가까이서 산을 즐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둘레길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기는 길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곧이어 조선 세종대왕 아홉 번째 왕자 화의군 묘가 탐방객을 맞았다. 품행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절의가 있었고, 학문과 글씨에도 조예가 깊어 일찍이 세종의 한글창제에도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둘레길 돌면서 역사적 인물과 유적을 살펴보는 것도 걷는 맛이다.

이젠 널찍한 진관사 올라가는 길이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길은 넓었지만 다소 산만하다. 바로 옆 진관사계곡에는 한 생태연구소에서 직원들이 나와 계곡 생태조사를 조사하고 있었다. 둘레길은 계곡 위로 나무다리를 새로 놓아 지난다.

계곡을 지나자마자 200년가량 된 느티나무 보호수와 아담한 은행나무 군락지가 눈길을 끈다. 느티나무는 더위를 먹었는지 링거주사를 몇 군데 꽂고 있다.

삼천사와 백화사 올라가는 길을 지나쳐 북한산 초등학교 옆길로 나와 북한산성 먹자거리로 갔다. 계곡 안에서 음식점 영업을 하던 북한동 주민들이 내려와 새롭게 식당가를 조성 중인 곳이다. 일부는 영업을 시작했고, 나머지는 막바지 영업준비에 한창 바쁜 듯했다.

북한산성 지구를 지나 효자비와 북한산굿당 등을 만난다. 북한산의 민속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후부터는 다소 지겨운 길의 연속이다. 밤골과 사기막지킴터를 지나면 아스팔트길 옆에 있는 인도로 교현리 우이령 입구까지 계속된다.

둘레길탐방안내센터서 9월 7일 개통식

우이령 입구에 다다랐다. 박 팀장은 “현재 예약탐방제로 운영하고 있는 우이령길 구간을 둘레길을 도는 탐방객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조만간 공단 부서와 군부대, 경찰 등과 협의해서 해제할 예정”이라며 “시기는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내 협의를 마치겠다”고 밝혀, 둘레길을 도는 탐방객들은 머지않아 예약 없이 우이령길을 훨씬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이동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조선 말기 실학자 이덕무가 노래한 <우이동구곡기>의 바로 그 장소다. 여름 더운 날씨엔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계곡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있다. 어린이들은 아예 발가벗은 채 물장구를 치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 전경의 정겨운 모습이다.

둘레길은 그 계곡 따라 올라간다. 독립유공자 손병희 선생묘와 소귀천계곡과 접속되는 길을 지나, 9월 7일 개통식을 하는 둘레길탐방안내센터에 이르렀다. 북한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수유분소 자리에 공간을 마련해서 새로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지었다. 직원들은 안내를 위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이제부터는 순례길이다. 이준 열사 등 독립유공자와 광복군의 합동묘소 등 총 12기의 묘지가 안장된 곳이다. 지나치는 마음이 괜히 숙연해진다. 운가사와 냉골, 화계사 가는 길을 지나쳐 잠시 쉼터에 자리 잡았다.

이틀 계속 걸으니 발바닥도 후끈거리고 걷는 자체가 지겨워졌다. 한마디로 힘들다. 그 사이 또 전망대가 나왔다. 백운대가 바로 눈앞이다. 동행한 공단 직원은 “이 전망대보다는 조금 더 가면 하늘전망대가 나옵니다. 거기서 보시면 훨씬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더니 빨리 가자는 의미같이 들렸다.

쉬지 않고 계속 갔다. 하늘전망대는 구름타고 올라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 타원형 계단으로 만들었다. 빙빙 돌아서 올라간 12m 꼭대기에선 사방이 확 트였다. 지겨운 마음이 어느덧 사라지고 주변 감상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산 정상 백운대의 우뚝 솟은 모습과 앞쪽으로 수락, 불암산이 펄쩍 뛰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지척거리로 느껴졌다. 백운대의 위엄은 주변 봉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이런 북한산의 지세를 보고 바로 시를 읊었다.

‘우뚝 솟은 높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받쳤고 / 넓은 바다 긴긴 강물은 오대산에서 흐르네’

그가 조선을 건국한 ‘통 큰’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시다.

공단 직원은 “하늘전망대에서는 주변 경관뿐만 아니라 야경도 좋아 둘레길을 개통하면 아마 명소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박 팀장은 “서울외사산 트레킹 코스를 지금 서울시에서 한창 개발 중이며, 그 중 북한산구간은 북한산둘레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며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성북구와 강북구의 경계에 있는 무궁화군락지와 야생화 군락지도 눈길을 끌었다. 무궁화가 가로수로 펼쳐져 있고, 국화과의 벌개미취는 여기저기 꽃을 피워 향기를 퍼트렸다. 곧이어 생태숲공원이 나왔다. 다양한 주민 편의시설과 운동시설도 구비하고 있었다.

다시 탕춘대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서울성곽과 연결되는 탕춘대성을 만나 역사의 현장을 떠올리며 마지막 능선인 족두리봉 능선으로 향했다. 그곳엔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가 있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 등 북한산 남쪽의 모든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한 광경이다.

드디어 출발지점인 작은 불광사 맞은편에 도착했다. 40㎞이상 되는 길고 긴 북한산둘레길을 이틀 만에 끝냈다. 힘든 것만 빼고는 감동적인 길이었다. 율곡 이이는 북한산을 둘러보고 ‘고산구곡가’라는 시를 남겼다.

‘구곡은 어디인가? /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인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혀 버렸구나 / 놀러 다니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북한산둘레길을 가장 먼저 둘러본 느낌은 율곡 이이 선생이 읊은 시와 별로 다르지 않다. 위로만 길이 있는 게 아니고 옆으로도 길이 있고, 위의 경치만 좋은 게 아니고 옆의 경치도 뛰어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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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들에게 보내는 편지


부부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여성이 부부 세미나에서 강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요새 부부들은 대화가 너무 부족하다. 남편과 장단점을 다 나눠라."

그 말대로 그녀는 집에 와서 남편에게 서로 부족한 점을 하나씩 나눠 보자고 했습니다
남편이 주저하다 마지 못해 ”그러자!“고 했습니다.

곧 아내 입에서 남편의 단점이 쏜살같이 나왔습니다.
“당신은 먹을 때 호르륵 호르륵 소리를 내고 먹는데, 주위 사람도 생각해서 앞으로는 좀 교양 있게 드세요."

이제 남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손을 턱에 대고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한참 생각하는데, 남편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내가 그 모습을 찬찬히 보니까 옛날 연애하던 시절의 멋진 남편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결국 한참 있다가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오늘날 많은 아내들이 기대하는 남편이 이런 남편이 아닐까요? 남편도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백화점 가서 바가지 쓴 것, 가스 불 켜놓고 잠든 것, 식당에 집 열쇠 놓고 온 것, 어디서 자동차 들이받고 온 것 등 지적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적하지 않고,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배우자의 사명은 실패와 실수를 지적하는 것에 있지 않고 실패와 실수를 덮어주는 것에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배우자의 약점을 찾아 보고 하라고 각 가정으로 보내어진 스파이(spy)가 아니라, 배우자의 부족한 파트(part)를 메워 덮어 주라고 각 가정으로 보내어진 파트너(partner)입니다.

삶에 힘겨워하는 반쪽이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을 때 나머지 반쪽이 주는 격려의 말 한 마디는 행복한 가정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될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경쟁하는 여야 관계가 아니고 서로 존중하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부부는 서로의 ‘존재의 근거’입니다.

배우자를 깎으면 자기가 깎이고, 배우자를 높이면 자기가 높여집니다. 배우자를 울게 하면 자기의 영혼도 울게 될 것이고, 배우자를 웃게 하면 자기의 영혼도 웃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말해주는 유일한 메시지는 “나를 동반자로 존중하고 좋은 대화 파트너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좋은 말은 천 마디를 해도 좋지만, 헐뜯는 말은 한 마디만 해도 큰 해가 됩니다. 가끔 배우자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들어도 ‘시간의 신비한 힘’을 믿고 감정적인 언어가 나오는 것을 한번 절제하면 그 순간 에덴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가끔 자녀들이 묻습니다.
"엄마! 아빠! 천국은 어떻게 생겼어!"
어떤 부부는 말합니다.
“그것도 몰라! 우리 집과 같은 곳이 바로 천국이야!”

자녀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생생한 교육 현장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를 앞세워 사는 부부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그 부부 및 자녀의 내일에 행복의 주단을 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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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있기 때문에 목표는 존재한다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목표는 존재한다


누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나씩 성취해 가는 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목표가 한 걸음씩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의 소화 능력을 생각하고 밥을 먹어야지, 괜히 주위를 의식하고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가 쉽다.

남들이 밥을 거의 다 먹었다고 해서, 뒤늦게 먹는 내가 씹지 않고 먹다가는 체하거나 배탈만 날 뿐이다.


바쁠수록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행하라.

꾸준히 뛰어야만 마라톤의 결승 테이프를 끊을 수 있다. 결국 목표는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욕심에 얽매여 자신을 구속하고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눈은 최종 목표에 고정되어 있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미루어 왔던 전화를 걸거나,

감사의 편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에 들어가 정보를 검색하라.

성급하게 자신을 내몰지 말고,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듯이 마음부터 다잡는 것이 중요하다.


무리한 욕심에 자신을 가두려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실천하라.

그러한 작은 실천 속에서 자신이 미쳐 몰랐던 정보를 만날 수 있고, 그로 인해 다시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인생을 참으로 신나고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끊임없이 시도해 보자.

시도해 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느 방면에 재능이 있는지, 혹은 성공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난 이것은 정말 할 수 없어"라고 미리 단정해 버리기 전에, 당신이 그 일에 대하여 진정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보았는지 돌아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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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큰 행복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

- 실레노스 (Silenos), 그리스 신화에서 -


프리기아의 왕(王) 미다스가 실레노스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체포했을 때 미다스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참으로 우울한 말이죠.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곳을 들르는 분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역설적으로 이런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