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물은 피만큼 중요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물은 피만큼 중요하다!

자동차나 비행기 등 기계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고, 컴퓨터나 세탁기, 선풍기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는 그것을 지속시켜 주는 힘이 필요한데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이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합니다. 사람은 음식물에서 칼로리를 얻는데, 칼로리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물입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성분 중 70% 이상이 물입니다. 혈액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뇌의 75%, 간의 96%를 구성하고 있을 정도로 놀랍게 많은 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을 마시는 데 매우 인색하고 물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숨쉴 때 산소가 꼭 필요하지만 우리가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듯이, 물을 마시는 것에도 무감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물은 우리 몸에 어떤 역할을 해 주길래 그리도 중요한 것인지 알아봅니다.

이동시키고 보호해 주는 물

물은 우리 몸에서 체온을 조절하고,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배달하는 역할을 하며, 노폐물을 배출시킵니다. 또 관절강 내에 존재하는 물은 쿠션처럼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주요 기관과 피부를 보호합니다. 이와 같이 중요하고도 많은 역할들을 하고 있기에, 체내에서 물이 15% 이상 사라지면 탈수로 인해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을 많이 마시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1. 노폐물, 안녕~!

물이 우리 몸에서 하는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노폐물을 효율적으로 운반,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수분의 비율이 높은 뇌에서 혈액순환이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되도록 도와주어 현대인의 스트레스 및 만성 두통을 없애 줍니다. 또한 피부미용도 좋아지게 만들어 줍니다.

2. 촉촉한 내 피부

더불어 건조해 지기 쉬운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여 촉촉하고 주름 없는 피부로 만들어 줍니다. 피부건조증뿐 아니라 안구건조증도 예방 및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건조와 관련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물을 많이 마셔주어야 합니다.

3. 잘 먹고 잘 싸기!

또한 물은 섬유질과 더불어 배변이 잘 되도록 도와줍니다. 변비가 오래 지속될 경우 장에서 계속 수분이 흡수되면서 딱딱하게 굳은 변이 만들어 지고, 수분이 전혀 없는 변이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에서 계속 부피가 커져 더욱 배출되기 힘든 형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물을 많이 마셔주면 변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4. 체지방? 어디~?

물은 우리 몸에 흡수되는 영양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물을 대사시키려면 다른 영양소와 똑같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따라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실제로 살이 찌지는 않으면서 몸을 더욱 바쁘게 일하게 만들어 살을 빼주는 효과를 볼 수 있고, 더불어 물을 마시면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5. 술로 부족해진 물 보충하기

술을 마시면 소변을 보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항이뇨 호르몬"의 작용이 억제를 받아 소변량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어지고, 또, 술을 마실 때 말초 및 피부의 혈관이 확장되면서 수분이 많이 배출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족해진 물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마셔주어야 하고, 또 술을 희석시키는 작용 및 알코올의 흡수가 더디도록 하는 작용도 합니다.

6. 암세포, 홍수 난다

물을 많이 마시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암세포 역시 일정한 수준의 농도를 유지해야 암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물이 계속 농도를 옅게 만들며 희석시켜 주어 암세포가 생산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아도 좋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 적당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 적당하지 않아도 좋고 많이 마실수록 좋은 것이 있으니 바로 물입니다.


[Q&A] 물 대신 음료수를 마셔도 괜찮은가요?

A. 물 대신 탄산 음료나 커피 등을 마시게 되면 신장에서 오히려 이뇨작용을 촉진하여 수분을 배설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분의 보충은 가능하면 물로 하시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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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 크기, 비전의 크기

인격의 크기, 비전의 크기

위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큰 문제와 싸웁니다. 인격의 크기는 바로
그가 붙들고 씨름하는 비전의 크기입니다.
그래서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애를 걸 수 있는
큰 문제를 붙듭니다.

- 황성주의《10대, 꿈에도 전략이 필요하다》중에서 -


무엇이 위대한 꿈, 위대한 비전일까요? 그것이 이루어지면 나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이 아닐런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에게는 고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는 것,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비우고 버릴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 많이 채워지는 것, 그것이 위대한 꿈이며 위대한 비전일 것입니다. 인격과 비전의 크기는 거의 정비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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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의 거울입니다.

부모의 상처, 아이의 상처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어디서 생겼을까?
옆집 친구? 선생님? 형제?
아니다. 부모에게 있다.
아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상처를 입게 된다.
부모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면 그것은
무의식중에 아이의 상처가 되어 버린다.
'상처 입은 아이'란 상처받은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아이를 말한다.

- 요시모토 다카아키의《내 안의 행복》중에서 -


부모의 상처가 곧 아이의 상처. 참으로 공감되는 무섭고도 엄중한 말입니다. 부모의 모습에 아이의 모습이 있습니다. 부모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 속에 아이의 미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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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

자격지심

자격지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저는 살면서 극복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바로 자격지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격지심이 있으면 아무도 나쁘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가 오해를 해서 괴로워합니다.
자격지심을 없애는 길은
스스로가 잘 되는 겁니다.

- 장경동의《아주 특별한 행복》중에서 -


흉기가 따로 없습니다.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것이 곧 흉기입니다. 만고에 필요없는 이 흉기를 얼른 버리십시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넌 대단한 사람이야, 오늘도 너무 멋져"하고 씽긋 웃어주세요. 그 미소와 자기 암시가 그날 하루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정말 멋있고 힘차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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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숙성

경험과 숙성

경험이 쌓이고 숙성되어야 합니다. 창조적인 일은 내부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치다 어느 날 갑자기 뛰쳐나온 경우가 많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목욕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알았다)'라고 소리치면서 부력의 법칙을 발견했듯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 황성주의《꿈의 씨앗을 심어라》중에서 -


삶은 곧 경험입니다. 경험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한 번 경험한 것으로 그치면 그저 경험일 따름입니다. 잘 익히고 또 익혀서 자기 것으로 숙성시켜야 비로소 때가 되었을 때 영감과 창조의 빛이 되어줍니다. 경험의 숙성은 '반복에 또 반복'에서 옵니다.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또 반복하는 것입니다. 의연하게!


받은 글입니다.

자녀교육

자녀교육

유대인들은
돈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매주 금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탈무드를 읽으며
돈독한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도 유대인의 자녀교육이 아버지의 손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오랜 전통 덕분이다.
자녀교육은 결코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 최효찬의《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중에서 -


요즘 교육비 등 돈 때문에 그런지 아이를 하나만 가지거나 아예 아이 없이 사는 이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세계나 할 것 없이 성공한 이의 대부분은 여러 형제자매 속에서 부모와의 돈독한 관계, 특히 부모 교육의 뒷받침이 있었던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자녀를 기르더라도 사교육에만 의지하지 말고 부모가 직접 선생님이 되는 방법은 어떨까요. 저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반성해 봅니다.


받은 글입니다. 원 글을 쓰신 분은 두 아이의 어머니신가 봅니다.

새해가 되었다는 의미

새해가 되었다는 의미

닭이 울었다고 새벽이 온 것이 아니듯
일월 일일이 되었기에 새해가 된 것은 아닙니다.

새해는 지난해를 옛 것으로
규정하는 자에게만 새해가 됩니다.
옛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옛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용서 할 것은 용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뜻으로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이 된 이가 있다면 다 용서 하겠습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잘못 한 일들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과거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고 역사이기에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흐르는 물처럼 잊어버릴 때
새것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역사가 보여준 아름다운 선의 구상을
새로 주어지는 새해의 화판에 그려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로 올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의 미래를 함께 내다보며
상기된 얼굴로 서로 따듯한 손 맞잡으면
우리 함께 행복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받은 글입니다.

노인과 아내

노인과 아내

어떤 노인이 그의 아내가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귀에 가까이 가서 물었다.

"내말 들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더 가까이 가서 다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드디어 그는 매우 큰소리로 한번더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세번째로 예스예요!!!"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이 이야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후 그 독일인의 사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사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것입니다.

** 이하 그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地圖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中國과 日本 사이에 韓半島가 있고 그곳에 韓國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中心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武力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自主性을 잃어본 적이 없는 奇跡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民族'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두 일본인이 마라톤 경기에서 1位와 3位를 차지하였다. 2位는 獨逸人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日本人 勝利者들의 表情, 이것은 人間이 表現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不可思議한 사진....

무엇이 이 두 勝利者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施賞臺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人間的인 儒敎라는 宗敎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民族은 이웃한 日本人(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不過하다는 價値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自負心 强한 民族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侵略, 즉 植民地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孫' 과 '南'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祖國 한국의 太極旗 (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革命이라든가 鬪爭이라든가 勝利 또는 위대한 皇帝의 문양인데 비해 宇宙와 人間과 세상 모든 것의 秩序와 調和를 의미한다) 代身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抵抗의 方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廢刊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彈壓의 方法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解放되고 强要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戰爭을 치른 후, 한강의 奇跡! (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唯一한 民族이다)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强力한 經濟的 富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開幕式, 聖火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勝利者, '孫'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演出家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場面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韓國人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暴力과 같은 單純함이 아닌) 놀라운 精神力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金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黃'이라고 하는 '孫' 老人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日本과 獨逸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祝祭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太極旗가 올라가자 이 '黃'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孫'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품은 '손'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人間에 대한 信賴에 限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悲劇的인 눈물로 시작된 歷史일지라도 歡喜와 高貴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人間과 國家와 民族의 尊嚴을 이 한국인 아니 韓國 民族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받은 글입니다.

왜? 젊음을 열광하는가?

왜? 젊음을 열광하는가?
왜? 우리는 역동적인 사람을 주시하는가?
왜? 열정의 시대를 원하가?


시대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몽골의 제왕 톤유쿠크는 '정착은 죽음이다. 움직이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고 했다.


망설이는 시간으로 생산은 통곡 하고 주저하는 기회가 가슴을 친다.


사람들이여! 드디어 움직여라. 시대는 행동하는 자를 주시한다.


움직이는 자가 열매를 거두고 움직이는 자가 먹이를 찾아내고 행동의 선두자가 세상을 이끈다.


생각을 움직여라! 용기를 움직여라! 행동을 움직여라!


두 팔을 벌려 소리를 쳐내라. 성공의 불꽃은 움직이는 자의 것이다.


뛰고 또 뛰어라. 지금 당장, 그 움직임을 시작하라!

- 소 천 -


살아있는 증거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공자의 결과는 먼저 움직임의 결과입니다. 그 반경이 넓은 사람일수록 성공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 세계는 움직이는 자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


받은 글입니다.